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지방공사 의료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지는 몰라도 과거 도립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됐던 전국 34개 지방공사 의료원의 현실적인 문제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다.
"진주뿐 아니라 대다수 지방의료원이 처한 현실"
이것은 비단 진주의료원 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료를 표방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방공사 의료원이 10여년 이상 막대한 경영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데서 발생된 일이다. 엄청난 적자를 보더라도 공공의료기관이기 때문에 폐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고, 도정(道政)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지방공사 의료원의 적자 상황이 더 이상 개선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니까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좀 성급한 면이 있다.
여기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는데 있어 지역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며, 노조가 머리띠 두르고 나서는 것도 식상하고 무책임한 일처럼 보인다. 국회의원이 단식 투쟁을 한다고 폐쇄키로 한 결정을 번복한다면 이 또한 촌극이다. 구색 갖추기 식으로 명맥만 유지한다고 해서 공공의료에 기여할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다.
막연한 명분과 객관성이 없는 자기주장에 몰입할 사안이 아니라 문제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사실에 입각한 현실적 분석을 통해 현명한 해결책을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는 지난 2000년도에 약 2년 동안 전국 45개 정도의(당시에는 지방공사 의료원이 지금보다 많았다) 지방공사 의료원 경영평가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평가단은 행자부 공무원, 전문 회계사, 전국의료원연합회 대표 그리고 의료계 대표 4명으로 구성됐다. 평가 범위는 경영 상태는 물론이고, 공공의료 기관으로서의 역할 정도,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도나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 등이 포함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만 해도 전국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이미 대부분의 지방공사 의료원에서 매년 적자 폭이 커져 누적돼 가고 있을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단을 구성해 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필자가 마음속으로 정리했던 지방공사 의료원의 문제점은 대개 몇 가지로 집약됐다. 물론 그 이후 오늘날까지도 지방공사 의료원의 경영적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가 느꼈던 당시의 문제점이 10여 성상을 훌쩍 뛰어 넘은 오늘과 당시의 실상이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의료원 정체성 불분명에 이면합의 등 경영성과 보상 편법 난무"
첫째 의료원의 정체성이다. 지방공사 의료원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설립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본다.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말이다. 병원마다 약간씩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공공의료에 충실할 것이며, 동시에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경영을 합리화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직원들이 이루어 낼 수 없는 허황한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경영 목표는 직원들로 하여금 그저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포자기 상태를 만들 수밖에 없다.
의료원 문 밖에만 나가면 첨단 의료기기가 설치돼 있고, 직장인으로서의 분명한 책임감으로 가득한 구성원들로 채워진 무수히 많은 병원들이 있는데 이들과의 경쟁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있는 지방공사의료원의 경영이 합리화 될 수가 없다. 나아가 그곳을 찾는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겠는가? 다시 말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충실한 역할인들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음은 의료원의 내적 경영 상태를 살펴보자. 당시는 전국 지방공사 의료원의 경영 실적을 바탕으로 최우수 의료기관으로 평가되면 전 직원들에게 포상금으로 100% 보너스가 주어지곤 했다.
일반적으로 한 조직의 경영 상황이 1년 단위로 갑작스럽게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공공의료기관과 같이 경영 행태가 비교적 정형적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당시 전국 지방공사 의료원들의 상태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해 일등이던 병원이 그 다음 해 갑자기 곤두박질치는 마치 널뛰기 형국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분명한 것은 강성노조 투쟁이었다. 노조 투쟁의 잘잘못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강경투쟁이 불러 온 경영상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일부 무능하고 의지가 없는 기관 책임자 때문에 생긴 일이겠지만 노사 간 단체협약에 표면상 나타나지 않는 보이지 않고 감추어진 합의, 소위 '이면합의'도 볼 수 있었다. 경영 주체나 구성원이나 적당한 현실 타협 속에 존립만을 추구하는 것이지 공공 의료기관으로서의 사명감에 걸 맞는 근무 자세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최근 어떤 사람들은 공공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일반 민간 의료기관과 같은 형태의 진료를 할 수가 없어서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두가지 측면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나는 민간 병원은 전부 불법 과잉진료를 하고 있다는 말인지 묻고 싶으며, 합법적인 진료만을 했기 때문에 적자가 발생했다면 의료수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의 반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의료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은 지금껏 민간 의료기관 대비 부실한 진료를 받았다는 말인지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진료를 받은 환자가 수적으로 적다면 그것이 바로 적자의 원인이고, 환자의 숫자는 적정한데도 적자를 보았다면 의료원 경영이 문제인 것이다.
