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박문사 신라호텔 건설에 참여한 일본자본

브랜든 히트 작성일 11.09.07 20: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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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박문사 신라호텔 건설에 참여한 일본자본 (7부)원래 장충단의 주인은 없어지고, 파괴범들의 동상이 서있다.  역사복원신문 icon_mail.gif 기사입력  2011/08/26 [11:45]
본 글은 아래 장충단 시리즈에 이어지는 (6부)입니다.
(1부) 일제가 훼손한 장충단의 슬픈 사연
(2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놀이공원으로 바꾼 일제
(3부) 국립현충원 장충단을 짓밟은 이등박문의 망령
(4부) 장충단 파괴범은 3共과 삼성의 정경유착   (5부) 장충단에 서있는 삼성 이병철 회장 동상
(6부) 삼성그룹의 신라호텔은 제2의 박문사인가? 

일제는 조선을 영원히 식민지배하기 위해 조선인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을 폈다. 그 일환으로 국권수호(國權守護)를   위한 항일(抗日)의 상징인 장충단 터를 공원으로 바꾸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모하는 박문사(博文寺)라는   절을 지어 장충단을 철저히 파괴했다. 이는 원구단을 허물고 철도호텔을 짓고,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경희궁을   중고등학교로 바꾸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해방 후 박문사는 화재로 없어지고 장충단은 국립묘지로 잠시 쓰이다가 이승만대통령의 지시로 국빈접대를 위한   영빈관이 세워지기에 이른다.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장군과 삼성 이병철회장이 결탁한 정경유착에 의해   장충단 부지의 상당 부분이 삼성그룹으로 헐값에 넘어간다. 이승만대통령은 친일파의 수괴였으며, 박정희장군은   일왕에게 충성맹세를 한 그의 영혼은 일본인이었다. 그러니 민족정기와 항일의 상징인 장충단이 복원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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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병철회장은 장충단을 파괴하며 지어졌던 박문사 터에 외국인을 위한 대규모 호텔을 건설하는데, 그 공사를 맡은   업체는 일본의 다이세이(大成)건설(주)로 박문사를 시공했던 바로 그 업체였다. 즉 신라호텔은 제2의 박문사였던 것이다. 

게다가 신라호텔을 건설하면서 자금이 부족하자 이번에는 해외에서 자본을 끌어들이게 되는데, 문제는 그 자본이 바로   일본자본이라는 사실이다.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된 성스러운 장충단에 위락시설인 호텔을 지으면서 그것도   다른 나라가 아닌 일본의 자금을 끌어들였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자기 주머니에 돈이 없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에서 출자자를 찾을 수 없다보니 할 수 없이 일본에 손을 벌렸을까?
아니면 삼성그룹 이병철회장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역사인식의 문제일까?
아니면 일왕에게 충성맹세를 했던 박정희대통령의 권유 때문이었을까?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장충단의 민족정기 말살에 일본자본이 들어왔다. 남의 나라 호텔 짓는데 왜 하필   일본자본이 들어왔을까? 단순한 투자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의구심이 얼마 전에 풀렸다.   그 의구심의 해답은 바로 2004년 신라호텔에서 열린 일본군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와, 2011년 4월 한복 입은   한국인의 식당출입을 제지한 것에서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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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당시 일간신문에 났던 ‘신라호텔에 일본자본 참여’에 관한 기사이다.
1) 매일경제 1974년 1월 30일 / 「호텔신라」 건설에 일본 7개사 참여
【도쿄 30일=합동】 삼성물산이 서울의 영빈관에 세우려하는 대규모호텔 「신라」의 건설에 일본의 니쇼이와이(日商岩井),   다이세이(大成)건설, 고이즈미(小泉)그룹 등 1그룹 7개 회사가 참가할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이들   일본자본과 호텔건설을 위해 자본금 600만 달러의 합자회사 「호텔신라」회사를 설립했다.

2) 매일경제 1977년 2월 1일 / 신라호텔 재착공 지상 22층 일본회사와 합작 78년 준공
호텔신라(주)는 74년 5월부터 중단되어온 동 호텔을 이달부터 재착공한다.   1일 동사에 의하면, 일본의 니쇼이와이(日商岩井), 다이세이(大成)건설 등 6개사에서 4백만 달러, 국내에서 8백만 달러 등   도합 1천2백만 달러가 전액 자본금으로 불입됨으로써 재착공에 들어가는 이 합작호텔은 73년 11월에 착공, 15%의 공사   진척도를 보인 채 중단되어 왔다. 일부 설계를 변경, 오는 78년 11월에 준공을 볼 이 호텔은 오는 7월까지 골조공사,   12월까지 콘크리이트 공사를 각각 끝마칠 계획이다.
대지 8천3백50평 위에 지하 3층, 지상 22층 규모의(옥탑포함지상 85.4m)로 각종 객실 676개를 갖출 신라호텔은 1천5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420평 규모의 국제회의실을 비롯한 2개의 대소연회장과 500평의 로비를 갖게 되며 기존 영빈관과의   연결부분을 기와로 덮는 등 신구(新舊)의 조화를 최대한 살릴 계획이다. (이상) 

장충단 터에 세워진 이승만의 동상 

2011년 8월 25일 서울시 중구 장충동 소재 자유총연맹 광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열렸다. 자유총연맹의 전신은   한국반공연맹으로 원래 장충단 부지에 세워진 건물이다. 박정희의장의 지시로 약 124,000m2 부지에 1964년 자유센타과   타워호텔을 준공했고, 1967년 한국관광공사에 불하되었고, 한국관광공사는 1968년 민간인에게 재불하했던 곳이다. 

최초 국립현충원이었던 장충단의 역사와 관련 있는 인물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승만대통령, 삼성그룹 이병철회장 등   세 이씨(?)와 영혼이 일본인이었던 박정희장군이다. 옛 장충단 부지에는 을미참변(1895년) 때 일제의 침략을 몸으로 막았던   홍계훈, 이경직 등 충신들의 동상은 온데 간데 없고, 민족정기를 짓밟은 이승만과 이병철회장의 동상 두 개가 서있을 뿐이다.   머지않아 이등박문의 동상도 세워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니 아직 실체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세웠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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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충단 파괴와 관련있는 이승만, 이등박문, 이병철회장 이씨(?) 삼총사의 동상                             © 역사복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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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의 상징인 장충단의 원래 주인은 안 보이고, 장충단 파괴범들의 동상과 건물만이 있을 뿐이다.  

 


기사입력: 2011/08/26 [11:45]  최종편집: ⓒ 역사복원신문

출처 :금빛 지도와 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 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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