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좋은 글. 여러분도 함께 보시면 좋겠네요. 길더라도 읽으시면 왜 2MB와 한나라당, 친일보수들이 방송장악을 하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출처는 한겨레 신문 칼럼 입니다.
국민들이 올림픽 승전보에 취해 있던 지난 월요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은 출근하자마자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에 대한 이사회의 해임 제청안에 서명했다. 그 후 보수 정치권은 일제히 환영 논평을 냈다.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케이비에스가 정치적 중립성을 확립하고 세계적인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논평했다. 그런데 감사원이 지적한 해임 사유는 이른바 ‘경영 부실’일 뿐 어디에도 정치적 중립성 운운 대목은 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진짜 정 사장 해임 사유란 말인가? 경영 부실인가, 중립성 훼손인가?
정치적 중립성이 그토록 문제라면 지금 방송 중립성 훼손의 중심에 서 있다고 비판받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왜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정치적 중립성의 판단이 정권의 몫인가? 그것은 결코 국민이 위임해 준 권한이 아니다.
대통령은 해임 제청안에 서명하면서 “케이비에스도 거듭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좋은 지적이다. 케이비에스는 조금씩 국민 곁으로 더 다가서고 있고 앞으로도 끝없이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5공 식으로 공영방송에 사복 경찰을 집어넣는 정권은 어떻게 21세기에 맞도록 거듭날 것인가? 아마도 국민은 케이비에스보다는 정권의 거듭남에 더 관심이 클 것이다.
한나라당은 또 “케이비에스가 국민 화합을 도모하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논평했다. 기자 생활을 15년 하면서 케이비에스 사장에게 국민 화합을 이룰 막중한 책무가 있었는지까지는 몰랐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책임을 다 못 한 사장은 물러감이 마땅하겠다. 그렇다면 국민 화합을 도모하지 못한 대통령은 왜 안 물러나나? 지금 정권이 방송에게 ‘화합을 도모하지 못한 죄’를 물을 자격이 있는가? 보수 단체가 감사원에 케이비에스 감사 청구를 한 뒤 대통령의 해임 서명에 이르는 과정은 그야말로 물 흐르 듯했고 잘 짜여진 작전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와이티엔> 낙하산 인사, ‘피디수첩’ 검찰 수사 등 방송 관련 사안에 대해서 보수는 그야말로 정권, 신문, 시민단체 등이 합세해 마치 자웅 동체인 한몸처럼 일사불란한 대응을 보였다. 정작 중요한 국가 정책에 관해서는 갈팡질팡하며 엇박자를 보였던 점에 비하면 유독 방송에 관련된 행동에서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공조를 맺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왜 그럴까? 방송만 장악하면 보수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두 배쯤 뛰어오른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그 한 가지 이유를 현재 보수층의 구조 안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현 상황 속에서 보수 신문이 갖고 있는 역할 때문이다. 현재 보수는 이른바 ‘조중동’이라고 부르는 3대 신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보수권이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보수 신문들이 방향을 제시해 준다. 며칠 후 각 보수 기구와 정부 기관들은 십중팔구 이들의 훈수대로 움직인다.
그러면서 보수는 점점 조중동의 이해관계를 보수 전체의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착각하고 있다. 촛불시위 뒤 인터넷 매체에 대한 규제, 광고 중단 운동에 대한 수사 등 보수 신문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준다. 방송에 대한 과도한 집착 역시 상당 부분 쇠락하고 있는 보수 신문들이 미디어 시장에서 헤게모니를 다시 찾고 앞으로 ‘먹거리’를 창출하려고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현 시국은 방송을 민영화해 보수 신문들에게 주고자 하는 정권의 미디어 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정부는 우선 대기업의 방송 참여를 쉽게 해 주고 나서 신문의 방송 겸업을 허용해 준다. 또 <문화방송>과 <한국방송 2채널>을 민영화한다. 그러면 대기업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방송사 인수에 나서게 되고 여기에 겸업이 허용된 신문들이 참여한다. 그때 어떤 신문들이 참여하겠는가? 당연히 보수 정권과 한몸이고 자본 규모가 큰 보수 신문들이 될 것이다. 그러면 삽시간에 방송의 절반이 보수의 영향력 아래 들어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관련 법규를 마련해야 하고 방송의 힘을 빼 놔야 한다. 이것이 정권을 비롯한 보수권이 무리하게 방송을 장악하려고 하는 이유라고 본다.
보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보다는 이른바 빨갱이와의 대립을 통해서 자신을 인식한다. 진보 세력을 공격하면서 보수 간의 연대를 인식할 뿐, 정작 보수 안에서 공유하고 있는 도덕관·미래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점점 보수 안에서 브레인 기능을 하는 보수 신문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보수 신문들의 이해관계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수권은 정 사장이 노 정권의 코드 인사 당사자이기 때문에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청와대 국정기획 수석은 케이비에스 사장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 철학을 구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가지 주장을 종합해 보면 케이비에스 사장은 ‘다른 정권의 코드에는 맞으면 안 되고 이명박 정부의 코드는 구현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이런 논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과연 천연덕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인가? 최소한 주장하는 논리의 앞뒤는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자신을 중도 보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는 중도 보수가 몸을 담을 곳이 없다. 그것이 40살 전후의 전문직들이 다른 나라와 달리 진보 성향을 보이는 이유다. 우리 사회 보수에게 감히 충언하고자 한다. 남을 공격하는 데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콘텐츠’를 개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발 21세기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좀 해 달라는 것이다.
유성식 <한국방송> ‘시사기획 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