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밤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윤 아무개 선생은(36) 지인들과 식사를 마친 뒤, 한나라당사 앞을 지나다가 늦은 시간까지 근무를 서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고 “맹박아 너 때문에 못살겠다. 경찰이 개고생이다”라는 말을 두세 차례 외쳤다.
대통령 비난 몇 마디가 음주 소란으로
하지만 그를 포함한 일행 3명은 곧 경찰 20여명에게 가로막힌 채 신분증 제출을 요구받았으며, 이를 거부하자 양 팔이 꺾인 채 여의도지구대로 강제 연행되었다. 당시 경찰은 관등성명 및 미란다 원칙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고 당사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즉결심판출석통지서’를 발부받았다.
통지서에 적힌 범죄 내용에는 ‘상기 위반자는 위 일시, 장소에서 음주를 한 채, 명박아 너 때문에 못살겠다. 경찰이 개고생이다 등 경찰이 제지함에도 불구하고 약 15분 간 음주소란을 한 자’라고 적혀 있었으며, 경범죄처벌법 1조 25호를 위반했다는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즉결심판출석통지서
경범죄의 종류를 명시한 경범죄처벌법 1조 25호에는 “(음주소란 등) 공회당·극장·음식점등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 또는 여러 사람이 타는 기차·자동차·배등에서 몹시 거친 말 또는 행동으로 주위를 시끄럽게 하거나 술에 취하여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주정을 한 사람”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12일 오전 <레디앙>과의 전화인터뷰에서 “한나라당사 앞을 지나가는 길에 몇 마디 외쳤다고 강제로 연행됐는데, 너무 황당해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며 “당시 저녁에 지인들과 반주로 1~2잔 정도 했지만 취한 상태는 절대 아니었고, 또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관등성명조차 밝히지 않는 경찰에 항의했을 뿐 소란을 피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당시 경찰들이 와서, ‘이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정도로 경고하고 되돌아 갈 줄 알았고 지구대에 가서도 당연히 훈방 조치될 줄 알았다”며 “하지만 경찰은 미란다 원칙조차 밝히지 않고 강제로 경찰차에 태워 연행됐고, ‘즉결심판통지서’까지 발부했다”며 어이없어 했다.
재판 출석해 경찰 잘못 밝힐 것
그는 또 “하지만 18일 재판에 출석해서 제가 당한 억울함과 경찰의 잘못한 점을 밝힐 생각”이라며 “이명박 정부 들어 경찰이 정권에 과잉충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스스로도 잘못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비판을 참지 못하고 과잉 대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민변 권영국 변호사는 “단순히 당사 앞을 지나가다 경찰이나 정부를 비아냥 거렸다고 처벌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며 “당시 주말 밤이라 여의도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었고, 당사자들도 술도 거의 먹지 않은 상태였다고 하는데, 이는 경범죄처벌법 1조 25호에 있는 ‘음주소란’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건은 ‘긴급조치’ 시대에 사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정부와 경찰을 비판하다가 걸리면 처벌받는 ‘막걸리 보안법’을 떠올리게 한다”며 “이명박 정부가 ‘경찰국가’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레디앙>은 이날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취재를 거부했다.
다음은 윤 아무개 씨와 나눈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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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한나라당사 앞에서의 상황은?
윤 = “지난 10일 지인 2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밤 11시 경 일행 중 한 명의 여의도 사무실로
▲시위대로부터 당사를 지켜주는 경찰들.
이들 앞에서 소란을 피웠던 것도 아니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이런 말을 몇 차례 했을 뿐이다. 그런데 몇 분 뒤 경찰 20여명이 달려오더니 길목을 가로막고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이에 관등성명과 소속 등을 먼저 밝히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이를 밝히기를 거부했다.
이어 이들은 ‘신고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제가 그런 말을 한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경찰이 가로막았는데, 물리적으로 그 사이에 어떻게 신고가 들어오고 경찰에 접수가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누가 신고했는지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분증 요구를 계속 거부하자, 경찰은 제 양 팔을 꺾고 강제로 경찰차에 태웠다. ‘미란다’ 고지도 없었다.”
- 지구대로 연행된 뒤 상황은?
윤 = “잠시 뒤 일행 두 명과 함께 도착한 곳은 여의도 지구대였다. 몇 분 뒤 한 경찰관이 ‘신고가 들어온 내용’이라며, 3~4m 앞에서 잠시 전화기 액정에 있던 문자메시지를 보여줬다. 거리도 멀고 글씨도 잘 보이지 않아 무슨 내용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누가, 무슨 이유 때문에 신고를 했는지 도대체 알 방법이 없었다.
이어 지구대에 당시 한나라당사 앞에 있던 기동대 경사 1명과 의경 4명이 들어오더니, 그 때 상황에 대한 진술서를 작성했다. 저희의 이야기나 해명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 경찰들의 진술만 참고했다. 새벽 1시 반이 지나더니 경찰관 한 명이 저희들에게 ‘즉결심판출석통지서’를 건넸다.
범죄 내용을 확인해보니까 ‘상기 위반자는 위 일시․장소에서 음주를 한 채, 명박아 너 때문에 못살겠다. 경찰이 개고생이다 등의 경찰이 제지함에도 불구하고 약 15분 간 음주소란을 한 자’라고 돼 있었다. 당시 저녁에 지인들과 반주로 1~2잔 정도 했지만 취한 상태는 절대 아니었고, 또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관등성명조차 밝히지 않는 경찰에 항의했을 뿐, 소란을 피진 않았다.”
- 당시 심경은?
윤 = “한나라당사 앞을 지나가는 길에 몇 마디 외쳤다고 강제로 연행됐는데, 너무 황당해서 웃음밖에 안나왔다. 경찰들이 기본적인 수사원칙조차 무시한 것 같았다. 시민들의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한편으로는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우리나라 경찰의 인권수준은 아직 멀었다는 씁쓸한 생각까지 들었다.
저는 솔직히 당시 경찰들이 와서, ‘이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정도로 경고하고 되돌아 갈 줄 알았다. 그리고 지구대에 가서도 당연히 훈방 조치될지 알았다. 하지만 미란다 원칙조차 밝히지 않고 강제로 경찰차에 태워 연행됐고, ‘즉결심판통지서’까지 발부받게 되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경찰에 대한 인식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 앞으로 어떻게 대응?
윤 = “재판에 나가지 않더라도 사안이 경미해서 벌금형이 선고될 것 같다. 하지만 18일 재판에 당당히 출석하겠다. 그래서 제가 당한 억울함과 경찰의 잘못한 점을 밝힐 생각이다. 제가 당한 ‘황당한’ 사례가 널리 알려져, 앞으로 경찰이 원칙을 바로세울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도 촛불집회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어서 잘 알고 있지만, 요즘 경찰에게는 ‘살기’가 느껴진다. 또 집회 현장에서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시민들의 비판 등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결국 이명박 정부 들어 정권에 과잉충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스스로도 잘못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비판을 참지 못하고 과잉 대응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