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사장의 뉴MBC 플랜은 알맹이가 없다. 너무 선언적인 게 아닌가 싶다. 신뢰할 만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보고받은 것을 토대로 이사들은 (경영진 진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엄기영 MBC 사장에 대한 자진사퇴 압박이 한층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 이하 방문진)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6층 이사회 회의실에서 정기이사회를 열고 3차례로 진행된 업무보고에 대해 총괄평가했다.
김우룡 이사장은 이날 "MBC 경영진이 경영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미흡했다"며 "장래 비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한 것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지금까지 보고받은 것을 토대로 심사숙고해 보자"며 "이사들의 공식·비공식 모임을 통해 (MBC 경영진 진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독자적으로 판단하자"고 밝혔다.
진퇴문제 본격화 신호탄 올랐나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46회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엄기영 MBC 사장과 인사를 나눈 뒤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 유성호 최시중
이 같은 김 이사장의 발언은 조만간 엄기영 사장 진퇴 문제 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3차례나 이어진 MBC 경영보고에서 신뢰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공표하고 나서는 것은 그 자체로 해임 요구까지 밟을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차기환 이사는 "방송사 경영진의 신뢰에 대해서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이라며 "방송국의 경영과 소유가 분리돼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어떻게 경영하든 임기를 다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이날 방문진 이사들은 엄기영 사장이 말 바꾸기를 하면서 신뢰성에 의문이 들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기환 이사는 "오늘(2일) MBC 경영진으로부터 받은 서면질의 답변서와 지난주 구두보고 내용을 비교할 때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며 "엄기영 사장이 말을 바꾸는, 신뢰성에 의문을 주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구두 보고 때는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PD수첩> 원본테이프를 이사들에게 제출해서 함께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는데 이번 서면보고 때는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것.
<PD수첩> 원본테이프 문제를 포함해 <100분토론> 시청자의견 조작의혹 등도 답변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차 이사는 "방문진 측이 MBC와 딜로이트 경영컨설팅회사가 맺은 계약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MBC측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했다"며 "방문진 이사들이 MBC 경영을 평가할 수 있는 서류를 못 보는 존재들인지 의문이고, 그 서류를 보여주지 않아 섭섭하다"고 전했다.
방문진 이사들은 엄 사장이 전날 발표한 'MBC 개혁'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차 이사는 "엄기영 사장의 뉴MBC 플랜은 알맹이가 없다"며 "선언적인 것에 불과하며 신뢰할 만한 조치들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 방송문화진흥회 일부 이사들이 MBC 경영진에 대한 자진 사퇴를 압박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열릴 방문진 정기이사회장 앞에서 MBC 노조원들이 MBC 장악 시도 저지와 언론자유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 "MBC 노조, 야당 의원처럼 행동하지 마라"
이에 앞서 MBC 노동조합 측은 김우룡 이사장에게 공개질의서를 전달하고 "MBC는 총체적 부실조직"이라고 비판한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다.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은 "설마 MBC를 근거 없이 비판했겠나 싶다"며 "MBC를 총체적 부실이라고 평가한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이사장은 "노조위원장도 내가 마치 누구의 사주를 받아 얘기하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며 "새로 선임된 이사진이 MBC 경영상황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김 이사장은 "MBC가 관리부재의 상태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관련해서 추후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 MBC에 상처내고 싶은 맘은 없다면서 "MBC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같은 노력은 조합도 방문진도 MBC를 위해서 잘 하자는 뜻으로 이해하겠으니 야당 의원들이 찾아온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MBC노동조합은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통해 "지난 반세기 MBC가 쌓아온 공정방송의 노력을 김우룡 이사장이 완전히 무시했다"며 "MBC를 총체적 부실조직이자 부도덕한 언론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근거를 즉각 밝히라"고 촉구했다.
만일 김 이사장이 타당성 없는 허위 주장으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언론주권을 빼앗는다면 스스로 사기집단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MBC노동조합은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외치는 방문진 이사들이 유치하고 수준 낮은 '공정성의 잣대'를 갖고 있는 데 수치심을 느낀다"며 "공정 방송을 외치는 속내에는 무조건적인 정권 찬양과 기득권층의 보호라는 음험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MBC를 좌파 방송, 왜곡 방송이라고 외치기 전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공정성과 객관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46회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한승수 국무총리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병순 KBS 사장, 엄기영 MBC 사장을 비롯한 방송관계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천 CBS 사장, 엄기영 MBC 사장,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 이병순 KBS 사장, 한승수 국무총리, 김형오 국회의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오세훈 서울시장) ⓒ 유성호 한승수 출처 : 엄기영의 뉴MBC 플랜 알맹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