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강남준교수, 29개 연설문 분석미래 약속하는 ‘~하겠다’사용빈도 일반인의 60배‘결코’ ‘절대로’ 빈도도 37배일반 정치인들과 대조적
이명박 대통령이 연설에서 카리스마 있고 공격적이며 단정적인 어휘를 즐겨 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강남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팀은 12일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전현직 대통령의 수사학 연구’ 논문에서 이 같은 분석을 제시했다. 강 교수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작년 2월 25일부터 올해 9월까지의 연설문 중 축사나 서면, 짧은 발언(500어절 미만)을 뺀 29개 연설문을 ‘한글 형태소 프로그램’으로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연설을 통해 대통령의 심리상태 등을 유추하기 위해 진행했다.
논문에 따르면 미래를 나타내는 선어말어미인 ‘-겠-’의 사용빈도(0.649%)는 일반인 평균(0.011%·국립국어원 기준)보다 60배가량 높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록에서는 ‘-겠-’의 빈도가 0.043%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 교수팀은 “미래시제 선어말어미의 사용은 대통령들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약속해 현재의 위기를 회피하려는 심리상태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리더일수록 추상적이고 장기적인 미래를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공격성을 나타내는 표현의 대표 어휘로 선정한 ‘결코’와 ‘절대로’의 사용빈도(0.052%)도 일반인이나 노 전 대통령보다 37배가량 높았다. 이는 이 대통령이 공격적이고 단정적인 어휘를 즐기고 있으며 일반 정치인과는 다른 연설 행태를 보인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일반 정치인들은 직선적인 발언보다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어휘를 구사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의 심리상태를 잘 드러낸다는 일인칭 대명사(나, 우리)의 경우 ‘나’는 시기별로 별 차이가 없지만 ‘우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대통령 수사학과 관련한 기존 연구에서는 ‘나’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면 정치적 위기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자기중심적’ 사고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국민과의 연대감을 추구하려는 심리상태를 반영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강 교수팀은 “공식 연설문의 특성상 정제된 어휘를 쓰기 때문에 대통령의 심리상태를 정확히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특정 어휘의 사용 빈도가 평균과 크게 다르다면 이는 이 대통령의 말하기 습관이나 개인 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서는 집권 초기에는 ‘선진’ ‘미래’ ‘발전’ 등의 단어 비중이 높았지만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이후에는 ‘통합’ ‘갈등’ 등을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서는 ‘자전거’라는 단어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녹색성장과 관련이 있다. 동아일보도 최근 이 대통령의 연설 286건을 문체학(stylistics) 기법을 원용해 분석한 바 있으며 일부 항목에서 이번 서울대 연구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본보 8월 13일자 A4면 참조
강 교수 팀은 이번 논문에 대통령의 비공식 연설 등을 추가해 보강한 뒤 이달 말 일본에서 열리는 도쿄대와의 학술 행사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