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1만원권 1972년 최고액권인 1만원권에 석굴암 본존불과 불국사 전경이 들어갔다. 시쇄 화폐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서명을 받고 발행 공고도 마쳤지만 불교계·기독교계 양측의 반발로 세상에는 나오지 못했다.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제공]
신사임당(1504∼51) 초상과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묵포도도’와 ‘초충도수병’(보물 제595호), 어몽룡(1566∼?)의 ‘월매도’와 이정(1541∼1622)의 ‘풍죽도’.
최근 한국은행이 공개한 신권 5만원권에 담긴 그림들의 화려한 면면이다. 역사에 드문 여성 문화예술인인 신사임당은 5000원권에 들어간 ‘초충도’의 화가이자 율곡 이이(1536∼84)의 어머니다. 현행 화폐에 관련 이미지가 가장 많이 들어간 ‘화폐 여왕’인 셈이다. 최고액권에 국내 화폐 최초로 예술인이자 여성인물이 단독으로 들어갔다는 의미도 있다. 6월부터 유통될 예정인 새 5만원권에 들어간 조선 회화들은 간송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소장품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만나는 그림이자, 갑남을녀의 지갑 속에 들어간 박물관 속 문화유산. 그게 바로 화폐 도안의 묘미다.
◆지갑 속 박물관 =지갑을 열어 지폐를 꺼내보자. 2007년 발행한 1000원권 앞면에는 현초 이유태 전 이화여대 미대 학장이 1974년 그린 퇴계 이황(1501∼70) 초상과 성균관 내 유생 교육기관인 명륜당(보물 제141호)과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 도안이 들어가 있다. 초상화는 30여년간 유지됐으며, 명륜당 이전의 83년 발행 1000원권에는 도산서원이 있었다. 뒷면엔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보물 제585호)가 들어갔다. 5000원권의 율곡 이이 초상화는 일랑 이종상(71) 서울대 명예교수의 75년 작품이다. 1만원권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이 75년 그린 세종대왕 초상과 조선시대 임금의 권좌 뒤에 놓였던 ‘일월오봉도’와 ‘용비어천가’ 제2장이 들어있다. 뒷면엔 ‘혼천의’(국보 제230호)가 쓰여 한글 창제와 과학 부흥이라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렸다. 종전의 자격루·경회루에서 변경된 도안이다.
지폐에 들어간 최초의 문화유산은 정조와 다산 정약용이 세운 수원 화성의 화홍문(1910), 창덕궁 주합루(1911), 광화문(1912) 순이다. 정부수립 이후에는 광화문(1950), 탑골공원과 원각사지(1952), 숭례문과 해금강 총석정(1953)이 들어갔다. 특히 해금강 총석정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한 지폐에 들어간 북측 문화유산이다.
◆지갑 속 위인전 =화폐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것은 초상화다. 조금만 바뀌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어 위폐 방지 수단인 동시에, 그 나라 대표 얼굴 노릇도 톡톡히 한다.
50년 한국은행 설립 후 현존 인물이 화폐에 들어갔는데 이승만(재임 1948∼60) 초대 대통령이다. 돈 속에서도 50년부터 60년까지 ‘장기집권’하며 총 9종의 화폐에 쓰인 신기록을 남겼다. 생존 인물로는 유일하게 화폐에 얼굴을 남겼다는 기록도 깨지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는 최고액권의 권좌를 지키고 있는 1만원권에 들어있는 세종대왕 초상도 6종의 화폐에 쓰였다. 가장 오랜 기간 화폐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물 역시 세종대왕(65년부터)이다. 배경의 보조모델로 쓰인 것까지 포함하면 가장 오랜 기간 사랑받은 인물은 단연 충무공 이순신이다. 1958년부터 현행 100원 동전까지 무려 51년이다.
이번에 등장한 신사임당 초상은 엄밀히 말하면 화폐에 쓰인 두 번째 여성 인물상이다. 62년 저축장려를 위해 통장을 들고 있는 모자상이 100환권에 쓰였다. 이 100환권은 발행 26일만에 제3차 통화조치 실시로 새 화폐에 자리를 내준, 최단명 화폐이기도 하다.
[기사 중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