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원래 2008년 7월 10일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을 제가 올린 이유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인지는 심각한 한국 사회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인지에 너무 무관심 하기에, 이 글은 그에 대한 좋은 내용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올립니다.
뉴욕은 범죄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도시 중 하나다. 시 당국은 범죄를 줄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동원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이미 세상을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압박도 회유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인문학자가 '클레멘트 코스'라는 걸 만들었고 이 프로그램은 시당국이 시도했던 어떤 방법보다 좋은 효과를 얻었다. 이 코스를 거쳐간 사람들의 재범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낮았다.
클레멘트 프로그램은 노숙자 빈민 죄수 등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범죄자들에게 인문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인문학이 어떻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클레멘트 프로그램의 사례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클레멘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얼 쇼리스라는 인물이다.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이기도 했던 그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를 방문해 한 여죄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할까요?"란 쇼리스의 질문에 이 여인은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고민에 빠진 쇼리스는 작은 깨달음을 하나 얻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 즉 '인문학'을 접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깊이 있게 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몰라 자기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안 것이다.
쇼리스는 1995년 노숙자, 빈민, 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수업인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고 수준 교수진이 모였고, 20명의 예비 수강생 중 13명이 강의를 신청했고,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갔다. 끝까지 강의를 들었던 사람 중 상당수가 범죄와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취직에 성공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는 욕이나 주먹이 먼저 나갔어요. 그런데 이젠 그렇지 않아요.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됐거든요."
인문학을 배운 이들은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게 바뀌었고 언어표현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희망의 수업'이라고 불리는 클레멘트 프로그램의 창시자 쇼리스는 "인문학이 소외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무기력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일상을 자율적이며 자신감 있게 새로 시작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말한다. 인문학이 희망인 이유다.
모든 학문은 인문 사회 자연 이라는 세 가지 갈래에서 나온 것이다. 이 중 인문학이 가장 먼저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인간이 구성한 사회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 나온다. 이것이 학문의 계통수(系統樹)다.
사람들은 인문학이 비실용적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심각한 오해다. 인문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옳고 그름, 현명함과 어리석음, 착각과 실제 등을 구분하는 능력을 가르쳐준다.
지금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다양하고 심각한 질병을 치료하는 유일한 길이 인문학에 있을지도 모른다. 안팎으로 되는 일이 없는 미국 펜타곤이 미국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인문학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는 외신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문화부 = 허연 차장praha@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