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의제는 용산참사와 살인자 강씨로 나눠지면서, 용산참사의 핵심논점에 대한 치열성이 떨어진다. 여전히 용산참사 관련 촛불집회 등 다양한 이슈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갈래의 의제는 전혀 상관없는 듯, 독자적인 이슈와 뉴스로 진행되고 있었다.
‘살해행위’라는 반인륜적 범죄행각이 속속 드러나지만, 이미 담론수준으로 진화한 용사참사와는 달리, ‘담론’으로 진화되지 못한 채 ‘발생사건’으로서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데 조중동을 중심으로 ‘사형제도 존폐 논란’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지만 찻잔 속의 태풍처럼, 조중동의 틀을 벗어나지 않은 채, 전면적인 담론으로의 진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설 연휴를 거치면서도 수그러들지 않고, 용산참사에 대한 촛불집회 등 ‘이명박 대통령 사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구속 구사’ 등이 강력한 여론의 축을 형성하며 확산되고 있는 그 즈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느닷없이 ‘강씨의 사진’을 공개했다.
사회적 의제 바꾼 조선과 중앙의 강씨 사진 공개
1월31일. 조간신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강씨 사진 공개’는 곧장 다른 미디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 중 SBS의 <8시뉴스>와 KBS1TV의 <9시뉴스>는 31일, 즉 그날 저녁에 강씨의 얼굴을 공개한다. 사회적 논란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사회적 합의지점이 거의 없던 상황을 일방적으로 깨고 나온 것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어 MBC의 <뉴스데스크>도 1일, 강씨의 사진을 공개하는 대열에 슬쩍 몸을 싣는다.
사진을 공개하지 않은 주요일간지는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그리고 한국일보뿐이다. 그 중 경향은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이름만 공개했고,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사진 공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며 앞으로도 사진을 공개하지 않을 것을 밝혔다.
발생사건에서 사형제 존폐 담론으로 발전
‘사진공개와 함께 범죄자 인권문제와 사형제 존폐’ 논쟁이 인터넷을 후끈하게 달구기 시작하면서, 용산참사와 관련된 게시판의 글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신문과 방송의 뉴스에서도 용산참사는 어느 듯 기억 저 편의 사건으로 점차 수그러든다.
▲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의도적으로 치고 들었던 ‘강씨 사진공개’는 그래서, ‘사건은 사건으로 덮는다’에 실패한 상황을 ‘담론은 다른 담론으로 덮는다’는 전술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용산참사-이명박 대통령 사과-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구속수사-철거와 개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등으로 이어지는 ‘용산참사 프레임’이 순식간에 물러나고, ‘군포여성살인사건-강씨의 반인륜적 행각-사진 공개-악질 범죄자 인권보호 배제-사형제 폐지 반대’라는 ‘인권과 사형제 프레임’으로 사회적 의제가 교체된 것이다.
이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의도한 프레임 전쟁에서의 승리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정국의 구원투수’로서의 그 힘과 영향력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수년 간 한국 민주주의와 한국 저널리즘의 진보적 성과라고 했던 ‘범죄자 인권 문제’는 다시 퇴보하고, 감정적으로 들끓고 있던 ‘강씨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성숙한 민주주의의 기본을 한 방에 엎어버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역시 이들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충신’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조선과 중앙’에게 지상파까지 줄려고 혈안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