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노컷뉴스 박슬기 기자]
지난 3월21일 경기도 성남에서 지적장애 10대 소녀가 살해된 뒤 암매장 당했다. 살인 용의자로 붙잡힌 이들은 숨진 소녀와 함께 동거해온 가출 청소년들이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의 행위가 하나둘씩 드러났다. 단순한 구타를 넘어서는 '가혹행위'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몇몇 언론에 단신으로 보도된 뒤 세인들의 관심밖으로 사라졌다. 노컷뉴스는 위험수위에 다다른 '청소년 범죄'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이번 사건을 심층취재했다. [편집자 주]
지난달 21일 오후 3시. 경기도 성남의 한 공원 관리인 김모(67)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공원을 순찰했다. 운동하러 나온 시민들과 아이들이 많은 주말이라 중간중간 공원 상태를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공원 뒷편에 있는 소공연장에서 쓰레기 몇 개를 줍고 돌아서려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평소 보던 풍경이 그날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소공연장 뒷편 야산 일부가 벌건 황토색으로 변해 있었다. 가만 보니 땅이 파헤쳐져 있었다. 사람이 다닐 일이 전혀 없는 곳이라 뭔가 꺼림칙했다. 가까이 가보니 하얀 이불 같은 것이 조금 보였다. 김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해 그곳에서 이불에 싸인 시신을 찾아냈다. 야산에 쳐져있던 철조망 너머에서는 사망자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과 지갑, 옷가지 등이 담긴 비닐 봉지도 발견됐다.
곧바로 사망자의 신원이 확인됐다. 인근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지적장애 소녀 A(16) 양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A양 살해혐의로 A 양과 동거를 해온 B(18), C(18), D(18) 군과 E(16) 양을 체포했다. 이들은 A양을 20여일동안 감금한 채 구타해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과연 20일 동안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극의 시작… 위험한 동거·날카로운 키스
A양이 이들과 동거를 시작한 것은 지난 2월 초. A양의 남자 친구인 B군이 C군에게 "월세를 낼테니 같이 지내자"며 A양과 함께 경기도 성남의 한 다세대 주택에 들어오면서 이들의 '위험한 동거'가 시작됐다.
A양과 B군이 동거에 들어간 집은 C군 엄마의 소유였지만 C군의 엄마는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었고, C군 역시 여자 친구인 E양과 그 오빠이자 동창인 D군과 동거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10대 5명의 세상이었던 셈이다.
식사준비는 E양이 담당했다. 라면을 주로 먹었지만 가끔 간단한 찌개와 C군의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몇가지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들의 주요 일과는 TV 보기, 비디오 보기, 인터넷하기, 잠자기.
이들은 편의점과 주유소,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지만 A양이 이 집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A양의 통장으로 매달 장애인 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 등 90만원이나 되는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돈이 더 필요하면 가끔 A양 엄마에게 돈을 갖다 쓰기도 했다.
이들이 동거에 들어간 지 한달이 지난 2월 말쯤, 이들에게 또다른 '일과'가 생겼다. A양을 폭행하는 것이었다.
A양이 남자친구인 B군이 없을 때 함께 술을 마시던 D군과 '입맞춤'을 했다는 이유였다. 입맞춤 사실을 알게된 B군은 일종의 '재판'을 연 뒤 입맞춤 사건을 A양의 책임으로 결론내렸다.
A양과 D군은 상대방이 먼저 유혹했다고 맞섰다. 그러나 목격자인 E양이 '남자친구를 놔두고 다른 남자와 키스한 A양이 잘못한 것'이라며 오빠인 D군의 손을 들어줬다.
첫날은 '배신했다'는 이유로 이불로 A양을 덮은 뒤 2시간 동안 목검과 쇠파이프 등으로 팔과 다리 등을 마구 때렸다. 폭행을 시작하던 날 각서도 받아뒀다. '도망치지 않기', '말할 때는 고개들고 말하기', '말 안들으면 손목 절단', '이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돌림빵(돌아가며 때리기), 윤간, 삭발 중 하나 선택하기'라는 끔찍한 내용이었다.
며칠 뒤부터는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밥에 변비약을 탔다는 이유를 대며 매일 1~3시간씩 작은 방에 있던 나무 의자에 A양의 팔과 다리를 노끈으로 묶어 놓은 뒤 폭행했다.
A양은 반항할 수도 없었다. 남자 3명이 때리는데다 온몸이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같은 여자여서 A양이 '친구'로 믿었던 E양도 A 양이 소리를 지르면 인근 주민이 알게 될 것을 우려해 입에 양말 등으로 재갈을 물리는 등 A양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A양에 대한 단순폭행은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C군은 평소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흉기를 더욱 뾰족하게 갈아 A양의 다리와 팔 등에 일부러 떨어뜨렸다. B군 등은 문신을 새긴다며 A양의 몸을 바늘로 찔렀다. 이들은 불에 달군 숟가락을 A양의 몸에 갖다 대기도 했다. '살 타는 냄새가 어떤지, 그때 반응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고통을 느끼기도 힘들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A양은 숨지기 며칠 전 '최악'의 하루를 경험한다. B군 등이 A양 몸에 이물질을 넣고 성폭행까지 저지른 것이다. 이들은 경찰에서 "재미로 해봤다"고 진술했다.
이후 A양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의식이 흐려지고 인지능력도 떨어져 숨지기 3일 전에는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지난달 19일 A양은 숨졌다. 이날 점심쯤 잠에서 깨어난 이들은 A양이 숨진 것을 확인하고 시신을 암매장하기로 했다. 이후 밤 10시쯤 '아지트'로 여겼던 공원 야산에 60cm 깊이의 구덩이를 파고 A양을 암매장했다.
집 옥상에 있던 빈 수레에 이불로 감싼 A양의 시신을 싣고 그 위에는 가방을 얹었다. 여행가방으로 속일 심산이었다. E양은 망을 봤고 B군과 C군, D군은 수레를 번갈아 밀며 1km 정도를 이동해 '일'을 처리했다.
A양을 암매장한 뒤에도 태연히 동거생활을 계속하던 이들은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도 범행을 부인하다 시신을 묶은 노끈을 들이대자 범행을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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