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이 끝나자 '출정식(出征式)'이 시작됐다. 온 국민의 비통한 추도 행렬이 퇴장하자, 정치·이념 진영이 나와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정치권·노동계·시민운동권·언론 등에 포진한 이들 그룹은 국민적 추모 에너지에 올라타 반(反)정부 투쟁과 개혁입법 무력화를 시도하려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정치적 타살'로 규정하는 데서 투쟁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표적 수사하고, 메이저 신문들이 과장 보도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물론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다만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기세등등하게 '정치적 타살론(論)'을 펴는 그룹 중 그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과거 어떤 입장을 취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이 받은 돈이 채권·채무 관계인지 (중략) 객관적으로 밝혀져야 한다."
이것은 민주당의 최고위원이 두달 전쯤 공식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지금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임을 자처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진 사정이 달랐다. 혹시라도 파편이 튀어 올까 봐 조심하며 노 전 대통령과의 선 긋기에 여념이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연차 게이트'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은 여·야나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피해졌다"(대변인 논평)고 했고, "이명박 정부가 전직 대통령을 서거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하며 장외로 뛰쳐나온 민주노총은 "노 전 대통령의 수뢰 사실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4월 7일 성명)이라고 개탄했었다.
이른바 '진보 매체'들은 어땠을까. 이들 역시 노 전 대통령이 "국민 가슴에 못을 박았다"(한겨레신문·4월 8일)고 통탄하고, "날개 꺾인 도덕성"(mbc·4월 7일)을 분노했으며, "박연차 50억, 한 점 의혹 없게 파헤쳐라"(경향신문·4월 1일)고 촉구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정치적 타살' 운운하니 어색하기만 하다.
이들이 '타살론'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논거가 피의(被疑) 사실 공표다. 검찰과 메이저 신문이 입증되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의 혐의 사실을 알렸다는 것인데, 사실 원칙적으론 옳은 말이다. 법원에서 확정되기 전까지 피의 사실은 공표되지 않는 게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라면 당연히 예외다. 클린턴의 '지퍼 게이트', 오자와(일본 민주당 전 대표)의 정치자금 스캔들 때 미국·일본의 어느 언론이 침묵하고 있었던가. 정도 차가 있을진 몰라도, '박연차 게이트'의 각종 의혹을 보도한 것은 '진보 매체' 역시 마찬가지다.
피의 사실 공표 문제라면 도리어 이들이 할 말 없을 법하다. 멀게는 2002년 병풍(兵風), 가깝게는 2007년 bbk 파동 때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을 유포한 사람이 누구인가. 또한 지난해 미국 쇠고기 파동 때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여중생에서 주부까지 온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긴 이가 누구인가.
그때 근거 없는 폭로전에 나섰던 정당·노동단체·시민운동가·언론은 지금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타살'을 주장하는 그룹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단체가 이슈만 바꿔가며 검증되지 않은 허위사실을 유포해왔던 셈이다.
이들은 지금 검찰이 박연차의 '입'에만 의존해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퍼뜨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2년 전엔 김경준, 7년 전엔 김대업의 입에만 의존했고, 희대의 사기꾼들에 놀아난 셈이 됐다. 그렇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병풍이나 bbk나 쇠고기 문제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자기 잘못은 시치미 떼고 "누가 노 전 대통령을 죽였나"라고 외치는 이들에겐 '표변(豹變)'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물론 국민은 안다. 국민들이 애통해하는 것은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지, 표변하는 사람들의 투쟁 논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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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어오니 못보던 유저들도 많고 나름대로 활기(?) 띈 게시판 모양새군요.
어떤 게시판에 들렀다가 노무현 "서거"가 아닌 "자살"로 표현한 것으로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맘에 기사 좀 뒤적거리다가 하나 붙여옵니다.
노 전대통령의 자살이 2mb정권 퇴진 및 정치적, 투쟁적 에너지로 옮아가려 하는 모습이 조금은 우려스럽군요.
운명을 달리하신 노 전대통령 역시 사회분열을 원하시지는 않으셨을텐데..
덧.밤낮 기온차도 심한데 건강 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