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일본은 1억 총 옥쇄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실상 자멸의 길을 가고 있었다.
태평양 개전초기 미국은 일본에게 선택지가 한 개인 조건을 내세웠고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갔다. 일본은 그 선택지를 피하기 위해서 최대한으로 노력했으나 그것은 무리였다.
미국은 지속적인 전쟁으로 전쟁국채를 팔고 있었고 민간은 그것을 구입했다. 사실 미국시민을 제외하면 미국의 국채를 구입해 줄 나라는 없었다.(이러한 장면은 아버지의 깃발이라는 영화를 보면 쉽게 볼 수 있다. 시민들은 영웅을 찬양했고 영웅에 감명받은 시민들은 전쟁국채를 구입해주었다.)
하지만 점점 인적 한계에 도달했다. 미국이 인구가 많았는데 한계라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미군과 미국사회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종심은 미국 역시도 힘든 상태였다. 그래서 미국은 소련에게 대 일 전선을 열 것을 요구했다.
스탈린은 일단 히틀러에게 복수하는 것이 중요했고 전선을 여는 것은 2000만명(대략 1가구당 1명꼴)의 희생을 낳은 독소전쟁 직후의 소련에게는 무리였으나. 스탈린은 승인했다.
그리고 1945년 4월 소련은 더 이상 소-일 불가침조약을 더 이상 계승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일본은 중립국을 통한 무조건항복보다는 완화된 조건하에게 종전을 맞이하고 싶었다. 일단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고 싶었으까.(인간 학대범은 역시 무엇인가. 생각이 놀랍다)
일본의 내각은 스탈린을 통한 평화협상을 조율하고자 하였고 영토를 대량으로 할양당하더라도 살자 라는 결의를 했다.(자신의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남의 목숨도 하나뿐이거든요!)
(좌측인물이 바로 몰로토프이다. 우측의 인물은 강철남 스탈린)
때는 8월 9일 소련외무상 몰로트프(화.염.병으로 유명한 몰로토프의 칵테일의 주인공)는 일본의 대사와 면담하였다. 일본은 희망을 갖고 들어갔으나 일본은 절망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감사한 핵무기)
그것은 대일 선전포고였던 것이다.
이미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지고 3일이 지난 시점에 일이였다.
하지만 소련은 진작 대일 전선을 열 준비를 마친상태였다. 모스크바 공방전의 영웅이며 스탈린그라드를 독일6군의 지옥으로 만든 천왕성 작전의 입안자이기도 한 알렉산드로프 바실렙스키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본군 몰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동원하여 유럽전선의 숙련병과 장비를 옴기고 있었고 군대의 규모는 정예병 90개 사단이였다. 그리고 전후 처리를 할 혹 돼지새끼도 대리고 왔다.
하지만 일본군은 모르고 있었다.
일본군은 대략 1946년까지 공세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전포고가 발동 되자마자 소련군은 거대한 강철의 파도가 되어 일본군을 공략해 들어갔다. 일본군은 국경지대에 험준한 산맥과 지형과 구축해 놓은 요새와 만주군 75만과 관동군60만을 동원해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러한 생각은 1939년(독일의 프랑스 침공) 에 이미 논파되어 버린 작전이였던 것이다.
또한 주요사단은 전부 태평양과 일본본토로 옴겨졌고 남아있는 부대는 제대로된 무장이 되지 않았다. 소총은 3인 혹은 4인당 1정이 주어졌다.
거대한 중(中)전차와 더 거대한 중(重)전차는 일본군이 가지고 있는 대전차병기를 동원해 파괴가 불가능했고 유일한 파괴수단은 인간지뢰뿐이였다. 하지만 독일의 판처 파우스트와 판처 슈렉과 싸우던 소련군이였고 사실상 일본군의 공격 대전차공격은 무리였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산맥에서 매복해 있던 대전차 자폭조에게 자주포와 돌격포를 합쳐서 600여대를 상실했다.
소련군의 주력은 험준한 산맥을 넘었고 350km의 전략적 기동과 작전을 벌였고 11일 만에 관동군은 사실상 아니 만주의 일본군의 세력은 사실상 소멸했다.
만주국 황제 푸이는 잡혔고 일부부대는 북경까지 진격했으며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 일부까지 소련군은 일본군을 몰아내었다.
(일본군의 깃발을 회수한 소련군의 기념사진 여기서 알 수 있지만 소련군의 연령대가 낮다는것을 알 수있다. 이것은 바로 독소전쟁으로 수많은 청년층이 죽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본군의 항복이 늦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소련군이 한반도까지 진격을 개시했을까? 아니면 만주를 얻는만 만족했을까?
사실 38선은 여러이론이 존재한다 미국이 소련군의 진격을 속도에 놀라서 황급히 그었다는 설과 이미 준비되어있었다는 설이다.
소련은 이미 동유럽을 차지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사실 동유럽은 이미 소련의 땅이나 마찮가지였다. 2차세계대전으로인해서 2천만명이 넘는피해를 보았지만 세계 최강대국중 하나이며 구 열강의 힘보다 자신들이 강하다는 것을 크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또한 얄타회담에서 이미 독일을 분할계획을 완료했고 대 일 참전을 약속받았으며 사실상 냉전의 시작이기도다는 주장이있었는데 그곳에서 이미 38선이 그어졌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발트3국역시 얄타회담에서 소련에 흡수되기로 약속되었다.
