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라고 편견 가질 분도 있겠지만 내용자체는 인터뷰라 그닥 이상한점은 없습니다.
이재명이 누구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봐도 괜찮을듯 합니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435100001&ctcd=C0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3&aid=0000022630
지지율 급상승… 이재명 성남시장이 뜨는 이유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을 뿐이다” 지지율이 치솟고 있는 이재명(52) 성남시장이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치고 차기주자 선호도 2위에 올랐다.
지난 11월 30일 리서치뷰의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시장은 17.2%를 기록해 반 총장(15.2%)을 3위로 밀어냈다.
1위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23.8%를 기록했다.
지난 8월 말만 해도 3%대에 머물던 이 시장 지지율은 10월 마(魔)의 5%를 돌파하더니 11월에는 두 자릿수 진입에 성공하면서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을 제치며 3위로 올라섰고, 드디어 반기문 총장까지 따라잡은 것이다.
‘무서운 질주’라는 표현이 들어맞는 상승세다.
지난 11월 30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이 시장을 만났다.
직접 만난 이 시장은 최근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서 보여준 분노에 찬 대중연설가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평소 소신대로 거침없이 답을 이어갔지만 쾌활하고 유연했다.
숫자에도 밝았고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는 현실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그 역시 “나를 이념의 잣대로 규정하지 말아 달라. 나는 좌파 정책도 우파 정책도 다 갖다 쓸 수 있는 실용주의자”라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무엇보다 달변이어서 TV토론에서 맞붙으면 상대방이 꽤 고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시장은 2010년 성남시장에 처음 당선됐고 2014년 재선에도 성공해 2기 시장직을 수행 중이다.
- 최근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라고 본다.
종전에는 정치인들이 이합집산하면서 답안지를 주면 대중은 골라야 했다.
정치가 주고, 대중은 종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요즘은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집단지성이 발휘되면서 대중이 정치권과 대등한 존재가 됐다.
나는 대중 속에서 대중을 서포트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하고 대중의 언어로 대중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것이 이번 기회에 평가받게 된 것이라고 본다.”
- 이 시장의 지지율 상승이 최순실 국정농단 정국에서 대통령을 향한 강성 발언 선점 효과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이번 게이트가 대한민국 정치판을 통째로 흔들면서 국민들이 더 빨리 나를 캐치하게 됐다고 본다.
이번에 나는 정치인 중 제일 먼저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동시에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초 정치권은 ‘튄다’ ‘오버한다’고 비난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나.
나는 정치인들과의 토론이나 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네트워크 속에서 대중의 의사를 빨리 읽는다.
” - 나쁘게 얘기하면 대중 추수주의, 포퓰리스트로 비친다.
“대중이 자기 이익을 따라 움직일 때 정말 잘못 가고 있음에도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에 대응할 때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판단은 틀리지 않는다.
대중 추수주의를 나쁘게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정치의 본질,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치와 대중이 괴리되어서 대중으로부터 불신과 실망을 사는 게 문제다.” - 최근 이 시장 지지자들의 댓글을 보다가 ‘문재인도 좋지만 시대정신은 이재명’이라는 구절을 봤다.
지지자들의 이런 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나는 지금 시대정신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정성을 담보하는 데 있다고 본다. 저개발 단계에서 국가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해 성장할 때는 불평등을 피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를 들면 재벌 대기업들의 부당한 지배구조,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착취나 단가 후려치기 같은 문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노동소득 분배율도 과거 80%에서 지금은 62%까지 떨어졌다.
총량 성장은 할지 몰라도 노동자들이 받는 몫의 비율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불평등 때문에 국가가 활력을 잃었다.”
- 누구는 이 시장을 ‘한국의 트럼프’라고, 누구는 ‘한국의 버니 샌더스’라고 부른다.
“두 사람 다 나처럼 변방 출신으로 정치 기득권자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 대중과 호흡하는 사람들인데, 성공한 아웃사이더인 트럼프가 결국 미국의 국가권력을 차지했다.
물론 두 사람의 지향은 다르다. 트럼프는 경제에서는 성공한 기득권자지만, 샌더스는 사회적 약자와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추구해온 사람이다. 굳이 말하면 나는 ‘성공한 샌더스’가 되고 싶다.”
- 대통령 3차 대국민 담화를 어떻게 봤나.
“발표 후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니 ‘사기다’ ‘싸움시키려 한다’ ‘잘못을 인정 안 한다’ 등 반발이 대단했다.
나보다 훨씬 잘 꿰뚫어보고 있었다.
나는 대중의 집단지성이 어떤 정치 집단보다도, 똑똑한 개별 정치인보다도 낫다고 믿는다.
