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대화와 토론을 해도 얻는 게 없는 사람이 있죠.
얻는 게 없습니다.
얻는 게 없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천안함이 북의 공격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이번 연평도 사태와 천안함 사건을 연결 짓지 마라
그 ‘이중적 잣대’가 역겹다.”라는 거죠?
“천안함이 북의 공격이라 믿으면 정부를 비난해도 되고,
천안함이 북의 공격이 아니라 믿으면 정부를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단순하게 언뜻 보면 맞는 말 같지만 이 논리를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진정 천안함이 북의 공격이라면 정부는 강력 대응해야 한다.
천안함이 북의 공격이 아니라면 정부는 대응할 필요가 없다.”
자,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실제로 이런 비판들은 천안함 사건이 터진 뒤에도
수 없이 쏟아져 나왔죠.
“정말 북이 했다면 왜 강력히 대응하지 못하는가?” 하는 비판들이요.
정부가 그렇게 강력히 북의 소행이라 주장하면서도 실제적인 아무런 대응책을 펼치고 있지 않기에
오히려 천안함의 사건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냐 하는 말은 보수쪽에서도 터져 나왔습니다.
비단 지금에만 이런 비판을 했던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다시 돌아와 봅시다.
“만약 천안함이 정말 북의 소행이었다면 그 당시 적합한 대응을 했어야 했고
그랬다면 지금의 연평도 사태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라는 주장에는
단순히 천안함 사건을 아전인수 하는 것이 아니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측 발표와 태도에 대한 불신의 감정과
지금의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도 해석해 볼 수도 있겠네요.
“천안함 사건은 북의 소행이 확실치 않았기에 그에 적합한 대응 따위는 할 수도 없었고
이번 연평도 사태 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냐.”
정리하면,
천안함 사건을 북의 소행이라 믿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천안함 사건을 바탕으로 정부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판의 초점은 정부의 태도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천안함 사건을 북의 소행으로 가정한다 하더라도 정부의 태도는 옳지 못했고,
이런 사태 또한 자아낸 것이다.’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건 이중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비판자의 태도는 변하질 않았거든요.
다만 말하기 방식에 가정법이 쓰였을 뿐이지,,
상대방의 비판의 초점을 보지 않고 부분에만 집착하여 흠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면
자칫 정신이 혼란하여 뭐 이중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마지막 참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다중에게 같은 비난을 받다 보면, 비난을 받은 사람은
여러 명이 아닌 마치 거대한 한 사람에게 비난을 받은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개별적 존재로 인지하지 못하고
‘나를 욕했던 정경사놈들’이라는 추상적이고 집합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공격자에 대한 적개심과 심리적 보호막 때문에 상황 판단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즉 모두가 날 공격했고, 모두가 같은 오류를 지니고 있고,
모두가 같은 가치관으로 날 판단할 것이다라는 착각에
자신을 지적하는 말을 논리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건 안타깝게도 우리들의 잘못이기도 하겠네요.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스스로 깨닫는 것이겠지만,,)
게다가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더욱 아쉬운 건,,
비판에 대한 수용의 자세입니다.
비판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사회는 발전이 없습니다.
그것이 설사 정당해 보이지 않는 비판이라 할지라도
왜 저런 비판을 하는가에 대한 탐구는 사회의 긍정적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비판이라는 용수철과 같아서 건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욱 강하게 튀어 오르기 마련입니다.
이번 북의 도발 목적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남남분열’에 대해 큰 근심을 갖는 분들 또한 많이 보았습니다.
그 근심은 당연히 보수 쪽이 더욱 크겠지요.
하지만 진정 ‘남남분열’을 걱정한다면
실재하는 견해 차이를 정치적 색이나 지역감정을 덧씌워서 폄하하고 무시하기 보단,
다른 이들과의 견해 차이를 대화와 토론으로 줄여야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른 견해는 자르고 없애고 태워버리면, 다시는 다른 견해가 나오지 않을까요?
나름 우리사회는 자유로운 비판의 문화로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이제는 서로의 비판에 여유있는 자세로 들어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비단 어느 한 쪽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특
히 이러한 자세는 단결과 통합을 매일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시급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말로는 단결하자면서 행동으로는 밀쳐내는 짓들.
오히려 이런 짓들이 ‘이중적’이라고 비판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