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위크, UAE영자지 '더 내셔널'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UAE는 2007년 말부터 자국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이는 해외 원전 기술을 통제해 중동 지역에서 핵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의 이해와 맞아 떨어졌다.
실제 부시 행정부는 러시아가 이란의 부셰르 원전을 수주하는 등 중동에서의 미국의 핵기술 이해가 침해되자 2008년 9월 러시아와 양국이 해외에서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을 확대하면서 핵확산 위험을 줄이기 위한 협정을 맺었다. 이어 인도와도 지난해 같은 내용의 협정을 추진해 현재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123협정(123 Agreement)으로 불리는 이 협정은 1954년 제정된 미국 원자력에너지법(United States Atomic Energy Act)에서 '타국과의 원자력 협력' 관련 조항인 123항(section 123)에 따른 협정으로, 현재 약 30여개 국가와 체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내용은 미국의 원자력 원천기술을 제공해 주는 대신,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금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원전 시설 특별사찰을 허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지난해 1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셰이크 압달라 빈 자이드 알 나히안 UAE외무장관과 만나 123협정에 사인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의회 비준을 오바마 행정부로 넘겼다. 당시 미국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에서는 UAE가 비록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걸프해협을 두고 마주하고 있는 이란의 핵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중동에 최초로 미국의 원전 원천기술이 이전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대해 반감이 심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5월 미국-UAE 123협정을 최종 승인했고, 무함마드 빈 자이드 왕세자는 9월 오바마 대통령, 클린턴 국무장관, 제임스 존스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해 존 매케인,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 등 의회 지도부를 만나 123협정 비준을 위한 로비를 벌였다. 결국 지난해 10월 중순 미국-UAE 123협정은 의회에서 비준됐고, 12월 17일(현지시간)에는 유세프 알 오타이바 미국주재 UAE대사와 엘런 타우처 미국 국무부 무기통제.국제안보 담당 차관보가 미국-UAE 123협정 문서 조인식을 가졌다.
타우처 차관보는 이 조인식에서 "미국-UAE 123협정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UAE 원전시설에 대한 사찰(snap inspection) 권한을 갖고 발전에 쓰이는 핵연료를 자체 재처리를 통해 얻지 않고 수입하기로 하는 등의 조건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은 원전 원천기술 이전을 허용하면서 중동 핵확산을 막는다는 이익을, UAE는 중동 최초로 미국의 원전 기술을 도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결국 UAE는 처음부터 프랑스 아레바가 아닌 미국 기업들(GE 혹은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이용해 자국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UAE와 담판을 벌여 막판 뒤집기로 '한국전력-웨스팅하우스-도시바' 컨소시엄의 UAE원전 수주를 따냈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123협정 비준 로비를 벌인 뒤, 미국 의회 비준을 지켜본 무함마드 빈 자이드 UAE왕세자가 노련한 협상기술을 발휘해 웨스팅하우스 원천기술을 쓰는 한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입찰가 10%인하, 군사협력 등을 얻어냈다고 보는 게 설득력이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UAE의 전략에 한국이 말려든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UAE의 경우 123협정이 마무리 되자 미국의 원천기술을 쓰는 GE컨소시엄과 한국 컨소시엄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무함마드 UAE왕세자로부터 최종 수주계약서 조인식 날짜를 통보받은 12월 18일은 공교롭게도 유세프 미국주재 UAE대사와 타우처 차관보가 123협정 조인식을 가진 날이다. 미국의 원전기술 도입 절차가 최종적으로 마무리 되자마자 기술은 같으면서 가격이 싼 한국 컨소시엄을 택했다고 짐작되는 대목이다.
미국의 경우 이미 123협정을 통해 원천기술 수출을 허가한 마당에 GE나 한국컨소시엄에 참여한 웨스팅하우스 중 누가 공사를 따내느냐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원자로냉각제펌프(RCP), 원전제어계측장치(MMIS), 원전설계코드 등 3개 핵심기술은 모두 미국기업이 보유한 만큼 누가 되더라도 미국의 이익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웨스팅하우스는 지난해 5월 UAE 원전 사전자격심사에서 탈락했으나 한국은 원전을 UAE에 수출하기 위해 미국 정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했다. 결국 미국은 한국에 핵심원천기술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에 사업일부를 넘기는 조건으로 수출을 허가했다. 한국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웨스팅하우스의 핵심기술의 대가는 주기기설비 공사비의 4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GE가 수주할 경우 UAE는 자체 국방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원전 시설경비를 위해 중동에 추가로 미군을 파견하는 등 금전으로 따지기 힘든 부담을 져야 했다.
이같은 시나리오 대로라면 이 대통령은 국제 원전수주 협상무대에서 미국과 UAE에 놀아난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