조건을 여야가 결정해 달라고 할 게 아니라 대통령이 먼저 언제까지 그만두겠다고 했어야 진정성을 인정받았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 담화는 반성이 없고, 합의 불가능한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제3의 국민 기만책이다.
그래서 괘씸죄, 국민 우롱죄가 추가될 것이다.
탄핵과 국정조사와 특검을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 다행히 질서 있는 퇴진을 하게 되더라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는 해야 한다고 보나.
“누가 사람을 막 때리고 난 다음에 더 안 때릴 테니까 이제까지 때린 거 봐달라고 하면 되나.
그러면 다음에 또 때리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패악질을 많이 저지른 부당한 기득권층이 이런 방식으로 대충 넘어간 게 대한민국 역사다.
이제는 적폐를 청소하고 정리할 때가 왔다고 본다.
이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정신과도 맞는다.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공화국을 완성하려면 그런 단계를 거쳐야 한다.”
- 과거에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는데 지금은 왜 개헌에 부정적인가.
“나는 평소 4년 중임제 대통령제와 지방분권을 강화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적폐를 청소하자고 불을 끄는 중인데 불을 끄다 말고 곳간을 누가 차지할 것이냐고 논의하는 것 자체가 국민을 또 한 번 배신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 몸통이 새누리당인데 자기들은 관계없는 것처럼 세탁을 한 다음 다시 기득권을 차지하려는 작전의 깃발이 개헌이라고 본다.
대선에 나설 후보들이 개헌에 대한 내용과 일정을 제시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좋다고 본다.”
- 이 시장이 현행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된다면 자신의 임기를 줄여가면서 개헌을 할 용의가 있나.
“물론이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 조기 대선이 불가피해 보이는데, 당내 기반이 거의 없는 이 시장이 문재인 전 대표와 경선에서 맞붙어 승산이 있겠나.
“우리 당은 당직은 당원이, 공직후보는 국민이 결정하자는 국민경선 관행이 있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현장에 와서 투표하느냐로 후보가 결정될 텐데 그럴 경우 자신이 있다.”
이 시장은 “현재 SNS상 팔로어 숫자가 80만~90만명 정도로 정치인 중에서 세 번째 규모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 다른 야권 주자들과 비교해 정책적으로 차별화된 면이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대중을 기만하거나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아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까 말했듯이 이 시대 화두는 불평등 해소이기 때문에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거기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경제 담론에서도 성장은 이제 함께 잘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기회의 균등, 경쟁의 공정성, 합당한 배분, 이 3가지가 잘 이루어지면 성장도 잘될 것이라
본다.”
- 기성 정치인들이 쓰는 언어를 기만의 언어로 규정했는데.
“나는 적극 검토, 긍정 검토, 장기적 검토, 함께 갑시다, 뭐 이런 말들 진짜 싫어한다.
대중은 그런 말을 들으면 ‘가능하다’고 받아들이지만 결국 안 된다는 뜻 아닌가. 일종의 정치적 기만 행위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안 되면 안 된다고 얘기한다.
품격을 따지는 기성 정치인들이 들으면 생경한 언어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금 삐끗하면 내가 막말을
했다고 비판한다. 주인인 대중이 막말이라고 하면 받아들이겠지만, 머슴인 정치인들이 주인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면서 나보고는 막말한다고 하면
웃긴다.”
- 과거 인터뷰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이 보수’라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규정한 걸 봤다. 이 시장이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점은 뭔가. “과학적으로 현재의 바람직한 가치를 지키려는 게 보수이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자는 게 진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 많이 비정상이다. 사회악을 척결하고 불공정한 시스템을 고쳐서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 당시 합의했던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자는 걸 진보라고 할 수 있나. 그건 교과서적으로 보수가 맞다. 나는 기회가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지, 결과를 똑같이 나누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당한 기득권자들이 보수라는 이름으로 변장을 하고 있는데 나는 진짜 보수하고 그런 사회악을 분리해야 한다고 본다.
진짜 보수라면 나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부패 구악들이 보면 내가 진보로 보일 테지만.”
-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 시장을
문재인 전 대표보다 더 과격한 좌파로 부르기도 한다. “진보와 보수는 상대적인 것 아닌가. 죽 줄을 세워놓으면 우리 사회 오른쪽에 있는 게 부패
구악들이다. 그걸 다 제거하고 나면 사실은 나 정도가 중도우파가 된다. 유럽을 한번 봐라. 핀란드는 1인당 100만원 주는 것을 확정했고,
스웨덴은 청년 1인당 300만원을 받는 것에 대해 국민투표를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좌파가 아닌 우파다. 비정상인 상태에서 정상을
바라보니까 비정상으로 보일 뿐이다. 나 같은 사람들을 중도우파로 분류하는 사회가 된다면 비로소 정상적인 사회다.”
