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대통령을 인격적으로 존경하지만 예전 일왕묘소참배와 박정희 반란가담자중 한명인 김종필을 포섭한것에 비난을 했다가 우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북지원과 남북화해무드를 조성한 김대중 전대통령의 업적을 인정받아야한다고 하니까 이제는 종북좌파소리를 듣고 노무현 전대통령을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하다 하니 다시 좌좀소리를 들었습니다.
본인은 나름 정치적인 편향성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볼려고 노력했지만 언제나 종북소리아니면 보수우익에 도대체 정치적성향은 무조건 찬성 아니면 반대만이 존재하는것인지 의아스럽습니다.
박정희를 친일파출신 독재자라하니 시대착오적인 빨갱이소리를 들은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것은 여당을 지지하면 무조건 대통령과 정부는 합당하고 반대파인 야당은 종북에 좌파들로 구성된 사회악처럼 치부해야만 보수가 됩니다.
반대인 경우도 위와 유사하고 관용과 타협은 국어사전에만 존재하는 말처럼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본인은 단한번도 사회주의에 심취한적도 김씨일가를 찬양한적도 없음에 단지 본인이 박정희를 폄하했기때문에 빨갱이소리를 들은적도 있는데 도대체 기준점을 어디에 두는지 궁금해집니다.
보수니 진보니 좌익이니 결국 이모든것은 한쪽의 편향된 소리로는 올바른 접점을 찾을수없기에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이끌어내기위한 소통의 창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서로 각자 목소리만 높일뿐 서로의 말에 귀를 막고 무조건적인 배척만이 남았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그룹의 이상만을 말하고 그들의 문제점과 과오는 가리고 전혀 자성의 목소리를 잃어버린체 상대를 비난하는것에 혈안이된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상대의 목소리를 귀기울이고 차분히 깊이 생각할수있는자세는 스스로가 충분히 자신의 책임을 질줄아는것이고 관용과 타협으로 새로운 결과를 도출시킬수있는 역량의 단편이라 생각합니다.
냉전이 끝나버린 시대에서 여전히 이분법적인 적과 아군을 구별하고 마치 적을 증오하듯이 맹렬한 적개심으로 무장한체 서로를 향해 끝없는 싸움을 벌이는것이 오늘날의 좌파니 우파의 논쟁으로 느낍니다.
영화 몰락에서 괴벨스는 이모든것은 독일국민이 선택했고 강요한적없고 이제 그 댓가를 치르는것이라 말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권력과 견제를 잃어버린 정치는 상대를 수용하고 포용하기보단 배제하고 하나의 연결고리를 전체를 묶을려는 극단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원색적 비난과 인신공격, 근거와 논리를 포기한체 무조건적인 비판 이것은 소통이 아닌 선전포고입니다.
선전포고하는 상대에게 관용과 타협이 존재할리 만무하고 불붙은 적개심은 오로지 상대의 파멸만을 바라는 정치놀음의 희생양으로 전락할뿐입니다.
우리가 관용의 미덕을 찾아야하는것은 우리가 극단성의 양면으로부터 벗어나기위함입니다.
일본의 우경화나 2차대전의 나치즘과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등 일방통행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어떤식으로 개인을 억압하고 야만성으로 물들어가는지를 보아왔습니다.
모든사람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있고 각자다른 정치적 성향을 내포하고 소신있게 이야기하고 상대를 존중하는것 우리가 정치에서 잃어버린 참된 민주주의의 한단면이 아닐까합니다.
오늘날 저같은 정치적 성향이 모호한사람은 도대체 어느쪽 깃발을 들고있어야하는지 꼭 그렇게 한쪽의 깃발을 들고있어야 하는것인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