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수역에서 발견된 어뢰 파편에 붙어 있는 물질과 천안함 절단면에 붙어 있는 물질이 같았다. 따라서 천안함은 어뢰 폭발로 절단됐다.'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의 어뢰 피폭 결론을 내리면서 제시한 핵심 근거 중 하나였다. 언뜻 보면 빈틈이 없어 보이는 이 논리에는 그러나 커다란 구멍이 숨어 있다. 어뢰와 함체에 붙어 있는 물질이 같다는 사실만으로 '어뢰 폭발'을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다. 폭발이 아닌 다른 현상에 의해서도 같은 물질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 비약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합조단은 어뢰·선체에 묻은 물질이 어뢰 폭발에서 나온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 수중폭발시험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물질과 어뢰·선체에 붙어 있던 물질을 비교했다. 그런데 그게 맞지 않았다.
각각 물질의 성분을 두 가지 방법으로 분석했는데, 하나의 방법에서는 세 곳의 물질이 비슷했지만, 다른 한 가지 방법에서는 수중폭발시험으로 나온 물질과 선체·어뢰에서 나온 것이 전혀 달랐다. 폭발실험에서 나온 알루미늄 성분이 어뢰와 선체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합동조사단은 폭약에 들어가는 상당량의 알루미늄이 어뢰 및 선체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은 폭발 직후 다른 물질(산화된 비결정질 알루미늄)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어뢰 폭발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합조단의 이런 주장은 모순이다. 박막이 아닌 알루미늄이 완전히 산화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설령 100% 산화됐다고 해도 이른바 '엑스레이 회절기 분석'을 통해서는 산화된 알루미늄이 보여야 한다.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 교수는 국회 천안함 특별위원회 소속 최문순 의원의 자문 요청을 받고 최 의원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 후 이 교수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기고문을 보내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하고, 전세계의 과학자들이 볼 수 있는 웹사이트에도 자신의 분석을 게재했다.
▲ 이승헌 버지니아대 물리학 교수생소한 과학 용어가 등장하지만 이 교수의 결론은 간단하다. 폭발실험에서 나온 물질과 어뢰·선체에서 나온 물질이 같지 않기 때문에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합조단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세 가지 물질이 정확히 일치한다 해도 '폭발' 결론을 내리는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이 되기는 어려운데, 데이터가 다르고 서로 모순되는 상태에서 '폭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과학을 벗어난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프레시안>은 현재 일본 도쿄대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헌 교수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프레시안 : 민군 합동조사단에도 윤덕용 민간 측 단장을 비롯해 최고 수준의 과학자가 있다. 그런데 흡착물 분석 결과의 불일치 같은 문제를 왜 검토하지 않았을까?
이승헌 : 합조단장인 윤덕용 전 카이스트 총장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훌륭한 연구 업적을 가진 분이라는 건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만 해도 분야가 넓어서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면 관련 데이타를 깊게 이해하기 어렵다.
윤덕용 단장이 하버드대 박사 과정 시절 썼던 페이퍼를 보니, 그 분은 시차열분석(Differential Thermal Analysis) 분야에 관한 전문가인 것 같다. 그런 분야를 전공한 분이 합조단장이 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그 분은 엑스레이 산란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그 데이터에 드러나는 불일치를 잡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이승헌 교수는 선제 및 어뢰 추진체 흡착물에 대한 에너지 분광기 분석에서 나타났던 알루미늄이 엑스레이 회절기 분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합조단은 폭발 직후 생기는 알루미늄의 용해와 급냉각으로 비결정질(amorphous)의 알루미늄 산화물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그런 현상이 실제로 있다는 보고서와 논문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헌 : 간단히 설명하자면, 폭약에는 상당량의 결정질 알루미늄이 들어가는데 이 알루미늄이 폭발 후 온도가 올라간 후 냉각이 되면 어떤 물질이 되는 지가 중요한 핵심 문제 중의 하나다.
합조단은 그 결정질 알루미늄이 폭발 과정에서 100%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이 되어 엑스레이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산화알루미늄은 비결정질화 되는 게 아주 어려워서 100% 비결정질화 됐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알루미늄의 일부만 비결정질물로 산화되면 나머지 결정질 알루미늄에서 나오는 뾰족한 피크가 엑스레이 회절에서 나와야 한다.
