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절차적 정의 바로 세워야

해담 작성일 09.09.04 14: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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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재주가 그리 시원치 않아 다른 사람의 글들만 퍼오니 부끄럽네요.

 

하지만 전에도 비슷한 감정을 실은 다른 분의 글을 올린 바가 있고,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동감하기 때문에, 이 글을 가져와 올립니다.

 

한겨레에서 가져왔습니다.

 

 

 

 

 

헌재, 절차적 정의 바로 세워야

 

 

  현재 미디어법 대리투표와 재투표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이 투표의 위법성을 다투는 권한쟁의 심판에 대한 심리가 헌법재판소에서 진행중이다. 사실 국회가 자신의 고유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헌법재판소로 쪼르르 달려간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경우도 언론 환경의 전면적 변화를 기획하는 법률 개정이기에 국회는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숙의, 대화, 타협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하였다. 국회는 격투장이 되었고 투표의 위법성 판단이 헌법재판소에 맡겨지면서 국회는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미디어법의 대리투표가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그것이 국회법을 위반하고 다른 의원의 표결권을 침해했는지, 그리고 미디어법 재투표가 ‘일사부재의의 원칙’을 위배하였는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대리투표 여부는 국회 본회의장의 시시티브이(CCTV), 각 방송사의 녹화화면, 본회의장에 있었던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당 의원이 야당 의원 자리에서 찬성 표결 버튼을 눌렀건, 야당 의원이 여당 의원 자리에서 찬성 표결 버튼을 눌렀건 간에 그러한 일이 단 한 건이라도 있었다면, 이는 국회법 위반임은 물론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다. 야당의 투표 방해가 있었다고 하여 대리투표가 정당화될 수는 없기에 이처럼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는 법률은 당연무효이다. 헌법재판소는 향후 국회 의사절차에서의 원칙과 품격을 세우기 위해서도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일사부재의의 원칙’이란 한 번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지 못한다”는 원칙이다(국회법 제92조). 2008년 발간된 <국회선례집>에는 “의장이 투표종료를 선포한 때에는 더 이상 투표를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방송법의 경우 이윤성 국회 부의장이 표결 개시를 선언하고 표결이 진행된 후 투표 종료까지 선언했음에도 재투표에 들어가 통과시켰다. 화투판에서도 지켜지는 ‘낙장불입’의 원칙이 국회 표결이라는 국가 중대사에서 지켜지지 못한 것이다. 이상의 점에서 ‘일사부재의의 원칙’ 침해 주장은 강한 근거를 갖는다. 국회사무처와 한나라당은 투표에 참석한 의원이 재적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여 표결이 불성립한 경우이기에, ‘일사부재의의 원칙’ 위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성립’과 ‘부결’을 구별하려는 이러한 주장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또다른 법적 문제가 있다. 재투표 로그 기록에 따르면 당시 국회 부의장이 재투표 선포를 하기 이이전에 이미 68명이 투표를 하였다. 이는 의장의 표결 선포 후 투표 개시를 규정한 국회법 제110조를 위반하는 사전투표이다.

  사실 ‘정치의 사법화(司法化)’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선거로 뽑혀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못하여 선출되지 않는 법률전문가인 헌법재판관 앞에 달려가 자기 손을 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일이 벌어진 것은 한심스럽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정치환경 속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어쩔 수 없이 국회의 입법 영역에 개입하는 일은 계속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헌법재판소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원칙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향후 각종의 국회 내 불법·변칙 표결이 발생할 가능성을 봉쇄해야 한다. 설사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미디어법 개정의 목적이 지고지선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절차적 정의의 파탄까지 용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절차적 정의 없는 의회 민주주의는 시정잡배의 투전판보다 못하게 됨을 모두가 명심해야 할 시간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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