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가 ‘정윤회 감찰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후 엄청난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물론 이 파장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국정농단 여부입니다. 정윤회 씨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공조직을 무시하고 국정을 농단했는지가 핵심문제입니다. 오늘 ‘이슈독털’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캐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사건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파장을 읽는 데 도움이 될 체크포인트를 추출해보도록 하죠.
국정농단 의혹사건의 대강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지난 3월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사저널’이 3월23일자로 내놓은 기사 하나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인데요. 기사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가 지난해 11월부터 수상한 오토바이 한 대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낌새를 차리고 있다가 12월에 이 오토바이에 탄 사람을 붙잡아 캐물은 결과 정윤회 씨의 지시로 자신을 미행했다는 진술을 받고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한편 민정수석실의 간부에게 미행당한 사실을 알렸고, 이에 민정수석실 간부가 경찰에서 파견된 부하 직원에게 내사를 지시했으나, ‘대통령 측근’이 민정수석실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 출신 부하직원을 경찰로 원대복귀시키라고 지시했고, 결국 이 직원은 지난 2월말 청와대를 나와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미 알려진대로 ‘시사저널’의 이 보도는 정윤회 씨에 의해 고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진실을 다투고 있는 대상인 것이죠. 따라서 ‘시사저널’의 보도를 액면 그대로, 100%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시사저널’ 보도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윤회 감찰보고서 공개로 드러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 과정과 정황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정윤회 감찰보고서 작성일자는 올해 1월6일입니다. 정윤회 감찰보고서가 이날자로 작성되기 위해서는 감찰은 그 이전에 이뤄졌어야 합니다. 최소한 12월 어느 때부터는 감찰에 들어갔어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역추산을 한 뒤 ‘시사저널’의 보도내용을 살피면 정확히 일치합니다. 정윤회 씨에 대한 뒷조사에 들어간 시점이 거의 일치하는 겁니다.
등장인물도 일치합니다. ‘시사저널’에 표기된 ‘경찰에서 파견된 부하 직원’은 정윤회 감찰보고서를 작성한 박모 경정입니다. 그리고 ‘민정수석실 간부’는 박 경정의 직속상관이었던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입니다.
싱크로율은 90%입니다. 박 경정이 조응천 비서관의 지시로 감찰을 벌인 시점과 경위는 완전히 일치합니다. 다만 감찰 사유가 ‘시사저널’은 박지만 미행, 감찰보고서는 김기춘 교체설로 다를 뿐입니다.
이렇게 갈음해놓고 ‘시사저널’ 보도와 감찰보고서 작성 경위에서 일치하는 부분을 기초로 체크포인트를 짚어보겠습니다.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정윤회 씨에 대한 감찰에 들어간 이유는 박지만 씨 미행 건입니다. 따라서 그 결과물도 미행 건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감찰보고서의 내용은 김기춘 교체설이었습니다. 감찰 착수 이유와 감찰 결과가 다른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상당히 난해한 문제 같지만 이는 착시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보고서를 하나만 작성했다는 전제에 사로잡혔을 때 나타나는 난기류일 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한 건의 감찰보고서는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달랑 그것 하나만 작성한 것이 아니라 그것 하나만 공개됐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박지만 씨 미행 건과 관련된 감찰보고서가 어딘가에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정윤회 씨의 행적 전반에 대해 폭넓은 감찰을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감찰보고서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습니다.
정윤회 감찰보고서 작성과 공개 배경을 놓고 권력 암투를 추정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박지만 대 정윤회 간의 암투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으로 보는 것이죠. 신빙성을 갖고 있는 추정이긴 하지만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확정짓기에는 한계가 있는 추정입니다. 하지만 ‘시사저널’의 보도를 보면 권력암투설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옵니다. 박지만 씨가 조응천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고, 조 비서관이 박 경정에게 감찰을 지시했다는 점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당사자의 목소리인데요. 박 경정은 ‘시사저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청와대에는 문고리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 … 박지만 회장이 문고리를 견제해야만 한다. 그런데 문고리들이 박 회장을 무척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다. 굉장히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 경정의 이 발언은 ‘시사저널’ 보도의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박 경정이 ‘시사저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육성으로 밝힌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팩트인데요.