만일 100% 비결정질화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엑스레이 회절에서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결정질 물질에서 나오는 뾰족한 피크는 아니지만 넓은 피크가 특정한 위치에서 보여야 한다. 천안함 선체 외 어뢰 추진체에서 나온 흡착물의 에너지분광 데이터와 엑스레이 데이터는 서로 상충하며, 이 불일치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자세한 과학적인 논증은 내가 영어로 쓴 페이퍼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승헌 교수 영문 보고서 바로가기)
프레시안 : 폭발 상황은 평형상태가 아니라 매우 극단적인(extreme)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승헌 : 극단적이든 어떻든 원자들은 남아 있다. 극단적인 상황이 지나간 다음에 온도가 낮아지면 어딘가에 원자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다른 원자와 결합해 어떤 물질을 만들었더라도 엑스레이 회절기에서 나타나야 한다. 이 경우에는 에너지 분광기에는 나왔는데 엑스레이에서는 보이지 않을 수는 없다.
▲ 합동조사단이 화약 물질을 발견했다고 하는 어뢰 추진체의 모습 ⓒ뉴시스 프레시안 : 어뢰 추진체에 써 있는 '1번' 글씨에 관한 분석에서, 어뢰 추진체에 최소 325℃의 열이 발생했고, 잉크 성분 중 비등점이 가장 높은 크실렌의 비등점이 138.5℃이기 때문에 잉크가 다 타버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폭발은 물속에서 일어났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아직까지 나온다.
이승헌 : 복잡하게 얘기할 필요가 없는 반론이다. 결정적 증거물이라고 가져온 어뢰 추진체의 표면이 녹이 슬어 있었다. 그건 폭발이 나서 어뢰 밖에 칠해져 있던 페인트가 타 버렸다는 것이다. 잉크보다 비등점이 높은 페인트가 탔는데 잉크가 하나도 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있을 수는 없다.
프레시안 : 잉크와 흡착물 문제 외에 추가로 제기할 문제는?
이승헌 : 다른 전문가 분들이 여러 가지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정보나 지식이 없다. 나는 단지 합조단이 '과학적인 증거'라고 제기한 것들에 대해 그 분야의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 '과학적인 증거'들의 타당성을 살펴보았을 뿐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천안함은 왜 침몰했다고 생각하나?
이승헌 : 정보가 충분치 않아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합조단이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면, 여러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어느 누구도 납득할 만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정보가 닫혀있는 상태이다.
프레시안 : 왜 합조단의 발표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이승헌 : 합조단이 과학의 이름을 내세워 결론을 내렸고, 그 파장이 대단하다. 그러면 과학자의 입장에서 결론이 타당했는지, 데이터가 타당했는지 검증을 해봐야 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최근에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나에게 자문을 구해서 일부 정보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만약 한국에서 이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이 이 데이터를 봤다면 나와 같은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문제점이 나오고, 며칠만 공부해 보면 맞는지 틀린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보가 차단되어 있으니까 학계에 계시는 분들이 말씀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문순 의원이 천안함 특위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보를 다 받지는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내가 본 정보조차도 특위에서 여러 차례 요청을 한 이후에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대부분의 자료가 비공개로 되어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열린 민주주의 사회라면 반드시 자정능력이 있어야 한다. 최대한 가능한 자료가 공개되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를 합리적인 사회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천안함 문제로 한국 사회의 이성과 합리성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말이 있다.
이승헌 : 사실 가슴이 아프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1980년대 초 고대를 다녔다. 정부에 대한 반대가 전혀 허용되지 않았을 때다. 학생들이 교정에서 유인물을 뿌리면 5분 이내에 교내에 상주하던 경찰들에게 목덜미를 잡혀 끌려갔다. 나는 전혀 운동권이 아니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한국 사회가 그런 분위기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목덜미를 잡혀 끌려가는 건 아니지만, 정부의 천안함 결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신상철 씨, 박선원 박사, 도올 김용옥 선생, 심지어 이정희 의원까지도 국회에서 했던 말 때문에 고소됐다. 이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예를 들어 도올 선생. 그 분의 주장을 전적으로 따르고 말고를 떠나서, 그처럼 생각이 깊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이 한국에 있고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생각과 말에 100%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런 분들은 사회적으로 존중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 분이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강연에서 말했다는 이유로 고소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합리적인 사회라는 게 모두가 진보적이여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건전한 진보, 건전한 보수가 서로 존경하면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며 사회의 이성적인 토론 과정이 없이, 불일치하는 점이 많은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성급한 결론을 내린 후 그 결론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하려고 하고 있는데, 현재 진행 상황으로 보았을 때는 정부가 국제사회로부터 바라는 것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김연아나 박세리 같이 뛰어난 국민 개개인이 그동안 세계무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드높여 왔는데 이번 일로 국격이 많이 손상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