셋째는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로 일반 민간병원 대비 시설이나 인적 구성 면에서 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본래의 목적인 공공 의료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민간 병원과 비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각 지역마다 존재하는 보건소라는 곳이 공공의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건소 진료 행위가 보건소 본래 기능에 걸맞은 것인지, 왜곡된 운영 행태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지방공사 의료원은 보건소와 경쟁관계에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혹자는 외래 환자 진료와 입원 환자 진료에 대한 역할 분담을 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래 진료 없는 입원환자 치료라는 것은 한국적 현실에서 대학병원급 대형병원들도 운영상 어려움을 겪어야 할 만큼 외래 진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우리나라의 한심한 의료시스템이다.
그런데 보건소 운영 주최는 지자체장이다. 지자체장은 어쩔 수 없이 선거를 의식해야 할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각 지역 보건소는 본래 설립 목적과는 관계없이 공공의료와 의료서비스를 내세워 지역 유권자들에게 막대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강원도의 어느 도시에 가면 지방공사 의료원 바로 옆에 있는 보건소의 의료 장비가 병원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현대화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무슨 공공 의료기관으로서 기능을 기대하겠는가?
"종사자들 책임의식 재무장 절실·보건소와 경쟁 지양하고 백화점식 진료 탈피 시급"
결론적으로 필자는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과 관련해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정부와 국회가 경상남도와 각을 이루면서 공공의료기관이니까 존립해야 한다고 밀어 붙여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제2, 제3의 진주의료원이 파생된다. 공공의료기관으로 존립해야 할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루어 질 수 없는 경영 합리화는 아예 포기하고 공공의료에만 전념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전제 속에 구성원들에게 공공 의료기관 종사자로서의 덕목과 근무 철학을 요구해야 한다. 진주의료원이 존립해 살아날 것이냐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먼저 구성원들의 확실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본인이 속한 조직의 존립에 대해 구성원들이 일차 책임이 있는 것이지 월급만 받는 방관자가 돼서는 안된다.
이런 조건들이 전제되지 않고 여론과 시류에 휩쓸려 지방공사의료원의 존속이 결정된다면 몇 년 못가서 지금과 같은 존폐 논란이 또 반복될 것이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근무 자세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또한 지방공사의료원이 공공의료 부문에서 지역 보건소와 경쟁을 해서도 안된다. 공공의료의 진료 부분은 당연히 의료원 역할 속에 포함돼야 하고 보건소는 고유한 업무로 전환돼야 한다. 이렇게 공공의료원이 자생할 수 있는 내외적 여건을 만들어 주면 의외로 빠른 시간 내 경영합리화가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한 가지는 지금과 같이 전국의 모든 지방공사 의료원이 천편일률적으로 백화점식 진료 행태 속에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공공의료기관 답게, 민간의료 기관에서 감당하기 힘든 진료부분에 대한 전국적 규모의 진료 특성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전국 30여 곳의 지방공사 의료원이 각각 한가지씩 특성화된 의료원으로 자리매김 하면 전국적 경쟁력 우위를 점할 것이고, 정부는 특성화된 30여 곳의 공공의료기관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의료원에 국민의 혈세를 끝없이 퍼부면서 존속시키는 것은 대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며, 차라리 지방공사의료원에 투입되는 운영자금과 적자 보전금을 합쳐 서민층에 금전적으로 지원, 본인들이 진료 선택권을 갖게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