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흑과백의사이님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라서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씀드리긴 곤란합니다.
가치란 건 결국 대상과 질료를 어떤 것으로 두는가에 따라서 상당히 말들이 달라지는 문제거든요.
다만 정신적인 어떤 것의 가치로 영역을 한정하고,
한국인의 관계심리학 (권수영, 살림지식총서), 남자의 탄생 (전인권) 이 두 권의 도서와 개인적인 경험에서
유추한 것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한국인의 전통적인 정신적 가치는 관계지향주의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관계라는 말은 서양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인데,
서양의 관계는 바운더리, 즉 경계를 중시합니다.
아무리 관계를 깊게 들어간다고 해도 어느 정도 개개인간의 바운더리를 지켜주고
그것을 넘어서지 않는 선을 지켜주는 분위기가 있죠.
반면 한국인의 관계는 복합적이고 끈끈한 차원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바운더리를 지켜줘야 할 일도 서로의 용인 하에서 넘어가 버리는 일도 다반사죠.
몇 가지 근거라든가 하는 것을 간단히 들자면 이런 겁니다.
1. 전에 미국대학에서 한국인 총격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한국인의 주변상황과 관계망들을 생각하지만, 외국인들은 그 개인에게 원래부터 내포된 어떤 심인적, 유전적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개인에게 그 잘못을 치부합니다. 즉, 그 개인의 바운더리에 들어가 볼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죠. 그 개인의 바운더리는 다루더라도 그저 흥밋거리일뿐 우리처럼 공감하고 그걸 가슴깊이 이해한다고 하는 어떤 느낌이 없는 거죠.
이 내용은 한국인의 관계심리학이라는 서적을 읽어보시면 더 보충이 될 거구요.
2. 제게 사회복지를 가르치던 교수님 중 한 분의 관점이 조그만 부락, 마을의 관계망과 사회상이야말로 자생적 사회주의의 단계이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어떤 이상향으로 보시는 분이 계셨는데요. 이상향이라는 것에 동의까진 하지 않지만 수긍할 만한 부분은 충분히 있다고 느껴졌죠. 한국인의 정신적 가치가 이러한 관계지향주의와 관계가 있다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봤구요.
3. 남자의 탄생을 읽었을 때도 느낀 것이 뭐냐면, 남자는 가족 중에서 가부장적 역할만큼의 권위를 얻지만, 늙고 나이들어 그 권위가 희박해지면 가족 중에 가장 소외가 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 말은 1차집단 혹은 사회적인 어떤 집단에서든 가부장적 의무에 시달려 관계망을 소홀하게 된 결과가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할 수도 있거든요.
근거가 좀 부실한 듯도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조금만 더 생각해보시면
역사적으로든 현재사회상으로든 유사한 상황들을 찾으실 수 있을 듯 해요.
지금은 이러한 가치와 자본주의적 가치,
그리고 서양문화의 가치들이 혼재되어서 많은 충돌과 논의, 정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