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가혹하게 고문해 '고문 기술자'로 악명이 높았던 이근안 전 경감이 최근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고문기술자가 아닌 애국자'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근안 전 경감은 지난 6일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 '쿨TV'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고문 기술자가 아니다"라며 자신이 '고문 기술자' 혹은 '민주 인사를 무참하게 탄압한 인물'처럼 알려진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전 경감은 또 "강압적 수사가 있었지만 당시 상황에는 그때에 맞는 수사 기준이 있었다"며 애국을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한 것을 지금의 잣대로 죄인 취급을 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란 취지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 전 경감은 앞으로 7회 분량의 인터뷰를 통해 '남민전 사건' '김근태 전기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의 실상(?)과 대공수사관으로서의 고충 및 10년간의 도피생활 등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이근안 전 경감은 1970년 경찰에 발을 들인 이후 줄곧 대공분야에서 일하면서 독재정권 시절 4건의 '간첩검거 유공'을 포함, 16차례의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특히 '자백을 받아내는 실력'이 뛰어나 당시 경찰 내에서 '이근안이 없으면 대공수사가 안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1985년 당시 민청련 의장이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고문했던 사실이 법정에서 폭로되며 그의 고문경력이 세상에 알려져 1988년 퇴직과 함께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그는 10여년간의 도피생활 끝에 1999년 자수, 2006년 11월 만기 출소한 후 지난해에는 목사안수를 받아 '자격논란'을 일으키며 또 한번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 전 경감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자 인터넷에는 "자신이 한짓 그대로 당해보면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될 것"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은 자가 어떻게 목사가 됐나" "세상이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등의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애국자되기 참 쉽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