역사는 IF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IF를 하자면 이시기에 일본군의 항복이 늦어졌다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제는 결사항전을 주장하며 1옥 총 옥쇄를 하고 소련군은 한반도로 내려오고 있었다면을 말이다.소련군은 혹 돼지를 데리고 오고 있었다. 또한 중국은 국공내전에 들어갔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렇다면 소련은 한반도를 어떻게 볼것인가?
우리는 몰락작전을 알고 있다. 대대적인 상륙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규모를 비교할 수없었다.
노르망디는 프랑스의 땅이였고 나치가 점령하고 있었다면 일본은 군국주의에 미쳐있는 일본인이 죽창과 폭탄을 매고 자살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이러기 위해서 일본은 철저히 국민을 세뇌했다. 남자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여자는 흑인들에게 강/간을 당할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많이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실 것이다. 이러한 것은 현재 혹 돼지의 손자인 젊은 돼지가 무단으로 점령하고 있는 한반도 북부의 테러집단이 그곳에 거주민들에게 똑같이 세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볼려면 미스테리 게시판에 있는 건국대통령님이 올린 사진을 확인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일본은 미국에 손아귀에 빼앗겼다면 본토를 침공당하지 않을 지형지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미 냉전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상태였다. 다만 소련이 아직 핵무기를 만들지 못해서 눈치를 봐야 했을뿐이다.
실제로 소련은 동유럽국가를 거대한 종심으로 이용했으며 나폴레옹때부터 거대한 종심으로 끌여들여서 적을 공세한계점까지 몰아붙인후 그동안 모은 물자와 병력으로 격멸시켜왔다.(대표적인 예로 나폴레옹을 모스크바까지 데리고온후 후퇴하는 나폴레옹군을 격멸시켰고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시베리아에 주둔해 있던 병력을 차곡 차곡 모은후 방어전을 펼쳤으며 또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반격 작전이 천왕성 작전에서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만주와 한반도는 매우 중요한 거점이된다 게다가 한반도는 부동항이지 않은가!
그리고 또한 광복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제는 광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은 과연 승전국의 영예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한국 광복군은 1천명으로 약 1개대대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유프랑스보다도 적은 병력이지만 이들이 한반도 내부로 들어올 경우 무지막지한 숫자로 늘어날 수 있다. 정말로 호미들고 총에게 돌격할 수도 있다.
문제는 물자인데 미군은 사실상 일본의 제해 제공권을 모두다 차지하고 있었이니 공중보급으로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1천명의 광복군이 상륙을 한다며 중요한 위치는 서해안쪽으로 점령할려고 했을 것이다.
서쪽이 주요 대도시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소련군의 진격속도이다.
만약 관동군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며 소련군은 무지하게 빠르게 듯이 남하를 계속 했을 것이다. 소련역시도 전쟁을 끝내고 싶어했을것이고 미국도 전쟁을 끝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전쟁사학자 존키컨이 말했던것과 같이 무엇인가 형용할 수 없는 강대한 어떠한 것에의해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한 것이다. 작은 것으로 전쟁을 끝내기에는 무조건항복이 아닌한 전쟁터에서 죽은 자국민과 전쟁국채를 산 시민들을 볼 낯이 없을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이 핵폭탄을 맞고 정신을 못차린다면 어쩔 수없이 몰락작전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련군이 한반도를 점령한다면 일본군은 병력을 양분해야한다.왜냐하면 부산과 규슈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혼슈까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군은 소련의 한반도 진격을 당연히 용인했을 것이다. 더빨리 전쟁을 끝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바르샤바봉기를 볼 수 있다. 나치독일이 점령하고 있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이 봉기를 일으켰다.(이러한 장면은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련군은 진격을 그만두었고 그것이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소련은 폴란드를 당연히 소련이 얻어야할 전리품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들은 이미 그것을 용인했다.
그리고 진압되고 소련군은 바르샤바를 점령했다. 만약 소련이 이와같이 한반도를 본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렇다면 한줌밖에 안되는 광복군은 일본군 2개사단과 싸워야한다는 것이다.(헌병대 및 경찰제외)
아시다 싶이 특수훈련을 받은 현재의 특수부대도 2차례교전할 탄약밖에 챙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2만대 1천이라는 상황이 구현될 가능성도 높다.
정말로 어떻게 될까가 가장 궁금하다. 핵으로 일본이 미리 항복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3.8선은 생기지 않았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재의 북한의 지배자는 혹돼지가 아닐가능성이 매우 높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미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과거를 한계단 한계단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뒤를 돌아볼 여유는 별로 없다. 가끔 주변국이 우리의 역사를 가지고 장난칠려고하면 갑자기 타버리거나 끓어 올는 죽처럼 쉽게 오른다. 다만 죽과 달리 우리는 쉽게 열이 식는다.
바람이 불면 계단에 앉으면 되다. 계단에 앉으면 우리가 우리국가가 걸어온 계단이 보일 것이다. 너무 멀어서 안보이는곳도 있을 것이다.
너무 가깝지만 너무더러워서 보기싫은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있을 때 우리는 계속계단을 오르는 것 보다는 과거를 한번 바라볼 필요가있는 것 같다.
그곳을 우리가 걸어올라왔다고.
끝까지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별 재미없는 이야기를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