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와 함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제 정말 그만의 동화 속 세상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네요.
문라이즈 킹덤에서는 외로운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해준 것과 다르게
이번 영화는 그 외로움이 향수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심각한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위트가 굉장한 영화입니다.
(예전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 리뷰에서도 같은 말을 했는데 의미는 좀 다릅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유럽과 후의 유럽을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 속 이야기는 막상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죠.
하지만 어떻게보면 전쟁과 관련된 (영화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향수와 외로움으로 직결됩니다.
극 중 인물들 대부분이 고아라는 것과 모두 외로움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찾고 있는 설정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거기다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제로는 전쟁고아, 구스타브는 고독과 가장 가까운 캐릭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캐릭터들을 생동감 넘치게 담고 있습니다.
마담 D의 피살로 영화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과 같은 구성을 보이고 있는데
각자의 위치에 선 배우들이 심각한 상황을 유니크하게 연기하면서 마치 오스카 와일드의 환상동화를 보고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막상 피살사건은 영화의 맥거핀을 이루면서 점점 사라지고 인물들의 추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의 동선을 궁금하게하고 그들의 감성을 따라가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면 이 영화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기가 어렵지만
확실히 그들의 향수를 느끼기엔 충분한 영화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기보다는
(처음에는 작가의 시점으로 영화를 시작하면서 스토리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챕터가 진행되면 될수록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더욱 주목하게 만들고 있지요.
보는 맛이 굉장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화면비율이 시시각각 변동되며 특색에 맞는 시퀀스와 잘 맞춰져있지요.
장르 역시 굉장히 다양하게 채워져있지만 모든 것이 이 유니크한 영상으로 한데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패션계에서 사랑받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니 그의 영화 속 의상과 소품만으로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지요.
구스타브가 애용하는 향수 오 드 파나쉬와 맨들 케이크가 영화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데
그 소품들이 영화를 좀 더 효과적으로 꾸며주고 있습니다.
함께 그 향과 맛을 음미하게 하면서 지난 날을 되돌려보고 또 떠올리는 감각을 살려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영화는 동화다운 색채와 어른스러운 감성, 그리고 배우들의 유니크한 연기로 영화에 빠져들게 합니다.
(어떻게보면 웨스 앤더슨의 작품 중 문라이즈 킹덤과 가장 닮아있는 영화인데
견고함으로 따지자면 문라이즈 킹덤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한수 위이죠.)
빠져드는 눈빛으로 복합적인 감정을 모두 소화하는 랄프 파인즈.
가장 개성이 뚜렷한 연기로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살려내는 월렘 대포.
문라이즈 킹덤의 연장선상에 놓인듯한 아기자기한 연인 토니 레볼로리와 시얼샤 로넌.
마담 D를 연기하는 틸다 스윈튼의 존재감까지.
(그 밖의 인물들도 너무나 많죠.)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다만, 마치 종합예술처럼 보여지는 그 수많은 장치들이 좀 뜬 구름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은 참으로 고독하게 그러나 독특하게 영화를 휘젓고 다니는데
특히 많이 출연하는 구스타브와 제로는 영화에서 가장 외로운 인물이면서 사랑이 가득한 인물이지요.
그때문에 이 화려한 동화는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지만 한편으론 따스합니다.
좀 더 단순하게 아기자기한 사랑을 이야기하던 문라이즈 킹덤이 개인적으로 더 좋았지만,
그래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외로움 가득한 지난 날을 아름답게 떠올리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