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죽기 전에 독서도 못하고 담배만 찾았던 모양이다.
나는 담배는 피우지 않았고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물론 책은 시간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안 읽었다. 책은 멀리 했지만 신문은 가까이 했었다. 아침마다 배달되는 조선 중앙 동아를 나란히 펼쳐놓고 세상 이치를 다 깨달았다. 그 중에서도 주식시세표는 늘 정독했었다.
누구는 모가 나서 정을 맞았지만 나는 둥글둥글 유들유들 반들반들 처신한 덕택에 누가 나를 쪼고 싶어도 정을 댈 자리가 없었다. 삶을 기름지게 살아온 결과가 아니겠는가. 다행이다.
누구는 그릇 크기가 해인사 김칫독만해서 장렬하게 깨졌지만 다행이 나는 오사카산 정종잔보다 더 작은 그릇이어서 누가 일부러 던져도 깨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내 방아깨비 검사들의 충성스런 방아질이 사단이 나는 바람에 잠깐 욕은 먹었지만 그 뒤로는 큰 탈이 없었다. 용서와 화해를 하자는 캠페인이 잘 먹혀 든 덕이다. 아니 내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억력이 노루꼬리처럼 짧은 사람들 덕이었다. 다행이다.
자신만을 위해 살기도 버거운 세상인데 행여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헛된 생각은 한번도 품지 않았다.
내 인생 이만하면 잘 먹고 잘 살았다.
너희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물려주려 했는데 급한 김에 덜컥 헌납약속을 하는 바람에 아까운 재산 많이 줄었다. 그래도 많이 남았다. 다행이다. 땅은 첫째가 가져라. 아파트는 둘째가 가져라. 주식은 셋째가 가져라. 당신은 상가빌딩 수입으로 사세요. 양도세 특별면제 기간을 잘 이용해라.
나는 죄가 없는데 사람들이 죄가 많다 하니 헷갈리기도 하고 약간은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전과가 아무리 많아도 기도만 열심히 하면 천당 간다. 별이 아무리 많아도 기도만 잘 하면 별을 딸 수 있다. 천당 갈 수 있도록 기도 열심히 해라. 다른 나라에선 성서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바람에 부자가 천당 가기 어렵다더라.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더라. 그러나 한국에서는 하느님 믿으면 부자 되고 부자가 돼야 천당 간다. 이 땅의 대형교회목자와 양떼들이 시류에 맞춰 성서의 행간에 숨은 진리를 일찍이 깨달은 덕이다. 이 또한 천만 다행이다. 다행이 천당 가니 천당다행이다.
다만 사람 뼈 추리던 기술자도 목사 되는 마당에 목사까지 못 가고 장로에서 스톱된 게 한이다. 기도도 많이 하고 눈물도 간간히 흘렸으니 천당은 갈 것이다. 심지어는 내 목도리까지 풀어주지 않았더냐. 그러나 살아서 맨날 시이오였는데 죽어서 중간자리에 앉게 될까 그게 걱정이다. 이등병 죽어 일등병으로 진급되듯이 명예목사추서제는 없는지 장례 전에 한 번 알아보아라.
누구는 굵고 짧게 살다 갔지만 나는 가늘고 길게 끝까지 살아 남았다. 지금에사 고백하건대 내 화장실의 시간 또한 늘 가늘고 길었다. 눈 큰 부엉이 한 마리 벼랑 위로 높이 솟은 그날 이후로 난 단 하루도 쾌변한 적이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내 똥은 늘 설사 아니면 변비였다.
나는 원래 태생부터가 지하에는 강한데 공중에는 약하다.
소장이 찌릿찌릿 대장이 울렁울렁, 오늘은 쾌변이다, 나왔다, 성공이다, 싶다가도
아, 그 놈의 바위덩어리. 생각만 해도 아찔한 30미터짜리 부엉이바위가 눈 앞에 턱 하고 나타나면 용을 용을 써서 3센티 겨우 밀어낸 그것이 눈깜짝할 사이에 후다닥 대장 소장 십이지장으로 후진을 해버리더구나.
아, 내 생애 종장을 되돌아보면 먹을 것은 많고 음식은 기름진데 항문의 용량이 입의 용량을 따라가지 못하니 이것이 나는 늘 답답했다.
전통초가집 지붕 위에 박통 매달리듯 내가 존경하는 건국의 아버지, 건국의 아들,박통 전통 주렁주렁 묻힌 곳에 같이 묻히게 해달라. 방위를 잘 살펴 김해마을이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묻어라. 살아서 그만큼 고생했으면 됐지 죽어서까지 그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 죽어서나마 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큰 비석 하나 세워라.
경찰 방패모양이면 좋겠다.
방패 잡고 투구 쓴 경찰이 없었으면, 방아 찧는 방아깨비 검사가 없었으면 내 생애 단 하룬들 버틸 수 있었겠는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가.
쥐머리까지 들어가는 십이지상 세울 것 없다. 십이지 간지 중에 십 지를 뺀 나머지 이지를 세워라.
왼쪽엔 내가 찍은 적 골라서 찧어주던 방아깨비 검사석상. 왼쪽엔 투구 쓴 경찰석상. 욕심이 있다면 거기에서 하나만 더하자. 조중동 깃발 나란히 달린 삽자루 모양의 깃대 하나 꽂아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전부 나를 살려준 고마운 은인들이 아닌가.
화장하지 마라.
뜨거운 건 싫다.
나는 불 하고는 인연이 멀다.
살아생전에 불 때문에 혼이 달아난 일이 어디 한 두번이었던가.
재로 날아가버린 숭례문 떠오르고 용산 사람들 생각나서 싫다.
차라리 천년 후에 되살아난다는 냉동인간을 만들더라도 화장은 하지 마라.
혹시 또 아느냐. 천년 후에 되살아나면 지금 가진 주식이 천년 후에 천 배 될지 만 배 될지.
아, 촛불.
촛불 중에 초짜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식초 들어간 초밥은 맛 본지 오래다. 약방에 감초 들어간다는 소리에 한약도 끊은 지 오래다. 태우형님 18번곡은 하고 많은 노래 중에 왜 하필 배삼에 무’초’더냐. 초짜 소리 질린다 하소연 했더니 ‘초’여름 무더위까지 극성을 부리더냐. 심할 땐 초짜에 놀란 가슴 추짜 보고도 놀랐구나. 추모열기, 추모인파, 추부길에, 추징금에, 그 옛날에 골재 하청업자로부터 받아 먹은 ‘추’석떡값까지.
고초 당초 맵다 해도 양초보다야 매울쏘냐. ‘초’기진압 할 때 초짜 빼고 초짜 들어가 반가운 단어는 내 생애 하나도 없었다.
나를 추모할 일이 있어도 촛불은 절대 켜지 마라.
차라리 퇴폐이발소 삼색등을 켜더라도, 나이트클럽에 사이키조명을 켜더라도 촛불만은 켜지 마라.
정 놓을 게 없으면 성능 좋은 물총이나 하나 갖다 놓아라.
*참조
방아방아 찧어라 방아깨비 검사야 http://blog.hani.co.kr/jodalddong/17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