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들으니까 두 위원장 사태로 청와대 사람들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나 봅니다. '이거 빨리 해결을 하라, 앞으로 선거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뭐 이러나 봐요. 아무튼 이런 사정이라 나는 유인촌 장관 이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유인촌 장관이 내 대변인 같아요. '재밌잖아?' 나도 재밌어요. 이거는 정말 예술 중에 예술을 제가 하고 있는 거죠!"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상대를 잘못 만난 듯하다. 아니면 '드디어'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거나.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 정부 문화행정' 긴급토론회에 참석해 위와 같이 유 장관을 '조롱'했다. 단단한 다짐과 대단한 결의가 아닌, 예술가 기질을 살려 유 장관 화법을 패러디해 맞받아친 것이다.
유 장관은 '한 기관 두 위원장' 사태에 대해 지난 1일 "그렇게도 해보고… 재밌잖아?"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김 위원장 강제 해임과 법원의 '해임효력 정지' 결정에 따른 업무 복귀 등 일련의 사태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말은 결국 부메랑이 돼 유 장관에게 돌아갔다.
"유인촌 장관이 내 대변인 같다... 난 지금 최고의 예술을 하는 중"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유 장관이 공개 사과를 하고 자진 사퇴해야 이번 사태가 풀린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9일 토론회에서는 아래와 같이 유 장관을 겨냥했다.
"요즘 제가 미술가로 뜬 게 아니고, 아무튼 좀 떴습니다. 팔자가 예술가로서 기막힌 거죠. 이 사태는 아주 정말 유인촌 장관이 얘기한 대로 재미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재밌잖아? 딱 나한테 걸렸어요. 지금 정말 이 사람은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어요. 사법부에서 판단을 해주는데 뭐 어떡하겠어요.(웃음)"
이어 김 위원장은 "(사법부에서) '돌아가서 근무를 하라'는 것을 문광부와 보수신문에서 '지위는 인정하나 업무에 대한 것은 복권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하는데, 헌법재판소 논리와 비슷하다"며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소용이 없다, 나한테 대표성과 업무 지시 권한 등 모든 게 복권됐다"고 말했다.
▲ 법원에서 '해임효력 정지' 결정을 받아내고 출근을 시도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1일 오전 혜화동 한국문화예술위원회 3층 위원장실로 출근하지 못한 채, 옆 건물 아르코미술관 관장실에 별도로 마련된 '위원장실'로 출근했다. ⓒ 권우성 김정헌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문광부와 유 장관에게 이런 직격탄을 날렸다.
"나는 계속 나갈 것인데, 앞으로 나의 남은 임기 7개월 동안 문광부는 굉장히 괴로울 겁니다. 그중 제일 괴로운 게 유인촌 장관일 겁니다."
또 김 위원장은 8일 예술위원회에서 제시된 '오광수·김정헌 동반 사퇴'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위원장이 자신을 '논개'에 비유하며 꺼낸 이야기는 이렇다.
"내가 논개인가? 왜 빠져 죽나! 7개월 동안 유인촌 가장 괴로울 것"
"예전에 문광부 차관 했던 유진룡 예술위원이 어제(8일) 나를 찾아와서 '동반 사퇴하라, 그러면 우리들도 유 장관의 책임을 거론하면서 사퇴하겠다'고 했는데, 웃기지 말라고 그랬어요. 내가 무슨 논개입니까? 오광수 위원장과 내가 남강에 같이 빠져 죽을 일이 뭐가 있습니까. 오 위원장은 그래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지금 돌아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내가 빠져 죽습니까."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사퇴를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김 위원장은 이렇게 비꼬아서 그 이유를 '진솔하게' 밝혔다.
"지금 유인촌이라는 사람이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 더 즐거워할 것 같아서, 절대 내가 빠져 죽을 수가 없습니다."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09년 12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자료 사진). ⓒ 유성호 유인촌
또 김 위원장은 "우리 문화예술계는 지금 거의 지뢰밭이 돼 여기서 '펑', 저기서 '펑' 터지고 있다"며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지는 것에 더해 불가사의한 세상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위원장은 "국립극장, 미디액트 등등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정말 문화계에서 유인촌 장관을 잘못 앉힌 것 같다"며 "내 사건에 대해서 일반인들의 호응이 큰데, 앞으로 이런 사건들이 계속 폭발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 홀로 출근'에 '나 홀로 투쟁'을 이어 가고 있는 김 위원장은 말을 마치며 아래와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문화예술계에 전했다.
"아무튼 이런 해괴한 사태가 벌어져도 우리가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냉철하게 이 사태를 끝까지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면 1년 안에 승패가 납니다. 문화예술계에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승리를 확신하면서 어려운 일을 좀 참고 견뎌내자고 제의하고 싶습니다."
"승리를 확신하면서 좀 참고 견뎌냅시다!"
한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최고 의결 기구인 예술위원회가 김정헌 위원장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 김 위원장은 앞으로도 계속 직무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김 위원장은 9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표권, 결재권, 업무지시권 등 위원장의 권한을 행사해 독자적으로 업무를 계속할 것"이라며 "예술위원들은 사법부의 결정을 무력화하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또 김 위원장은 "직무 집행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가 계속 이어진다면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은 "'한 기관 두 위원장' 사태는 나 혹은 오광수 위원장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라, 유인촌 문광부 장관이 위법하게 나를 해임함으로써 생긴 일"이라며 "따라서 책임이 있는 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두 위원장에게 책임을 묻는 예술위원들의 태도는 예술위원회 위원으로서 독립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출처 : 김정헌 "유인촌 장관, 재밌다고? 난 더 재밌다"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