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어느 특정 정당의 대변인 성명이다. 글을 잘 읽고 물음에 답을 한번 해 보세요. 특히 기자님들과 한나라당 관계자분들은 답을 꼭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야당의 당원 명부를 내놓으라는 억지 역공이다. 특히 검찰과 경찰 수뇌부가 정부의 이런 야당 탄압 정책에 동원되어 들러리를 서는 것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스럽고 평화스러운 분위기에서 치러져야 될 선거 분위기를 공포로 몰고 가는 이번 조치는 전면 취소되어야 하고 이러한 발표가 나오게 된 배경과 의도, 그리고 주도한 인물에 대해서는 역사적 심판을 위해서도 반드시 규명하여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우리 당은 당원 명부를 내놓을 생각이 없다."
위의 대변인 성명은 어느 당이, 언제 내놓은 성명일까요?
① 2004년 열린우리당 대변인 최재성 ② 2006년 한나라당 대변인 이계진
③ 2008년 민주당 대변인 이낙연 ④ 2010년 민주노동당 대변인 우위영
언뜻 보면 2010년 2월 현재 검찰이 전교조 교사들의 당원 가입과 투표 여부를 확인한다고 민주노동당의 서버를 압수수색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비판 성명으로 읽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글의 주체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다. 2006년 1월 13일 한나라당의 당시 대변인인 이계진 의원이 내놓은 논평이다.
교원의 정치활동 혐의에 대한 수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 형법에 피의사실공표 금지와 직무상 비밀누설죄가 분명히 규정되어 있어 경찰이 수사상 알게 된 사실을 언론에 알리는 것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거의 매일 새로운 의혹을 흘리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헌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리고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2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배출한 공당의 서버까지 압수수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2006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검찰의 당원 명부 제출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고, 결국 검찰은 이를 포기했다. 물론 당사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2006년 한나라당, 검찰의 명부 요구에 "당원 명부는 생명" 제출 거부
지금까지 정당의 이름으로 저지른 최대의 범죄는 아마 한나라당의 이른바 '차떼기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차떼기 사건 때도 검찰은 한나라당을 압수수색하거나 서버를 압수수색 하지 않았다.
재미 있는 것은 2006년 유령 당원이라고 하는, 당원 명부에 이름은 있는데 자신은 가입한 적도 없고 당비를 낸 적도 없는 페이퍼 당원이 문제가 되었던 때의 한나라당의 반응이다. 이때에 열린우리당에서는 기간당원제를 당 개혁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당 내에서 제기된 유령 당원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경찰에 스스로 수사의뢰를 하고 수사 협조를 한다는 의미에서 서울 봉천동 지구당사를 경찰에 공개했고 경찰이 압수수색을 들어왔다.
이에 한나라당은 자신에게 칼날이 향할 것이 두려워 이를 정당 탄압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당의 당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에 대해서 유령 당원 의혹을 품게 된 검찰이 한나라당의 당원 명부 제출을 요구한 것이다. 이때 한나라당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시 언론보도를 찾아보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당시 한나라당의 대변인,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 사무총장 등 핵심들의 말을 되짚어 보자.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 = "정당에 대한 압수수색은 정당정치에 대한 중대한 위해이다. 야당 후보들을 사찰하고 당의 생명이자 근간인 당원 명부를 압수해 야당의 발목을 잡아 놓으려는 음모를 당장 중단하라."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 "시도당이든 중앙당이든 한나라당 당사를 압수수색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지방선거 등 여러 정치 일정을 앞두고 당사를 압수 수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야당 당원들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방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 "정당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것이고 헌법에 보장된 고유 기능을 침해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당의 고유 기능('정당 당원 명부'를 의미)을 보호할 것이다."
최연희 한나라당 사무총장 = "(수사에) 협조는 하겠지만 법에 근거했다는 명분으로 당원명부를 무조건 내놓으라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검찰의 당원 명부 요구와 당사에 대한 압수수색 분위기에 대해 '선거를 앞둔 시기에 야당을 탄압하기 위한 불순한 정치적 의도'라고 비난하며 이에 절대로 응할 수 없다는 강경한 뜻을 밝혔다. 결국 검찰은 한나라당의 당원 명부도 보지 못했고, 당사 압수수색도 하지 못했다. 당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지방선거 부정방지를 위한 관계 장관회의에서 "유령당원, 당비대납 등의 행위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엄정 단속을 지시했다. 검찰은 이를 받아서 당원명부, 당비입금계좌 등 수사에 필요한 자료에 대해 정당들에 제출을 요구하면서 이를 거부할 때에는 압수수색, 계좌추적을 포함한 강제수사도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과의 대립이 격화된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강력한 의지에도 결국 검찰은 한나라당의 명부를 입수하지 못했고,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현재 민주노동당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 태도와는 너무도 다르다.
2006년이나 지금이나 민주노동당은 당원 명부와 정당 압수수색에 대해 일관성이 있다.
