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관광객 취급 자존심 상했다. 고산 2년만의 증언, 내가 우주선을 못 탄 이유

골든에이지 작성일 10.05.13 22: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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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산. 방 좀 봅시다.”

2008년 2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으로 선발돼 훈련 중이던 고산(34)씨 방에 보안요원이 들이닥쳤다. 이곳에서 고씨는 이름인 ‘산’으로 통했다.

영문을 몰라 멍하니 있는 고씨를 두고 보안요원은 방을 뒤져 책 한 권을 찾아냈다. 비행 단계별 우주선 조작법 등이 담긴 비행교재. 엔지니어급 이상 우주비행사가 볼 수 있는 것이다. ‘비행 참가자’로 분류됐던 고씨에겐 열람이 허락되지 않은 책이었다. 고씨는 이 교재를 훈련센터의 한 스태프에게서 빌려 보고 있었다. 보안요원은 책을 들고 사라졌다. 고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주인 훈련센터는 국가 주요 시설로 러시아 정보당국의 상시 감시 대상이다. 독보적인 우주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고씨의 ‘책 빌려 보기’는 감시망을 피하기엔 너무 대담했다. 이를 모를리 없는 고씨였지만 ‘미련한 짓’을 했다.

며칠 뒤 러시아 연방우주청은 한국 정부에 “고씨가 규정을 위반했으니 우주인을 교체하라”고 요청했다. 한 달 뒤인 3월 10일 고씨의 탑승 우주인 자리는 예비 우주인 이소연(32·여)씨가 대신했다.

1호 우주인 자리가 바뀌자 국내 여론이 요동쳤다. 우주 기술을 빼오려 했다는 ‘스파이설(說)’, 여성 우주인 배출을 위해 희생됐다는 ‘희생양설’, 외교 문제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 했다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공작설’ 등이 제기됐다.

우주인 배출사업은 한국 정부가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의 일환으로 러시아 정부와 계약을 맺고 추진한 국가사업이다. 고씨는 가만히 있으면 우주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금지된 교재를 ‘훔쳐봐야’ 했던 걸까.

그런 그가 2년이 지나 입을 열었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고씨는 할 말이 많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그는 당시를 ‘선택의 순간’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선택은 ‘한국 최초 우주인’ 타이틀을 앗아갔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막에 대해 입 열다

우주인이 교체된 직후 훈련센터에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소유스호 발사 계획(4월 8일) 브리핑이 시작됐다. 러시아 언론과 외신 기자 100여명 앞에 이씨가 탑승 우주인, 고씨가 예비 우주인으로 섰다.

“한국 우주인이 교체됐는데, 그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한 러시아 기자가 고씨를 지목하며 취조하듯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러시아 기자들은 고씨의 답변을 기다리며 모두 영어 통역사를 바라봤다. 그때 고씨가 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어였다.

“나는 이 나라에 우주인이 되려고 왔지 우주 관광객이 되려고 온 게 아닙니다.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보지 말라는 비행교재를 왜 봤는지 묻자 고씨는 대답 대신 이 일화를 들려줬다. 한국 우주인을 무시하는 대우에 항의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왜 허락되지 않은 교재를 봤습니까.

“자존심 문제였어요. 평소 수업시간에 질문을 꽤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러시아 교관이 제 질문에 이런 말을 했어요. ‘한국 훈련생 교육 목표가 뭔지 아느냐. 우주선 날아갈 때 다른 사람들(러시아 우주인들)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가르치는 것이다’라고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요.”

소유스호 조종석에는 세 명이 나란히 앉는다. 가운데는 선장, 왼쪽은 엔지니어, 오른쪽은 보조 엔지니어 혹은 단순 비행참가자의 자리다. 고씨 좌석은 선장 오른쪽. 그것도 보조 엔지니어가 아니라 비행참가자로 분류됐다. 대한민국 1호 우주인으로 온 국민의 기대를 짊어졌던 그였지만 러시아 훈련센터에서는 단순한 ‘관광객’ 대접을 받은 것이다.

-계약에 따른 것 아닌가요.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프로그램 개발자인 찰스 시모니와 함께 훈련을 받았어요. 그는 2500만 달러를 낸 진짜 우주 관광객이었어요. 돈 내고 우주 구경 다녀오는 거죠. 그가 한국 훈련생과 똑같은 코스로 훈련받고 12일간 우주정거장에 다녀온다고 하더군요. 저는 한국 국가대표로 파견된 거잖아요. 비행 중에 아무것도 모른 채 멍하니 앉아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재를 통해 구체적으로 뭘 배우려고 한 겁니까.

“적어도 내가 타고 가는 우주선이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날아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러시아어를 못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영어 통역사가 동행했어요. 하지만 강의 통역만으로는 부족했어요. 그래서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했죠. 4∼5개월 독학한 뒤에는 수업 후 교관을 찾아가 질문하곤 했어요. 그걸 알고 있던 훈련센터의 러시아 스태프가 제게 교재를 빌려주게 됐던 거죠.”

-단지 자존심이 상해서 계약을 위반했다는 건가요.

“신념이었어요. 선택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우주에) 다녀올 수는 있었겠죠. 하지만 그냥 관광객이 됐을 거예요. 누구라도 제 입장이었다면 저처럼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생에 한 번뿐일지 모를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후회하진 않나요.