누가 들어도 경도돼 있는 발언입니다. 박지만 씨에게 왕창 쏠려있는 발언이죠. 근데 바로 이 발언에서 아주 희한한 점이 발견됩니다. 공직기강비서관실, 나아가 민정수석실이 해야 하는 주된 업무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친인척 관리입니다. 대통령 친인척이 호가호위하면서 권력을 팔거나 사유화하는지를 감시해야 하는 것이죠. 헌데 박 경정은 오히려 박지만 씨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박 경정의 발언에다가 박지만 씨가 조응천 비서관에게 미행 건을 알리자마자 바로 감찰에 들어갔다는 사실까지 추가하면 확연해집니다. 조응천 비서관과 박 경정은 ‘박지만 라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관련해서 조응천 비서관이 과거 박지만 씨 마약 투약 혐의를 수사할 때 알게 된 후 친분을 쌓아온 ‘박지만의 사람’이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이 ‘박지만 라인’이 ‘정윤회 라인’의 뒷조사를 한 것이죠. 이건 누가 봐도 권력암투입니다.
정윤회 감찰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사실이라고 전제할 경우 핵심문제는 국정농단입니다. 헌데 국정농단 세력이 단지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으로 국한되는 걸까요? 박지만 씨는 정윤회 라인에 의해 감시받고 사찰 받은 피해자일 뿐일까요?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시사저널’ 보도를 토대로 살펴보죠. 박지만 씨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항의했다는 대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화나고 억울해서 항의한 것쯤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항의대상이 정윤회가 아니가 김기춘인지가 의아하지만 아무튼 당사자의 항의권 발동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지만 씨가 조응천 비서관에게 자신이 미행당한 사실을 알렸고, 조 비서관이 박 경정에게 감찰을 지시했다는 대목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건 분명 공조직의 사유화입니다. 박지만 씨의 말 한 마디에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움직이는 일, 이런 게 바로 공조직의 사유화가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이것 또한 국정문란입니다.
물론 이 같은 추론은 가정입니다. ‘시사저널’ 보도가 사실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크포인트에 포함시킨 이유가 있습니다. 박 경정이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때문입니다. 박 경정은 “민정에 있을 당시 박지만 회장에 대한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고 부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윤회 씨로 취재방향을 잡았다면 잘 잡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 정치적인 발언이죠.
‘세계일보’가 정윤회 감찰보고서 문건을 공개한 후 청와대가 나서서 해명한 바 있습니다. 문건에 담긴 내용을 조응천 비서관이 구두로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바 있다고요. 여기서 아주 상식적인 궁금증이 생깁니다.
조응천 비서관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를 할 정도였다면 문건에 담긴 내용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보고과정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을 것이고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김기춘 비서실장이 화를 내거나 불쾌해해야 합니다. 아무 직책도 갖고 있지 않은 야인이 청와대 비서관들을 불러모아놓고 지시를 내리는 것 자체가 문제일뿐더러 그 지시내용이 자신을 자르기 위한 음모였으니 마땅히 분개해야 할 겁니다.
헌데 김기춘 비서실장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모 경정을 원대복귀시키고, 두 달 후 조응천 비서관마저 사퇴하게 됩니다. 칼을 정윤회 씨에게 겨눈 게 아니라 조응천 비서관-박 경정 라인에 겨눈 것이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청와대 설명대로 문건의 내용이 증권가 찌라시 수준의 소문을 짜깁기한 게 맞다면 이해할 법도 합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내용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자신에게 보고했으니 그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앞서 짚은대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김기춘 교체설 만이 아니라 박지만 미행 건을 비롯한 정윤회 행적 전반에 대해 감찰을 벌여 그 결과를 보고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좀 전에 ‘이해할 수 있다’고 한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김기춘 비서실장은 더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한 보강 감찰을 지시하거나 바로 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설령 김기춘 교체설에 대한 감찰 결과만 보고했더라도 보고의 심각성을 감안해 보강 감찰을 지시하는 게 자연스런 수순이었을 겁니다. 헌데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박지만 라인 솎아내기였습니다. 보강 감찰을 지시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점을 중시하면 김기춘 비서실장은 정윤회 씨하고 ‘맞짱’을 뜰 깜냥이 아니라는 잠정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박근혜 정권의 실세 중의 실세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기춘 비서실장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나아가 ‘핫바지’에 불과하다는 추정이 가능해집니다.
