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냥 농담하는 줄 알았다. 예산 660억짜리 정책을 위해 180억을 들여 투표를 하는 것은 <개그 콘서트>에나 등장할 만한 초현실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속담이 딱 이런 경우를 가리킬 게다. 여기서 ‘180억보다 660억이 더 크다’라고 반론을 펴는 ‘모지리’가 있다면, 그에게는 배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배꼽이라 해서 그보다 덜 우스운 것은 아니라고 대꾸해주련다.
660억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은 개그로 넘기자. 660억이면 삼성그룹 이사 10명의 연봉에 해당한다. 그 돈이 없어서 망할 나라라면, 오세훈 서울시장 손에 진작에 망해도 최소한 여덟 번 이상 망했다. 그가 한강 르네상스니 뭐니 해서 서울에 회칠하는 데에 쓴 돈만 이미 5000억이 아닌가.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 손에 이 나라는 이미 마흔 번은 망했다. 4대강 삽질 하는 데에만 22조를 쓰지 않았던가.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왜 무상으로 밥을 주느냐고? 660억 중에서 강남 부잣집 애들의 밥값으로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게 그렇게도 이상하면,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초·중학교 무상교육을 하는 것도 한탄할 일이다. 진정으로 사회정의를 원한다면, 이 정권에서 부자 감세로 퍼준 96조나 환수해야 한다. 부유층에 96조나 퍼준 이들이 무슨 낯짝으로 강남 애들 밥값이 아깝다고 엄살을 피우는지.
보수언론은 목청 높여 투표 참여를 독려한다. ‘민주’가 밥 먹여주느냐던 이들이 갑자기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느낀 모양이다. 가상한 일이지만, 주민투표의 규칙은 투표율이 33%가 넘지 않으면 투표함을 열지 않는 것. 그것은 투표에 불참하는 이들의 의사도 정당한 의사표현으로 간주한다는 합의의 제도적 표현이니, 민주주의 걱정은 하지 마시라. 투표함 불개봉도 민주주의적 규칙이니까.
대체 이 선거를 왜 해야 할까? 오 시장의 비토는 원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차별화를 위한 제스처에 불과했다. 그런데 우익단체에서 덜컥 진짜로 멍석을 깔아주니, 이제 흉내가 아니라 정말로 춤을 춰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가장 좋은 것은 투표에 이겨 단숨에 박근혜의 대항마로 떠오르는 것이나, 문제는 역시 저조한 투표율. 이럴 바엔 불출마 선언으로 투표율 높여 차차기를 내다보자는 계산이다.
한나라당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사실 주민투표는 오세훈의 ‘개인’ 프로젝트인데, 여파는 당에 미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혼선을 거듭하다가 투표 독려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한나라당의 이후 행보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복지’가 최고의 화두가 될 터. 애들 밥그릇이나 빼앗는 정당에서 외치는 ‘복지’에 무슨 진정성이 있겠는가.
황당한 것은 ‘복지’ 망국론이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의 복지 후진국에 속한다. 이런 나라에서 과잉 복지를 외치는 이들은 제정신일까? 영양실조 환자에게 비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돌팔이 의사들이 이 나라엔 너무 많다. 게다가 미국의 재정위기는 부시 정권 때의 전쟁과 부자 감세에서 비롯된 것. 사실 제대로 ‘망국질’ 해 온 것은 삽질과 부자 감세로 재정을 악화시킨 현 정권이 아니던가.
4대강 사업 22조, 부자 감세 96조, 한강 르네상스 5000억, 아라뱃길 1조2000억. 삽질과 분칠과 부자 감세로 망국의 위험에 처한 나라를, 초등학교 애들 밥값 아껴서 구하겠다? 이게 제정신 갖고 할 수 있는 소리일까? 이 블랙코미디를 연출하기 위해 또다시 180억을 쓴단다. 대체 이 투표를 왜 해야 할까? “투표율이 25%를 못 넘었는데 계속 시장 하면 오세훈은 ×××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 180억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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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무상급식 얘기가 나와서 옛날꺼 뒤적여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