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한국에 근무했다는 제럴드 리는 “미 정보기관은 ‘자기 조국을 배신하는 놈은 인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수석, 장관, 장성, 그리고 국회의원과 대기업 CEO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미국중앙정보국(CIA)의 정보원 노릇을 한 사례를 폭로한 책 ‘NO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에서 이처럼 밝혔다. 미국 정보기관원들은 자발적인 정보원 노릇을 하는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을 ‘개’취급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은 미국 공작원과 만나는 걸 신분과시 수단으로 삼았고, 이들에게 자신이 정보가치가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통째로 가져다 바치는 사례도 많았다고 공개했다. 제럴드 리는 한미관계가 삐걱댄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면에는 한국내의 미국추종자들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정부를 혼내달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미국정부에게 피력하고, 미국정부의 한국담당자들은 6·25때 원조를 해주었던 그때 그 시절의 감각으로 한국을 다룬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적 자존심을 버리고 충견이 된 인사들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존경심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제럴드 리는 노태우 정부 출범 3일전 미국의 정보기관이 조언했던 한가지 얘기를 상기시켰다. “이른바 미국통을 절대 외교일선에 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는 “한국 검찰에서 자기들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미국연방수사국(FBI) 한국파견요원에게 알려 압력을 행사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계정세로 볼 때 미국과 맹방이어야 한다는 건 흔들어선 안될 가치”라면서도 “미국은 자신들이 존경할만한 상대에게 최상의 혜택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의 상층부에는 미국과의 라인을 구축한 세력이 자리잡았다. 이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미국의 라인을 무기삼아 국내 입지를 확보했고, 미국내 유력인사를 불러들여 한국대통령을 면담시키면서 자신들의 이권을 넓혀갔다. 대기업들은 특히 수백만달러를 기부하여 미국내 유력인사를 후원하고 그 힘을 빌어 한국정부를 콘트롤하는 데 이용했다. 미국을 상대로 우리나라의 국익외교를 펼치는 게 아니라 정반대의 로비에 활용했던 것이다. 참여정부는 임기초반에 한국내 미국추종자들의 이같은 행태를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외교안보라인에서 배제된 이들은 발악적으로 한국정부를 좌경이라며 미국에 고자질했다. 참여정부 초반 북핵에 대한 미국의 정밀폭격가능성을 들이대며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라인 부재를 문제삼았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정보기관의 전직고위관계자는 “한국내에서 이견이 있으면 내부에서 격론을 벌여야 할 문제”라며 “외국에 가서 자기 의견을 호소하는 것은 상대방 입장에서 볼 때는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