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 문제를 보자 이영훈은 일본이 비록 1937년 이후 시장경제체제를 상당부분 중지하고 국가사회주의적인 통제정책을 취했지만 그것은 미 군정에 의해 해체되었고 일본이 애초에 도입한 시장경제체제를 복구하고 발전시켜 대한민국이 오늘날과 같은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영훈의 주장에 따른다면 이승만과 박정희는 둘 다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 뿐만 아니라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려는 뉴라이트의 정치적 기획이며 이승만 시대가 박정희시대의 초석을 닦았다고 보려는 최근 한국 보수의 흐름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지 않으려는 학자들도 있다 앞서 언급한 발전경제학자 장하준이 대표적이다 장하준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경제정책을 구별한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은 이미 1950년대 말부터 미국 경제시스템을 흉내내면서 시장개방 금융자유화등을 실시하고 은행도 모두 민영화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그것을 다시 국유화했다 장하준은 만약 1950년대 이승만식 경제 시스템이 지속되어 미국식으로 개방을 했다면 우리나라에는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한국 국적의 기업은 있을 수가 없었다고 단언한다 기껏해야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지사나 몇 개 있는 정도일 테고 지금 같은 경제수준도 누릴 수 없었을거라는 거다
이런 구체적인 수준의 얘기에는 뉴라이트도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장하준은 구체적인 사례로 1972년 8.3 조치를 언급한다
1960년 중반 미국에서는 박정희 정부에 대하여 시장경제 노선을 채택하라고 수없이 촉구했다 그래서 1965~1969년 그런 충고에 따라 금융시장 자유화를 추진했더니 실질이자율이 너무 올라버렸다 신고전파적인 정통 시장경제 노선에 따르면 실질이자율이 높아야 개인드이 저축을 많이 하게 되는 반면 기업들은 높은 이자율 때문에 신중하게 돈을 빌려 효율적으로 투자하게 되므로 이것은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되자 기업들이 이자 때문에 생존하기가 어렵게 되는 지경에 이르러 경제전체가 파탄직전으로 몰리게 된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사채를 동결해버리는데 그게 바로 8.3조치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뉴라이트는 박정희를 시장주의자로 믿고 싶겠지만 8.3조치는 시장주의는 커녕 사유재산까지 규제한 사례라고 말해야 할것이다
교과서 포럼이 펴낸 책 중 하나인 경제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보면 한국의 경제발전 특히 박정희 시대 경제발전의 성격에 대한 논쟁적인 글들이 실려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의 성과를 부정할수 없다는 상식적인 인식에는
누구나 동의할수 있을것 같다 노동자의 착취문제도 그렇다 장하준 정승일이 적절하게 지적한것 처럼 자본주의는 원래 노동자를 착취하는 제체다 그런데 모든 나라의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해서 모든 국가가 경제성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는 분명히 박정희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는 시장을 적절히 이용했고 진보주의자들의 불만처럼 노동자도 착취했지만 한편으로는 자본가들도 통제했다 이것이 그의 경제정책의 성공요인이라 볼수 있다 미국의 권고에 따라 자유시장경제와 개방을 충실히 이행했던 남아메리카의 자본가들은 기껏 노동자를 착취해서 창출한 잉여를 재투자 하지 않고 해외롤 빼돌렸다 박정희는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심지어 자본가들의 소비도 규제했다 박정희가 암살당할때 마셨던 양주 시바스리갈은 영국에서도 가장 싼 축에 속하는 양주라고 한다 말하자만 내가 이것밖에 안 먹으니까 너희들은 사치품을 쓰지 말고 산업에 투자하라는 식이었다 더구나 박정희는 자본가들의 투자를 규제하는 식으로 산업정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본가들의 자본유출 소비 투자를 통제하는데 성공한 체제를 시장주의의 모범으로 말할수는 없다
박정희 체제의 경제발전 원리가 어느 정도는 사회주의와도 비슷했다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이영훈을 포함해 한국의 보수우파들은 자본주의를 들여오면 경제가 흥했고 공산주의를 들여오면 경제가 망했다는 식의 선악 이분법적인 도그마에 갇혀있다
정리하자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만 들여온다고 다 되는것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통제가 필요했다는 거다 장하준은 개방과 자유화 전략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는 단 한군데도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