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 컬러사진들

하늘을닮은눈 작성일 09.05.08 00: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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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포로들의 숙소.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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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
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장은 이들에겐 일장춘몽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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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흡사 무슨 공장을 연상케 한다.
수만 명의 포로를 먹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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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뭔가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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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되ㅤㅊㅏㅊ은 인민군 여자 포로가 미소를 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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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민군 포로.
탁발승처럼 모포를 가슴에 두른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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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연병장에 모여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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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병이 인민군 포로들로부터 입수한
철조망을 뜯어 만든 사제 무기와 도끼,칼 등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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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태극기와 양 팔뚝에 멸공,애국 이라는 글씨를 새긴 반공 포로.
밤마다 親共(친공)포로와 反共(반공)포로들의 살육전에

많은 포로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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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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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나고,
운이 다한 사람들은 한 점 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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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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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문 긴 담배대를 고개를 외로 꺽고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이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배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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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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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구를 싣고.
수백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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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앉아 참외 등을 팔고 있는 아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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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한 지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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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더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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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 내에서 친공 포로들이 제작해 걸어 놓은 선동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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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 6.25 직후 사진

.. 이 사진들은 알바니아 태생으로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한국전쟁을 취재한 미국의
저명한 사진가 디미트리 보리아(1902~1990)가 駐日 美극동사령부 사진반에서 일할때
한반도 각지를 돌며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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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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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
그리고 잡초보다 모질 게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
이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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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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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 "의지의 한국인"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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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 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 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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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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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
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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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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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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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
두 소년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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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건너온 미군복을 얻어 입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마음씨 좋은 미군 아저씨를 만나면
미국으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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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소년들.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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