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스보다가 트루먼 대통령이 왜 한반도에 핵을 쏘지 않았는가?
를 보다가 문득 이승만과 핵에 대한 일화기 있어 소개를 합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3311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에게 미국의 핵 위협이 정치선전전의 도구였다면, 이승만에게 핵폭탄은 '통일의 무기'로 간주됐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육군참모총장으로 기용된 정일권의 회고록에는 이승만의 핵무기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잘 드러나 있다. 눈앞에 다가온 북진통일이 중국군의 개입으로 물거품이 되고 유엔군이 패퇴를 거듭하던 1950년 초겨울, 이승만은 트루먼의 발표에 크게 고무됐다. 트루먼이 11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원폭 투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나서자, "이 빅뉴스를 이승만 대통령은 비장한 각오로 환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승만의 기대와는 달리 트루먼이 원폭 투하 결심을 내리지 않자, 이승만은 "왜 원자폭탄을 쓰지 않는가!"라며 "워싱턴을 향해 질타하곤 했다." 이승만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원폭 투하를 단언했던 맥아더는 정일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도 잘 알다시피 원폭을 그토록 바라고 있는 이 대통령께 말할 수 없이 미안하오. 만날 때마다 원폭도 불사한다고 했던 약속이 이처럼 허사가 될 줄은 몰랐다고, 노인에게 말씀 전해 주시오."
그때 당시 이승만은 대구로 도망을 침.
한때 이승만은 일본 야마구치 현에 망명정부를 설치하는 방안도 세우고 있었다.[137] 정권 관리들은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야마구치현에 망명정부 수립의사를 일본에 전달했으며, 일본 정부는 야마구치현 지사 다나카에게 6만여명을 수용할 시설 및 식량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다나카 지사는 현의 소학교를 망명정부 시설로 확보하는 방안과 일본 정부에 특별 식량배급요청 여부를 검토하기도 했다.[137] 1950년 6월27일 이승만은 대통령과 내각으로 구성된 망명정부를 일본에 수립하는 방안을 주한미대사에게 문의해왔고 이는 그대로 미 국무성에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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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좋아했던 것은 우리나라 대통령이나 북괴 수장이나 똑같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