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런 칼럼) - 버락 오바마의 신년연설, 위태한 배수진
영화 매트릭스2에서 네오는 복제하고 불어나는 스미스 요원과 맞닥뜨린다. 아무리 쓰러뜨려도 그 존재들은 'more'를 외치며 더 불어나 네오를 공격한다. 현재 오바마의 상태가 딱 그 장면의 네오 같다. 현재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백악관과 논의없이 이스라엘 총리까지 초대하는 초강수를 두며 의회는 각을 세웠고, 이런 의회의 움직임에 오바마도 이번 신년연설에서 완전히 전 포문을 개방하고 발사해 버렸다.
부자증세, 중산층 회복, 보육비 세금 공제, 최저임금 상향 등등 부자들의 따까리 공화당의 혈압을 자극할만한 오바마의 신년연설 성격은, 한 마디로 압축된다. 프레임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프레임으로 선거에서 이긴 자의 당연하고도 멋드러진 공격이다.
회자되고 있는 연설 한구절이 마침 동영상으로 올라와 있다.
그렇다. 프레임은 이렇게 간결하고도 충격적이며 핵심을 찌르고 이슈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알리기 위해 수치와 그래프, 통계들을 들먹이며 시급한 문제임을 '프레젠테이션' 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미생에서 장그래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장그래조차도 간혹 프레임을 짠다. 비리로 얼룩진 사업을 다시 하기 위해 오과장이 명분을 물어볼 때, 비리자가 우리의 인프라를 비웃었던 것 같아서, 라고 일해야 할 명분을 세우는 부분.
대통령이 중산층을 살리겠다고, 부자증세를 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이게 안되면 분명히 누군가가 방해한다는 것이고, 방해한 자들에게는 여론의 뭇매가 기다린다. 한 마디로, 자신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하려 한다, 라는 것이 오바마 신년 연설의 기조처럼 보인다. 2년의 임기, 레임덕까지 계산해 그리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비하면, 꽤 무리한 승부수처럼 보인다. 공화당은 신년연설에서조차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고, 오바마에 대한 정치공세 예고로 맞불을 놓았다.
그런데 무리한 승부수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이건 진짜 무리한 승부수가 '맞다'.
미국의 중산층이 무너진 내부를 뜯어본다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의 내부에서 중산층이 무너진 요인의 가장 큰 몸통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서적에서는 그것이 무리한 포퓰리즘적 복지라고도 말한다. 그것 때문에 주 정부와 중앙 정부의 세원이 고갈되었다고 본다. 비상식적 민영화도, 공적 의료보험의 좌초도 그 원인은 원인이다.
그러나 그 원인을 자아내기 위해 뒤에서 정치로비를 한 놈들의 진짜 몸통은 바로 금융의 모피아들이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위에서 온 사방에 로비하고 있는 인간들이다. 그런 놈들의 손발을 묶는 시스템이 되지 않고서, 미국의 미래는 기대하기 힘들다. 여기에는 전세계적인 흐름의 추세가 이미 저성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라는 것도 한 몫 한다. 미국은 이미 제조업으로 거대 이익을 창출해내는 힘을 오래 전에 잃었다. 즉, 미국의 현재 상태는 오래전부터 이미 내부정비와 개선의 시점이다. 밖으로 뻗어나가야 하는 것에 힘을 실을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오바마여야 하고, 오바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바마조차도, 금융권의 세력과 연계가 되어 있다는 의견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 때 돈이 없어진 공화당의 틈새를 오바마에 접근한 금융권 세력이 재원을 보조해 미디어에 돈을 주고 오바마의 의견을 도배질 했다는 식의 논리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몸통이 무엇인지 너무나 눈에 띄게 보인다. 그 몸통에 대한 중앙정부적 차원의 접근, 그리고 주 정부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고작 2년 남은 임기다. 이런 상황에서 프레임의 선점, 그것이 정말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로 이어질까? 오바마가 말한 것들은 물론 시급하고, 되면 좋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일반 미국시민들의 반응은 뜨악함도 섞여있다. 그게 진짜 문제가 아닐텐데, 하는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오바마의 연설은 나름 이런 역풍을 맞을 수가 있다. 가장 최악으로 해석하면,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사이에 일은 더 이뤄질 수 없으니, 몽상 얘기나 왕창왕창해서 국민들의 인기를 얻어놓고 그 일이 되어도 그만 안되어도 그만 하는 식으로 물러날 심산이라고. 그리고 실제로 일이 돌아가는 추이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커보인다.
의회와 완전히 각을 세운 오바마의 이 전략은 자신이 말한 것 중 단 하나라도 현실화되면 다행인 상황이다. 모두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아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론을 먼저 선점하려 움직인 것일까.
문제는, 그렇게 자신이 말한 것 중 어떤 것들이 현실화되어도 금융권의 유착, 로비와 법개정의 간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는 그다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서민들의 분노와 탈력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 있다. 더 나쁜 경우는, 오히려 그들이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크레딧 카드를 만들어주게 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더불어, 한국의 사정도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는 인구문제와 겹쳐서 더 심한 위기상태면 위기상태이지 결코 나은 상황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내부의 정비, 즉 쓸 곳은 계획을 제대로 세워서 쓰고 안쓸 곳은 철저히 잘라내고 줄여야 하는 행정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이미 오래전부터이다. 세원의 확장이나 연기금 자꾸 빼쓰려고 침흘리는 따위가 답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