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이 시작되면서 단체로 새 학용품을 주문했는데,
나는 돈이 없어서 주문을 하지 못하고,누나가 쓰던 찌그러진 필통을 갖고 다녔다.
나는 이 필통을 가지고 다닐때마다 창피스러웠다.
가난해서 겪게 되는 창피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나 보통은 그때 뿐이었는데,
웬지 이놈의 필통만은 달랐다.
꺼낼때마다 나를 괴롭혔고 마침내는 큰 망신까지 당하게 했다.
4학년이 되어서 좀 어수룩한 아이와 짝을 지어 앉게 되었는데,
내가 그 아이를 살살 꼬여 그 애의 반짝반짝한 새 필통과 내 고물 단지를 맞바꾼 것이다.
나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친구들이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급장이라는 아이가 어수룩한 친구를 꼬여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냐는 것이다.
나는 궁지에 몰렸다.
친구들은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고,나는 결국 항복을 하고 필통을 되돌려 주고 말았다.
국민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의 대부분은 가난과 열등감, 그로 인한 반항적 태도, 이런 것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다들 보자기에 책을 싸 들고 다니거나 퍼런 돗베로 만든 가방을 들고 다녔다.
가끔 고무에 헝겊을 댄 가방도 있었는데,읍내의 부잣집아이들이나 간혹 가지고 다니는
고급 가방이었다.
어느 날 체육 시간에 당번이 되어 친구와 둘이 교실을 지키다가 그렇게 생긴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둘이서 가방을 뒤적여 보다가 그만 면도칼로 가방을 쭉 찢어 버렸다.
무슨 심술이었는지 모르겠다. 체육 시간이 끝나자 교실은 곧 발칵 뒤집혔다.
담임 선생님은 몽둥이를 들고 범인을 찾으려 했지만 나는 끝내 자백을 않고 버텨 넘어갔다.
그 일을 생각하면 본래 내가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일 말고도 거짓말을 했거나 훔친 일이 몇 번 더 있었기 때문이다.
- 노무현 前대통령 자서전 中 -
세살버릇 대통령까지 간다.
그나저나 놈현 구속되면 촛불 좀비들 난리 칠텐데...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한 촛불시위 툭하면 일어난다에 내 귀두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