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학교에서 체벌 전면 금지가 시행된 첫 날, 일부 학교에서는 체벌금지 규정을 들이대며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등 교육 현장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교사들은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는 학생을 지도하려 했지만, 학생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은 물론, 심지어 반항까지 하면서 통제 불능의 상황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1일 오후 장위동 A중학교 3학년 교실. 교사가 교과서를 갖고 오지 않은 학생에게 “교과서를 왜 가져오지 않았느냐”며 수차례 물었지만 학생은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다른 교실에서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친구와 떠드는 학생이 많았지만 교사들은 그냥 수업을 진행했다.
이 학교 임모 교사는 “아이들에 대한 강제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대체 수단이라고 하는 상벌제도나 성찰교실에서의 상담 등이 전혀 제제 수단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2∼3년 뒤에는 통제 불능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학교에는 최근 체벌금지 규정을 들며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들이 늘었다. 지난주에는 학생이 교사를 112로 신고해 인근 지구대에서 경찰관이 나와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무력감을 느낀다”, “내년부터는 담임을 맡지 않겠다”는 하소연이 부쩍 늘었다.
이런 현상은 체벌을 대신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예고된 결과라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지적이다. J고 생활지도부장 C교사는 “지난달 체벌 금지 규정을 제정한 이래 지시 불이행 등 문제로 교무실을 찾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 선생이 체벌을 못한다는 사실만 강조돼 이런 문제가 생겼다”며 “퇴학은 학생한테 부담이 너무 크고 대체벌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 학생이 반항하면 사실상 처벌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성북구 K중 P교감 역시 “여선생이나 부드러운 성격의 선생이 맡은 시간에는 학생의 절반 이상이 잠을 자 수업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 야단을 치려고 불러도 웃으며 도망치는 것이 다반사”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일부 학생은 팔뚝만 잡아도 체벌이라고 대드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그나마 상벌점제가 도움이 되지만 이것만으로는 정상적인 수업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체벌금지가 뿌리내리고 있는 학교도 있다. 중화동 중랑중학교에서는 체벌 대신 벌점제도가 자리 잡았다. 1학년 김원욱(13)군은 “체벌 금지하면서 상벌점제도가 시작돼 15점 넘으면 학부모가 호출된다”며 “애들이 선생님 말을 더 잘 듣는다”고 말했다. 교실에서는 수업 중 장난을 치던 학생들이 교사 지시로 교실 뒤에 서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체벌을 금지하면서 제시한 방안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학교 생활지도부장인 이두희 교사는 “동료 선생님들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교 정문에서 학생을 때리거나 오리걸음을 시키는 등 전근대적 방식을 쓰진 말자고 했다”며 “2년 전 체벌규정에 따라 만든 지시봉이 있는데 지금은 수업용으로만 쓸 뿐 재고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다소 현실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더라도 인권 강조가 대세”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A중 1학년 박모(13)군은 “체벌금지 규정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을 몇몇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설명했다”며 “이전에는 심하게 맞는 경우도 있었는데 오늘은 한 선생님도 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의도동 B고교의 이모(18)양은 “체벌 금지로 마음이 놓인다”면서도 “노는 애들이 더 날뛰게 될 거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빼앗긴 교편, 교육자는 통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체벌 전면금지에 따른 학교 현장 실태를 모니터링해 결과를 알리겠다”며 “체벌에 대한 국가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