허트 로커를 본 뒤로 기대를 한껏 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만,
간단히 말하면, 뭐랄까. 똥싸러 갔다가 숙변이 되어 되돌아온 기분 같습니다. -_-
좀 더 간단히 말하면, 허트 로커에서 박진감과 긴장감을 다 빼버리고 나면 이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두 시간 반의 러닝타임에서 솔직히 속도감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빈라덴을 잡으려는 자들의 서사가 계속될 뿐입니다.
거기에는 허트 로커 같은 빠른 박진감이나 긴장감 따위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묘한 기분을 일으킵니다.
빈라덴을 잡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테러를 되려 당하기도 하면서 좌절하고
정보의 맥이 끊기는 등의 개고생을 하면서도 결국 빈라덴을 잡아 죽이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보는 사람들조차도 뒷맛이 시원찮다는 겁니다.
영화는 이 부분에서 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현실적이지 않은 스크린에서 현실을 곱씹게 되는 것이랄까.
복수란 것의 화려함과 멋짐과 해소는 결국 상상되고 짜여진 스토리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고,
현실 속에서는 그것은 늘 순간적이고도 허망하게 끝나면서, 동시에 더러운 뒷맛도 남긴다는 것을
작품은 그대로 살립니다.
마치, 알베르 까뮈가 단두대에 대한 성찰이라는 저작으로 사형제도를 반대하던 그런 대목들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여주인공이 흘리는 눈물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적의의 쳇바퀴 같은 지옥 속에서, 자기의 책무를 다할수록 망가져가는 것은
오히려 다른 어떤이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점.
그 점을 허트로커에서도 감독은 잘 살렸던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