어찌 보면 이게 가장 중요한 체크포인트인데요. 이 점부터 짚어보죠. 좀 전에 짚었던 네 번째 체크 포인트, 즉 ‘김기춘은 실세인가’라는 점에서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간 점이 있습니다. 이런 가정인데요.
김기춘 비서실장의 힘이 비록 정윤회 씨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전투력을 증강시킬 여지는 있습니다. 박지만 씨와 정윤회 씨가 암투 수준의 대립을 벌여왔다면 박지만 씨의 힘과 연합해 정윤회 씨를 치는 것입니다. 헌데 김기춘 비서실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지만 라인을 결과적으로 도려내버렸습니다. 왜였을까요?
하나 더 있습니다. 아직은 사실을 확정하기 어렵긴 합니다만 단서가 되니까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박지만 씨는 정윤회 씨가 사람을 시켜 자신을 미행케 한 사실을 알고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전화로 항의했다고 하는데 거기서 끝납니다. 자신의 친누나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관련 사실을 얘기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왜였을까요?
질문을 바꿔보죠. 박근혜 대통령은 정윤회 씨의 국정농단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이렇게 보기 힘듭니다. 박 대통령이 백지 상태였다면 김기춘 비서실장이 정윤회 씨의 국정농단 사건을 덮고 박지만 씨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만 화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정윤회 라인의 국정농단을 낱낱이 보고해 단칼에 쳐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박 대통령이 정윤회 씨의 월권과 국정농단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거나 비호하고 있다는 얘기로 연결됩니다. 정윤회 씨의 힘의 원천은 문고리 3인방 정도가 아니라 바로 박 대통령이라는 얘기로도 연결됩니다.
물론 정반대의 가능성도 존재하긴 합니다. 정윤회 씨가 박지만 씨 미행을 지시했다는 의혹도, 정윤회 씨가 문고리 3인방과 함께 국정을 농단했다는 감찰 내용도 모두 허위일 경우입니다. 그 모두가 청와대 말 그대로 찌라시 수준의 소문에 불과해 박 대통령이 나서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을 경우입니다. 이 경우라면 제기되는 의혹 속에 박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정말 이런 걸까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문제의 핵심, 규명의 최종 종착점은 바로 이것이란 점만은 분명합니다.
출처: 시사통
이번 정윤회 파동에서 짚어봐야 할 핵심 포인트를 김종배 씨가 가장 잘 정리해 놓은 거 같아서 퍼 왔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의 퍼즐을 맞춰 보면 찌라시를 정리한 거에 불과하다는 청와대의 변명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궁색한 변명인 거 같네요. 그렇다고 감찰 보고서의 내용 그대로 신뢰하기에는 박지만 라인으로 추정되는 박 경정이 정윤회에 대한 감찰 과정에서 중립성을 지켰는지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구요.(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좀더 많은 퍼즐 조각이 필요한 듯 하네요...)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박 대통령은 이 모든 의혹에 대해 알고도 묵인한 걸까요 전혀 몰랐던 걸까요? 어느 쪽이든 3년차에 조기 레임덕이라는 비극적인 사태를 맞지 않으려면 박 대통령이 이 문제를 철저하게 규명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공식 직함도 없이 일개 야인에 불과한 정윤회 씨가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한다는 의혹을 대충 덮은 채 국정운영에 추진력을 얻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전 대통령들의 측근 비리로 인한 비극으로부터 교훈을 얻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