당시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의 '노인차비 떼먹기'에 대한 압수수색은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정당에 대해 일괄적으로 당원 명부를 요구하는 조치는 야당 탄압의 소지가 있는 만큼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혀 검찰이 당원 명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단호히 거부했다. 현재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민주노동당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원 명부를 지킬 것이다"라고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한나라당의 태도는 일관성이 없다.
2006년 4월 한나라당 홍성군수 출마자의 불법 당원 모집에도 압수수색 거부
한나라당이 당원명부 제출과 압수수색을 거부한 사례는 또 있다. 2006년 4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홍성군수 출마자 2명이 당원을 불법 모집하고 당비를 대납했다는 혐의가 불거졌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이 당원 명부 등 관련 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한나라당 중앙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한나라당은 이를 강력하게 저지하고 나섰다.
당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자료를 제출하라는 명목으로 정당의 기밀을 다 뒤져서 가려는 것 아니냐?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발로 뛰라'고 지시한 것이 결국 야당 탄압을 지시한 셈임을 입증하는 사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계진 대변인 역시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가 예상되자 검찰과 경찰을 앞세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야당의 손발을 묶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이른바 자유당 시절의 선거행태다"라고 비난하며 이를 거부했다. 한나라당의 격렬한 반발에 결국 검찰은 한나라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포기했다. 이 역시 현재의 검찰과는 너무도 다르다.
2007년 동아일보도 거부하여 결국 검찰도 압수 수색 포기
언론은 어떤가? 현재 전교조 교사들의 정치활동 혐의에 대해 각종 의혹을 생산하고 있는 대표적인 언론사가 <동아일보>다. 경찰은 그런 적이 없다는데 전교조 위원장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여 투표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동아>고,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에 대한 체포 영장을 1면에 실어 증거인멸 의혹을 키우고 있는 것도 <동아>다.
피의사실공표죄니 명예훼손이니 개인의 인권이니 하는 것은 애초에 염두에 없는 것 같고, 야당 탄압이니 정당 정치 훼손이니 하는 민주주의의 훼손을 우려하는 반대 목소리는 그들에게는 관심 밖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잣대를 자신에게 돌리면 참으로 우스운 모양새가 나온다. 2007년 7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에 대한 신동아의 보도를 둘러싸고 이를 밝히기 위해 검찰이 <동아일보>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때 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2007년 7월 26일과 27일 서울중앙지검은 <동아일보> 본사 전산실의 중앙서버에 보관된 신동아 허모와 최아무개 기자의 e메일 계정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나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동아일보> 기자들은 "법 집행을 가장한 국가기관의 언론자유 침해에 맞서 절대 물러설 수 없다. 취재원 보호 원칙을 목숨처럼 아끼고 지켜나갈 것"이라 성명을 내고 몸으로 압수수색을 막아섰다. 결국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이 사건을 한나라당은 어떻게 봤을까? 2007년 7월 30일 한나라당 성명 자료실에 올라있는 "검찰의 동아일보 압수수색,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과잉수사[한나라뉴스]"라는 자료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현재 국회의장) = "검찰이 동아일보 전산실에 대해 두 번씩이나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은 언론의 자유와 취재원 보호의 원칙을 침해하는 중대 사태이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여러 기법의 수사를 동원할 수 있겠지만, 특정 언론사 전산실을 통째로 압수수색하겠다는 것은 언론 자유라는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과잉수사에 해당한다."
안상수 공작정치분쇄 범국민투쟁위원회위원장(현 한나라당 원내대표) = "이 부분(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관한 수사는 전혀 하지 않고 엉뚱하게 피내사자도 아닌 동아일보에 대해서 압수수색을 2차례나 걸쳐서 한 것은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전도된 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국정원에 관해서 이 부분을 전혀 조사하지 않고 언론사에 대해서 압수수색이란 가장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무슨 의도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 = "검찰이 신동아 전산실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은 결론적으로 지나친 것이다. … 기자 2명의 이메일 목록과 내용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언론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취재원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취재원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자들의 취재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 검찰의 이메일 계정 압수수색은 기자들을 발가벗겨 언론활동을 제약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 수사상 꼭 필요하다면 사건과 관련된 이메일만 특정해서 출력하는 게 정상이다. 사적인 내용까지 포괄적으로 압수수색 하겠다는 것은 기본권침해 논란을 부를 수 있다."
검찰의 <동아일보> 전산실 압수수색 시도에 대한 <동아일보>의 반발이나 한나라당의 입장을 지금 전교조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민주노동당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과 연관시켜 보면 하나도 틀림이 없어 보인다. 너무도 정당하고 당연한 주장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왜 그것이 한나라당과 <동아일보>에만 해당되어야 하는가?
<동아일보>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론의 자유가 왜 민주노동당이라는 소수 정당과 교원노조에는 적용될 수 없는가? 언론 자유가 소중하다면서 e메일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는 자들이 어떻게 공당의 서버 전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찬성하고, 합법적인 교원노조의 서버를 통째로 들고 가는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가?
출처 : 이재오·나경원·안상수 의원은 기억상실증?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