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드 사태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이 있다. 그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당히 중간쯤에 자리하겠다는 '균형 외교'와 같은 소극적 발상으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끌면 이쪽으로, 저쪽에서 끌면 저쪽으로 끌려다니기 십상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우리가 단단히 중심을 잡고 판단한 국익에 따라, 현안에 대응하는 주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외교 전략의 새 틀을 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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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외교 전략은 북한의 안보 위협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갖고 있는 이 같은 지정학적 특수성을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만 분단 극복의 길도 열릴 것이다. 병의 원인은 방치하고 증상 치료의 대증요법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의 대통령은 미·중의 지도자들에게 분명한 선을 그어줘야 한다. 중국에는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말 것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요청해야 한다. 북한의 안보 위협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에도 한·미 동맹의 타깃은 중국이 아니라 북한이니, 한국을 대중(對中) 포위전선에 끌어들이려 하지 말라고 요청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중국과 미국 양쪽에 분명한 선을 그어주고 그 원칙에 따라 그때그때 현안에 대처해나간다면 일관성 있는 흔들리지 않는 외교가 될 것이다. 우리의 자율적 외교 공간도 넓어질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그런 전략으로 나가면서 한반도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해서라도 남북한 주민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통합을 향한 구심력을 강화해나가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모임 자리에서 전직 외교관이 "미국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사실 그것이 한국 외교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10여년 전 외교부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숭미론자'라고, 또 '자주 외교'의 철학을 공유하지 못했다고 비판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에서 한·미 동맹이 훼손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우리 국익을 위해 중요하다고 판단했었다. 지금도 북한의 안보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의 기본 축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 기사 중 일부 -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씨의 칼럼인데, 종교적 반미주의자들인 NL 운동권 출신들이 그 어떤 정권 때보다 설쳐대던 시절에 이런 분이 외교부 수장이였던 게 그나마 다행이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 정도의 합리적 스탠스가 끊임없이 숭미주의자란 비판을 받았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어처구니가 없음.
저번에도 한 얘기지만 외교/통일 분야에서라도 DJ 정부의 방향성이 일관되게 유지됐으면 참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