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월 8일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이승만.ⓒ동아일보 지면
시간의 바퀴를 1948년 대한민국 건국 무대로 돌이키자.
이 해 8월 18일,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3일 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을 연다.
평생을 조국 해방을 위해 일제와 싸워왔던 이 대통령은 이 회견에서 대일관계에 관해 중대한 발언을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上島及下島(상도와 하도)의 二島(두 섬)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영토인데 삼백 오십년 전 일본이 불법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대마도 한국 영유권’ 발언에 당시 일본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반발하자 이 대통령은 9월 9일엔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 영유권을 확인했다.
군경에서 친일파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것은 맞습니다
다음은 이승만 대통령 업적
① 여수·순천반란사건과 같은 위기로부터 신생 대한민국을 구출하고 국가 존립에 필수 요건인 안보를 확보했다.
② 6·25전쟁 중 남한 국민의 충성을 확보하고 미국으로부터 한국군의 훈련과 장비 현대화에 필요한 지원을 받아냄으로써 막강한 군대를 육성했다.
③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조봉암(曺奉岩)을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기용한 다음 지주 출신 의원들로써 채워진 국회에 압력을 가하여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켜 전 국민의 75%에 해당하는 남한 농민들을 위해 농지개혁을 완수했다.
④ 건국 초 열악한 재정 여건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우선순위를 배정하여 각급학교를 대폭 증설하고, 교사들을 재훈련하여, 한글로 쓰여진 교재들을 개발함으로써 국민교육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고 동시에 해외 유학을 장려함으로써 경제개발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했다. 이로써 그는 후세의 한국인들로부터 ‘교육대통령(The Education President)’으로 기억될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⑤ 신생 대한민국은 군사, 경제면에서 미국과 유엔의 원조에 매달려야 하는 일개 속국(client sate)에 불과했지만 그는 [자신의 출중한 외교역량을 발휘해]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진정한 주권 국가로 대접받게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업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