“저는 한국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나를 쫓아낸) 러시아인들도 할 일을 한 거겠죠. 후회하지 않아요. 러시아 생활을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우주인과 관광객 사이

한국 우주인은 과연 우주 관광객에 불과했던 걸까. 해답은 훈련 프로그램에 있었다. 생명유지 장치 사용법 같은 생존훈련과 우주선에 대한 소개,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의 실험방법 안내…. 고씨는 러시아 훈련센터에서 받은 수업이 그 정도였다고 했다. 우주비행과 관련한 전문지식은 1∼2시간 분량의 강의가 전부였다.

한국 우주인 훈련 프로그램은 내용만 따지자면 우주 관광객의 훈련 매뉴얼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훈련비용을 지불하는 주체가 달랐을 뿐이다. 자비로 우주선을 탄 우주 관광객과 달리 한국 우주인을 지원한 건 한국 정부였다.

-그간 과학계에서도 정부의 우주인 배출 사업을 ‘1호 우주 관광객 배출 사업’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일견 타당한 지적입니다. 우리나라에 기술이 없어서 러시아에 돈을 내고 우주선 타러 간 거니까요. 물론 우주 개발을 시작하는 단계에선 그런 접근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은 비용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킬 수 있으니까요.”

-관심 고취란 목적은 달성됐다고 생각하나요.

“우주인 배출 사업이 단발성 행사처럼 돼 버려 아쉽습니다. 우주에 다녀왔으면 피겨의 김연아 선수만큼은 아니어도 ‘아폴로 박사’로 불렸던 고(故) 조경철 박사님처럼 사랑받으며 꿈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2차 우주인 사업을 하게 된다면 그런 점들을 보완해야 하겠죠. 기술을 많이 배워오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우주인 배출에 쓴 비용 260억원은 적은 돈이 아니잖아요.”

나로호의 ‘러시아 불꽃’

지난해 8월 25일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1차 발사 때 그는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발사 과정을 생중계했다. 비록 우주에 가진 못했지만 그의 삶에서 우주는 여전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로호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일단 기분 좋았죠.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발사체가 올라갈 때 정말 좋았어요. 연구진들 고생 많았는데 결실을 맺는구나, 한편으로는 저 불꽃이 우리 불꽃이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상단부(2단)는 우리가 개발했지만 로켓(1단)은 러시아에서 수입해온 거니까. 그건 러시아 불꽃이잖아요. 이번에 로켓 기술을 어느 정도 얻었어야 했는데….”

-나로호 발사에 5000억원 이상 투입됐습니다. 지금 한국에 이런 투자가 정말 필요한가요.

“우주가 멀다고 생각하세요? 국제우주정거장은 고작 지구 400㎞ 상공에 있어요. 서울∼부산 거리예요. 우주는 미개척지도, 막연한 동경의 대상도 아니에요. 무수히 많은 인공위성이 떠다니는, 이미 경쟁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도 뛰어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이 우주 강국이 될 수 있을까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유인우주 분야 예산을 전면 삭감했습니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으면 선진국도 포기할 건 포기합니다. 후발주자에게는 더욱 전략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기술을 개발할까,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게 향후 우주개발 분수령이 될 겁니다.”

우주인 고산의 꿈

고씨는 러시아에서 돌아온 뒤 쉴 새 없이 강연했다. 영재학교, 과학고, 보육원, 소년원을 두루 찾아다녔다. ‘아이들에게 우주를 꿈꾸게 하자.’ 우주에 다녀오면 해야겠다고 결심한 일이었다. 비록 우주에 다녀오지는 못했지만 그는 혼자 한 약속을 열심히 지켰다.

제 몫을 끝냈다고 생각한 즈음 그는 유학을 결심했다. 고씨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공공정책대학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돼 9월 입학한다. 우주인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기술 ‘정책’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공공정책대학원을 선택했나요.

“과학은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힘이 있어요.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것도 과학기술이죠. 하지만 과학기술 정책 분야는 전문 인력도 부족하고 일반인 인식 역시 낮아요. 우주인 사업과 나로호를 보면서 절실하게 느꼈어요. 과학기술 정책을 제대로 공부해볼 생각이에요. 더불어 국제관계 분야도 배우고 싶어요. 국가 간 협력관계에 따라 과학 프로젝트 결과가 바뀔 수 있으니까요.”

2년 전 고씨는 우주인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이었다. 기회를 버린 건 그였고, 그건 선택이었다. 하지만 ‘우주인 고산’의 꿈은 버리지 않았다.

“우주정거장에 가도 밤하늘은 지구에서 보는 것과 같을 거예요. 다만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거겠죠. 지구에 사는 사람이 지구를 보기 위해 우주에 가는 거예요. 아이로니컬하지만 그것이 과학의 매력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우주에 나갈 겁니다. 우주는 꿈이고 희망이니까요.”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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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현실이라 생각하니 씁쓸하네요...

 

결국 대체된 이소연씨는 우주 관광 다녀온것에 불과하게 된것이...

 


‘한국 훈련생 교육 목표가 뭔지 아느냐. 우주선 날아갈 때 다른 사람들(러시아 우주인들)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가르치는 것이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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