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되기까지 -전두환-

땅크나가신다 작성일 13.01.12 18: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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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1대, 제12대 대통령 전두환(全斗煥) 1931. 1.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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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월 18일, 경상남도 합천 율곡면 내천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인 전상우는 의리가 강하여 빚 보증 서줬다가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어머니인 김점문은 전두환에게 기대가 컸는데, 지나가는 승려가 김점문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튀어나온 앞니가 아들의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라고 하자 곧장 자신의 앞니 3개를 쇠집게로 뽑아버린다

전두환의 형인 전열환은 고향친구들과 놀다가 사망,

마찬가지로 형인 전규곤은 추락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전두환이 초등학교에 재학중일 때, 아버지 전상우는 횡포를 부리는 일본 순사를 때려 눕힌다.

그러나, 보복이 두려워 그 날로 짐을 싸 일가족을 데리고 만주 지린성으로 피난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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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에 전두환 일가는 귀향했고

전두환은 자신이 다니던 호란보통소학교(현재 존재여부 확인 불가)를 졸업하고

대구공업중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고등학생 전두환은 스스로 학교의 야간 순찰을 담당한다.

1951년 2월, 대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학비가 전혀 안 드는 육군종합학교에 진학하려 하였으나

형인 전기환이 군에 있는 이유로 부모가 반대하여 진학하지 못 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은 1951년, 후방에서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전두환은 축구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고, 육사 생도 시절에 골키퍼 포지션을 맡았었다.



전두환은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 축구 국가 대표 감독인 박종환을 불러 작전을 지시할 정도로 축구광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전두환은 노태우를 만나게 된다.

전두환은 육군사관학교 재학 시절에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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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우연히 육군 대령 이규동의 관저에 드나들다가 이순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

전두환은 자신의 형제들 중 경제력이 가장 나았기에 자신이 부모를 모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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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2월, 전두환은 미국으로 건너가 특수전 교육, 심리전 교육, 레인저 교육을 받고 귀국한다.



1961년 5월 16일, 5.16군사혁명이 발생하자,

 전두환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인 박정희에게 찾아가서

육사 생도가 주도하는 '군사혁명 축하 기념 퍼레이드' 에 대해 허락을 구한다.

박정희는 전두환의 요구를 받아들여줬고 퍼레이드는 성공적으로 진행된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전두환은 박정희의 눈에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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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전두환은 소령의 계급으로 있었던 때에 하나회를 조직하고 가담해, 군부 내의 인맥라인을 형성한다.

박정희가 차지철, 전두환 등 군인 세력을 정치권으로 영입하려 하자

차지철 대위는 이에 응해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전두환은 박정희에게

"각하, 군 내에서도 충성스러운 부하가 하나 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며 국회 입성을 포기한다.

이에 박정희는 전두환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전두환을 특별히 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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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두환은 육군 대령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전두환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이래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다만, 식수가 부족함에도 불가하고 자기 혼자 따뜻한 물로 씻거나

암거래 시장에서 무기를 사와 전리품으로 보고하는 등의 오점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전두환에게 훈장을 내리려 했지만, 월남전에서의 전두환의 직속 상관들은 훈장 수여를 반대했었다.



1978년, 제1사단의 사단장을 맡게 되었는데 사단장 재직중에

북괴의 제3땅굴을 발견하는 공을 세우게 된다.



1979년 3월, 보안사령관이 되어 중앙으로 복귀하게 되었는데

전두환과 차지철은 겉으로는 친해보였으나 속으로는 원수관계였다.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었던 차지철은 국회로 갔으나, 전두환은 군에 잔류하여 박정희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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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하자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를 설치, 진상조사에 나선다.

1979년 10월 27일,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박정희 대통령 암살 혐의로 체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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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은 노태우를 비롯한 하나회 소속 동료들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킨다. (12.12쿠데타)

박 대통령 시해 사건 때 현장에 있었던 비서실장 김계원, 계엄사령부 사령관 육군 대장 정승화가 체포되었고

이 과정에서 김오랑 육군 소령이 전두환 측 군인이 쏜 총에 맞사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진에 보이는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신군부의 쿠데타 소식을 접하자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너희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다날려버리겠어! 역적놈의 새끼들!"(제5공화국대사)

그러나 결국에는 전두환 측에 의해 체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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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518사태(사태 (事態) [사ː태] btn_listen.gif 다른 뜻(6건) 맞춤법·표기법 [명사]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이나 상황. 또는 벌어진 일의 상태)가 발생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진압되었고

1980년 8월 6일, 전두환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최규하 대통령은 하야했고 결국 전두환 혼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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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장충 체육관에서 대의원으로 구성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 선거로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간접 선거로 당선된다


위키백과를 참조했다고함

예상x응님의 글 첨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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