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름다운 소동’이 벌어졌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삼수초등학교 교장과 교사들은 2박3일 일정의 6학년 수학여행을 떠났던 지난 14일 A군을 찾느라 진천읍내를 이잡듯 뒤지며 9시간이나 진땀을 흘렸다.
당일 오전 8시30분에 교정에서 수학여행지인 경주를 향해 출발하려던 관광버스는 출발시각을 넘겼는데도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A군 때문에 발이 묶였다. A군의 담임 최일집 교사는 전화통화에서 ‘진천읍내에 도착했다’고 말했던 A군이 3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조급해졌다.
연락두절 상태로 교사들을 애타게 만들었던 A군이 풀죽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전 아무래도 못갈 것 같아요. 친구들과 떠나시면 안될까요”라고 말한 때는 예정출발시각을 2시간이나 넘긴 뒤였다.
최영순 부장교사.이부원 교사 등과 대화를 나누던 중 A군이 결손가정 아동이란 것과 (할인된)여행비 4만여원조차 제때 내지 못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점을 알아낸 이피찬 교장은 ‘평생 한 번뿐인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못가게 된다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안게 될까’고 생각했고, A군을 어떻게든 수학여행길에 올려놓자는 결정을 내렸다.
우선 관광버스를 출발시킨 이 교장은 남은 교사들과 함께 A군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A군과 더 이상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데다 학교에 제출된 그의 집주소와 실거주지가 달랐기 때문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진천읍내와 백곡면 일대를 수소문하던 이 교장 일행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큰아버지댁에서 여동생(4년)과 함께 있는 A군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애간장을 녹이게 만든 장본인 A군은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라면서 고개를 떨궜고, 뇌수술을 받고 입원치료중인 아버지 대신에 A군이 동생을 뒷바라지하는 광경을 본 교사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교사들은 2박3일간 동생 뒷바라지를 대신 책임져주기로 약속하고 A군에게 수학여행길에 오를 것을 설득했다.
교사들의 이런 노력을 지켜보던 이 학교 운영위원 박경희씨(45.사업)는 “이젠 내가 A군을 도울 차례”라면서 A군에게 용돈과 음식을 안겨준 뒤 그를 택시에 태워 친구들이 먼저 도착해있는 경주로 ‘공수’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박씨는 삼수초에 1000여 만원을 들여 방범용 CCTV 14대와 녹화장비 등을 설치해준 독지가였다.
학교 구성원들의 이런 애틋한 정을 받으면서 여행일정을 마무리하고 학교에 도착한 A군은 “1년 동안 해야할 거짓말을 오늘 오전에 다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교사들에게 했다.
이 교장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에야 담임교사가 여행비를 대납해준 점과 이를 미안해할 정도로 A군은 자존심이 강하고 정직한 아이란 걸 알았다”며 “A군이 ‘누군가 내게 관심과 애정을 쏟아주고 있구나’란 생각을 하고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