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를 보며 문산읍을 떠올린다
| 기사입력 2006-08-29 18:21 | 최종수정 2006-08-29 18:21
[오마이뉴스 염형철 기자] 29일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를 휩쓴 지 한 해가 되는 날이다.
세계를 경악케 했던 허리케인은 1400여명을 희생시키고, 150만명의 이재민과 80조 상당의 재산피해를 냈으며, 150조 가량의 복구비용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추모의 날로 선포한 오늘까지 지난해의 비극은 아직 아물지 않고 있으며, 뉴올리언즈는 옛 모습을 찾지 못한 채 '유령 도시'로 남아 있다. 인구는 절반도 안 되는 24만명으로 줄었고, 식당의 반이 문을 열지 않았으며, 학교의 2/3가 학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유래를 찾기 힘든 뉴올리언즈의 비극은 도시의 지리적 위치와 파괴적인 지역개발 때문이었다. 미시시피강과 폰차트레인 호수 사이에 제방을 쌓고 저지대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홍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상류의 댐들 때문에 토사 유입이 중단되고, 막대한 양의 지하수를 이용하면서 지반은 더욱 내려앉았다. 특히, 40년 전에 만들어진 MRGO(Mississippi River Gulf Outlet) 운하는 카트리나 침수 피해의 주범이었다.
미, 카트리나 침수 피해 주범 'MRGO' 운하
▲ 뉴올리언즈의 지리적 특성을 보여주는 지도
ⓒ2006 염형철MRGO운하는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태풍해일(storm surge)이 폰차트레인 호수에 유입될 때 고속도로 역할을 하면서 더 높고 더 빠른 해일을 만들어 냈고, 결국 제방을 붕괴시켰다(루지지애나 주립대 허리케인 센터 발표). 미시시피 강에 배를 띄우는 것보다 약 30마일쯤 짧은 뱃길(운하)을 이용한 대가치곤 너무 값비싼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뉴올리언즈가 거론될 때마다, 우리나라의 경기 파주시 문산읍을 떠올리게 된다. 대북 전시와 군사적 보급을 위해 건설한 문산읍은 낮은 곳이 해발 8m에 불과해, 제방 밖의 문산천 표고 7m와 차이가 없다(google.com).
이는 10m가 넘는 서해 조수 간만의 차를 고려한다면, 자연상태에선 갯벌이 있어야 할 곳이다. 또 임진강에 큰비가 내리면 문산천의 홍수위는 20m까지 이르게 되므로(99년 8월 1일), 도시는 홍수위보다 한참이나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실제로 문산읍은 1996년과 1998년, 1999년 세 차례에 걸쳐 침수됐으며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홍수의 원인은 저지대의 물을 퍼 내야하는 배수펌프장이 고장 나고, 용량도 부족해서 물을 배출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울러 임진강 지류인 문산천으로 흘러드는 동문천의 교각이 너무 낮고 폭도 좁아서, 홍수가 엉뚱하게도 도로를 따라 문산읍을 덮쳤다.
결국, 문산읍의 피해는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조성된 도시, 함량미달의 배수시설, 부실한 관리가 뒤범벅된 최악의 인재요 어이없는 비극이었다. 위정자들의 정략적 판단, 치수 정책부서의 무능력과 무책임, 지방 관료들의 불성실이 빚은 실패였다.
결국, 복구 과정서 'MRGO' 운하 폐쇄키로 한 미국
▲ 한탄강댐 예정지. ⓒ2006 오마이뉴스 안홍기하지만 정부는 지난 8월 22일, 이곳 문산읍의 치수대책으로 70km 상류에 한탄강댐을 짓겠다고 결정했다. 댐을 쌓아 문산읍 인근의 임진강 수위를 50cm 낮추면, 문산읍의 배수가 원만할 것이라는 논리다. 문산천의 홍수위와 문산읍 저지대와의 차이를 12m에서 11.5m로 줄이면 문산읍 주민들이 '홍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부가 동원한 재주 있는 전문가들은 이러한 논리를 기술적으로 검증해 냈을 뿐만 아니라, 높은 경제성과 사회적 수용성까지 발견했다는 점이다. 문산읍이 위험하면 주민들을 이주시키든지, 흙을 쌓아서 터를 높이든지, 제방을 튼튼히 하고 배수시설을 갖추든지 하는 상식을 건교부 전문가들은 간단히 뛰어 넘은 것이다.
뉴올리언즈 사태를 겪은 미국은 결국 복구 계획 과정에서 운하를 폐쇄하고, 파괴된 습지를 복원키로 했다. 그리고 도시의 수해 내성을 키우기 위해 토지계획과 도시설계에 대한 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전문가들의 뜻을 모아 댐 건설을 결정했으며 지난달에는(산사태와 급류피해가 폭우와 난개발 때문에 발생했는데도) 뜬금없이 다목적 댐이 부족해 홍수가 났다며 국민들을 짜증나게 했다.
홍수피해, 10년마다 3.2배씩 늘어나는 게 정상?
▲ 98년 홍수에 잠긴 문산읍 전경, 오른쪽 아래로 홍수를 직접 야기한 도로와 철도 교량이 보인다. ⓒ2006 염형철그럼에도 건교부 간부는 항변한다.
"우리의 치수정책이 일본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미국보다 못하다고 하는 것은 자학적인 평가이며 용납할 수 없다."
아마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 규모를 두고 말하는 모양이다. 독자들께서도 '과연 어디가 더 나은지'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
지난 5년간 32조원의 수해 예산을 들이고, 2만 8천여km의 제방과 1만9000개의 댐을 짓고도 홍수피해가 매 10년마다 3.2배씩 늘어나는 게 과연 정상적인가?
대부분의 예산을 댐과 제방에만 쏟아 부으며 치수대책만 세우는 건교부가 과연 치수정책을 총괄할 능력이 있는가? 건설 이권 세력의 전횡을 감독하고 통제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참여정부의 한탄강댐 결정이 바람직한가?
덧붙이는 글
환경연합 홈페이지에 게시 예정입니다.
기자소개 : 염형철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장이며, 물에 대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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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를 포기한 시점에서 적절한 기사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4대강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니, 그리 동떨어진 기사는 아닌것 같습니다.
미국도 이미 05년 카트리나 대재해 이후, 인간의 힘으로 대재해를 이겨낼 수 없음을 시인하고 스스로가 만든 운하와 댐을 포기하고 습지를 복원하는 정책을 추진중이다.
엘리뇨와 라니뇨로 대변되는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집중호우등 기존의 댐과 수로정비 정책으론 횟수는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허용범위를 초과한 강수량 앞에서는 대재해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의 시대역행적 국정운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이런 천문학적 액수가 들어가는 국가적 중대사업을 몇개월만에 뚝딱 결정하고 시행하려 하려는 정부를 보고 있자면 그저 한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