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방송되었던 토론입니다 아래에 토론 동영상 링크 있음
"박정희의 경우는 자발적이고 전형적인 친일" vs "식민지 처지에서 어쩔 수 없었다"
[황상익의 쟁점토론 난장] 박정희 재평가 논란을 짚어본다
박정희 前 대통령에(이하 박정희) 대한 평가를 주제로 한 황상익의쟁점토론난장 39회에서는(23일 낮2시 생방송) 그야말로 옥신각신 난장토론이 벌어졌다.
토론에 참석한 진중권, 우종창, 류재갑, 홍근수는 박정희에 대한 상반된 평가와 함께 현재 논란 중인 친일진상규명법 개정과도 밀도 있는 연계를 시키면서 어느 때보다 격론을 펼쳤다.
(출연자 = 진중권: 중앙대 독문과 교수, 평론가 / 우종창: 월간조선 편집위원 / 류재갑: 경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홍근수: 목사,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국민여대 상임공동대표)
이날 토론은 시종일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졌고 그 ‘설전’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박장대소까지 선사했는데.
자발적이고 전형적인 친일, 독립군 탄압
vs 식민지국 위치에서 어쩔 수 없었다, 증거 없는 독립군 탄압
대통령이 되기 前 박정희의 친일행적에 대해 홍근수 목사와 진중권 교수는 “자발적으로 혈서를 쓰고 표창까지 받았던 전형적인 친일파로 진상규명이 필히 요구 된다”며 또렷한 입장을 못박았다.
반면, 우종창 위원과 류재갑 교수는 “실정법상 일본의 통치를 받던 시대에 식민지국 위치에서 누구나가 겪을 수 있었던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고, 무엇보다 “대통령으로써의 공이 큰 만큼 친일진상규명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우선 진중권 교수는 “박정희는 일본 괴뢰국인 만주 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해 관동군에 있으면서 독립군과 싸웠다”고 전제, “어디서 근무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특히 일제치하의 불가피성과 자발적인 친일은 구별돼야 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우종창 위원은 “관동군은 중국 양민을 괴롭히던 공산군(팔로군)을 막는 부대였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조갑제 저)라는 책의 집필과정에서도 밝혀졌듯 독립군 탄압은 증거가 없는 ‘설’에 불과하다”며, “사실관계를 바로 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홍근수 목사도 “관동군에서 장교를 지낸 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위치가 독립군을 처단하고 탄압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며, 또 “일방적으로 지시에 따랐다기 보단 박정희는 지도자로써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실천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류재갑 교수는 “박정희는 소위직을 1년 반 정도밖에 지내지 않았고, 이후엔 조직의 한 일원으로써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였을 뿐”이라며, “초급 장교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겠고, 누가 또 제대로 말을 들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혈서는 요식행위”였고 “독립군과는 싸우지 않았다”고.
나라를 위한 쿠데타의 목적은 정당했다
vs 통일이 가능했을법한 시기에 집권 위해 쿠데타 일으켜
토론자들은 5.16쿠데타를 바라보는 방향도 각을 이뤘다.
류재갑 교수는 “당시로선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지향이 한 걸음조차 무리였다”며, “쿠데타를 정당화 할 생각은 없지만 목적에 대한 정당성은 찾아볼 수 있다”며, “박정희가 하지 않았으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누구라도 했을 가능성과 역사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홍근수 목사는 “4.19 학생운동 이후 4.19를 짓밟고 반공을 국시로 내 걸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며, 심지어는 “당시 박정희의 쿠데타만 아니었어도 통일이 가능했을지도 모를 시기였다”고 점쳤다. 진중권 교수 역시 “정당한 목적이 없었을 뿐더러 우리 안보환경이 아주 위험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우종창 위원은 홍 목사를 향해 “좌익운동과 학생운동을 구분해서 보라”며, “어떻게 61년도에 평화통일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할 수 있느냐”며 강하게 반문했다.
이어 우종창 위원과 류재갑 교수는 물론 부작용도 있었지만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의 업적은 과히 “공”이었다며 극찬했다.
그 근거로 우종창 위원은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의 사업을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실현해 냈다”며, “시장경제는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끄는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면서, “박정희는 결단력을 지닌 지도자로 경제를 위해 ‘좌표’를 정해서 강하게 끌고 갔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갤럽 등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존경하는 인물 1위가 박정희이고, IMF 등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많은 국민들이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젖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진중권 교수는 이에 대해 “독재자 박정희가 살아 있었다면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겠느냐”며,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의 향수”라고 되받았다.
이어 “경제가 누구 덕분이니 하는 말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어법”이라며, “경제지표는 투자 교육 저축이 좌지우지하는데 투자든 교육이든 저축이든 이런 것들이 모두 박정희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냐”며 꼬집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경제) 고질의 노동력과 보릿고개를 극복하고자하는 우리 국민들의 의지가 만들어 낸 것”이고, “박정희는 국민들에게는 단순노동력 착취라는 원시적인 축척만을 지향했고 현재 우리 경제구조 전반을 취약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
그러나 류재갑 교수는 “시장경제에서 빈부격차 등 부작용은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그 나라 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반박, “오직 노동력만 있는 황무지 상태에서 박정희 같은 지도자가 없었다면 이만한 경제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박정희는 “철강 화학 자동차 IT 등 산업의 틀”을 잡아 놨고, “부장용도 있었지만 큰 숲을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홍근수 목사는 “박정희는 월남파병으로 돈을 벌기 위해 용병을 보내고 산업쓰레기를 수입하는 등 방법이 잘못됐다”며, “보릿고개를 넘길만한 지도자는 그 당시 많았고, 박정희만 아니었어도 훨씬 건설적이고 민주적인 산업발전을 이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목사는 또 박정희는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자기식의 경제를 창조한 것이고, IMF의 씨앗을 뿌렸던 자”이고, 되돌아보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집권한 30년간은 인권이 유린된 한국시대사의 암흑기 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같은 시대를 걸어와 동 시대 연구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주역들이었지만 역사적 진실에 대해 합의점을 찾진 못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어떻게 바로 세워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했고 방안도 제시했다.
진중권 교수는 “현재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진상규명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데’ 있다”며, “지금처럼 정략적으로 접근할게 아니라 목적에 대한 합의 영역을 찾아서 국회 차원에서 공적 국가적 입장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홍근수 목사는 “친일진상규명으로 민족 정통성을 되찾아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놓고 또 정략적인 이용만하다가 떠나보낼까 염려 된다”며 진 교수의 말에 동의했다.
류재갑 교수는 “지난 세기들은 사람 혹은 세력 죽이기가 반복된 역사”라며,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외세지배 상황을 감안한 상황에서 제도적인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역사 재조명의 ‘정도’의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우종창 위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재조명할 부분이 있다면 국회차원에서 조용히 백서로 규명함이 옳은 것 같다”고 주문했다.
분홍색 옷 입은사람 대박이다.... 특히 마지막에 진중권과 광주학살 문제로 언쟁할때가 압권
짱공 동게에 토론동영상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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