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민족문제연구소의 소장 임헌영이다
임헌영의 본명은 임준열이다.
임헌영의 부친은 보도연맹 사건으로 잡혀들어가서 사형당했고, 임헌영의 4형제마저 좌익활동으로 사형 당했다.
더욱이 임헌영은 혁명자금 마련하겠다고 강도짓까지 하고 다니던 남민전 출신이다.
임헌영은 국보법 위반으로 징역을 살았었다.
부친과 형제들이 좌익활동에 연루되어 사형되었고, 임헌영 본인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징역살이를 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국가에 대한 분노와 안좋은 감정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
위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이라는 인물이 남민전 출신이라는 것은 이야기 했다.
그러면 남민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간략히 알아보자
남민전은 해방전후 역대급 레전드 빨갱이 박헌영의 조선남로당의 활동에서부터 뿌리가 닿아있는 구좌익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청학련 세력이 응집한 지하당이다.
남한 내 인혁당-통혁당-남조선해방전략당 출신이 남민전의 지도부였다.
그들은 엄연한 자생적 종북조직이었고, 그래서 북한의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는 유인물을 살포해댔었음.
간첩조직과 달리 자생적 종북조직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부터의 자금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혁명자금 마련을 위해 '혜성대' 라는 강도조직을 조직해서 금은방과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럭키그룹 구자영 회장의 자택에 침입해 상해를 가하고 금품을 절취하는 등 강도짓까지 서슴지 않는 테러집단이었다.
더욱이 혁명의 순간을 위해 총기와 폭탄을 탈취하여 보관하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총기와 탄약 이외에도 TNT까지 불법적으로 입수하여 무장게릴라를 준비하였었음.
게다가 남한에서 혁명이 성공할 경우 중앙청에 게시하기 위해 남민전 기旗를 제작하여 보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안보와 치안에는 심각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법원에서 남민전은 간첩조직으로 땅땅땅!
보이는가??
바로 북한의 인공기를 모방한 남민전의 기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이라는 인물이 바로 유신체제 말기 최대의 종북조직 남민전 소속이었다.
좌익들은 간혹 임헌영의 과거일뿐이라며 애써 무시한다
유인물
-그 외 민문련 소속 인물들....
강정구
김일성의 생가 만경대를 방문하여,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의 위업을 이룩하자' 라는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올랐고,
게다가
-6.25는 북한에 의한 통일전쟁
-6.25는 미국만 아니었다면 한달만에 끝났을 전쟁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이 없었다면 민족의 분단도 없었을 것
정도가 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윤경로 한성대 총장
윤경로라는 인물이 '우리민족 정체성과 민족공조' 라는 제목으로 주장하였다
"100년이 지난 오늘 일본의 한복판 동경에서 우리의 말, 우리의 정신을 가지고 ‘민족의 공조’를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뜻 깊은 일인가. 올해는 광복60주년이자 6·15공동선언5주년이다. 조선민족, 한민족의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찾아보고 그 속에서 민족공조를 찾자...6·15선언 2항의 '연합제' 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민족공조로 통일이 가능하다"
강만길
민족문제연구소의 이념노선을 이끌어오는 핵심적 인물
강만길은 각종 저술에서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민족사적 정통성이 없다' 라고 단언
반대로 '북에 성립된 정권은 조국해방에 대비했던 세력들이 연합하여 세운 정권' 이라는 개가 뜯어먹을 개소리를 하며 민족사적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역사관을 확립시켜온 인물.
게다가 6.25는 사변 or 동란이 아닌 전쟁이라고 부를것을 주장하며, 이는 '김일성에 의한 침략전쟁이 아니라 남북간의 통일전쟁'이라는 소리를 해왔다.
그리고 한국 마오이즘의 거두였던 종북주의자 리영희 선생도 민문련 소속이이었다.
-고문변호사
이석태변호사
송두율변호를 맡았던 김승교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
민문련이 원래 처음부터 민문련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역사문제연구소라는 단체로 시작을 했었다. 여기에는 현재 서울 시장 박원순이 껴 있었고, 박원순은 그들과 함께 친일파 캐기에 앞장 섰었다.
근데 이게 웬걸?
박원순이 제적등본(고향,신분,집안의 세탁-변조-위조가 불가능한 절대영역)을 떼보니, 박원순의 부친은 보국대 출신이었던 것이다.
일제 체제 말기로 가면 보국대가 물론 강제성을 띈 것은 사실이지만, 30년대 말부터 강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7년을 활동해놓고, '아, 강제였다' 라고 추잡한 핑계를 대는 것은 그냥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일이다.
그래서 박원순은 거기서 손 털고 나온다.
동아일보의 김성수를 알 거다. 이 위인이 뜬금없이 친일파로 찍혔는데, 김성수가 학병참가를 권유한 전쟁협력자라는게 그 이유.
하지만 김성수가 직접 유세에 나섰다는 실질적 증거는 없고,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름만 빌려줬다는게 정설이다.
게다가 일본 당국에 의해 엄연히 반일인사-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혀 있던 상황이라, 일제에 의해 끊임없는 감시를 당했었다.
근데 김성수의 민족운동에 대한 기여는 친일논란을 상쇄하고 남음에도 민문련이 제작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친일인사로 올라가 있다.
반대로 여운형은 그가 친필로 작성한 '반도 이천오백만 동포에게 호소함' 이라는 친일 학병참가 독려글이 언론에 공개 되었음에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친일인명사전에서는 누락되었다
아이고 힘들어 샹
퇴근하기전에 이게왠 뻘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