- 유권자에게
걷은 세금을 아껴서 돌려주는 게 선출직 공직자의 의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는데,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금 성남시에서 실시하는 무상복지 정책을 펼
작정인가. “나는 무상복지도 보수의 가치라고 본다. 우리 헌법 34조 2항을 보면 국민의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국가안보와 질서유지 등 세금을 꼭 필요한 곳에 아껴 쓰고, 나머지 돈으로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게 국가의 의무다. 이것은 많을수록 좋다. 이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면 안 된다. 성남시의 경우 증세를 한 것도 빚을 낸 것도 아닌데 엄청난 부채를 다 갚아가면서 복지를 늘려왔다. 쓸데없이 땅
파고, 건물 짓고, 부정부패하지 않으면 가능하다. 성남시는 잘 알려진 청년배당, 무상교복 말고도 노인 복지, 국가유공자 복지, 보육 복지 등
여러 복지 정책들을 시행 중인데 이걸 다 합해봤자 시민 한 사람에게 10만원 정도 더 쓴 셈이다. 성남시 전체로는 900억원 정도 된다. 만약
이 수치를 나라 전체에 대입하면 5조원 정도 더 쓰자는 말인데, 이건 국가 전체 예산의 1%에 불과하다. 정성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이지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다.”
이 시장과 성남시는 2010년 이 시장 취임 당시 공식 비공식 부채가 7285억원에 이른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모라토리움(지불유예)을 선언한 후 3년6개월간 살림을 아껴 현금으로 4572억원의 부채를 청산했다고 한다. 이 시장은
“전임자에 비해 토목공사 등에서 매년 예산 7%를 아껴 빚을 갚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당초 주장한 7200여억원의 부채 중
5400억원이 아직 정산되지 않은 판교특별회계 예산이어서 빚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반박도 있다.
- 성남시의 복지 예산 비율이
다른 지자체에 비해서 높은가. “전체 예산 1조6000억원 중 7~8% 정도 쓰는데,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시민들이 원하는 복지를 설계해서 집행하지만 다른 지자체들은 정부 보조금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부 간섭을 따르다 보니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복지 정책을 펴지 못한다. 우리는 죽어라 아껴서 정부 보조금도, 통제도 받지 않고 우리 색깔의 복지 정책을 펴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비교하면 우리가 방만하게 쓰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최대 30%까지 살림을 아낀다. 정부는 관급 공사비도 지금보다 7~8% 높게 책정하라고 하지만
그것도 거부하고 있다. 시민들이 원하는 복지를 하다 보니 만족도가 높고 내 인기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걸 못 하는 다른 지자체들이 포퓰리스트라고
비판한다.”
그는 “작년 조사에서 시정만족도가 79.9%로 나왔는데 이른바 강남벨트라는 분당만 떼어 보면 87%로 더 높게
나왔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보수층들도 2기부터는 나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재선 때도 분당에서 8% 넘게 새누리당 후보를
이겼다. 나는 중도층 확장에도 자신이 있다. 중도는 마음에 드는 데가 없어 표를 던지지 않는 똑똑한 사람들이다. 흔히 보수는 유능하지만 부패하고
진보는 무능하지만 깨끗하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데, 진보로 비치는 나 같은 사람이 시정을 통해 유능하고 깨끗하다는 걸 보여주면 표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 과거 서울시 무상급식 논란에서 보듯 결국 무상복지가 재정건전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는데. “성남시는
4년째 재정건전성 1위다. 행자부가 우리를 맨날 괴롭혀도 객관적 수치가 그렇게 나온다.”
- 대북 정책의 경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승계하자는 입장인데 당시와 비교해 북한 핵이 현실적 위협이 됐는데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그걸 제거하는 방법을 굳이 두 개로
나눈다면 제재와 압박, 교류와 협력일 텐데 어떤 게 절대적으로 좋은 정책이고 나쁜 정책일 수 없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구사되어야
한다. 중요한 점은 국가 안보에는 감정이나 정파 이익이 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 이익이란 측면에서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실패했다고 보나. “북한과의 교류를 다 끊고 제재 압박을 한 결과 과거 몇 년에 한 번 하던
핵실험을 1년에 두 번 하게 되지 않았나. 지금으로서는 북한이 핵을 더 이상 진척시키지 않도록 동결시키는 정책을 취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재 압박을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저쪽이 득을 덜 보고 우리가 더 득을 보는 쪽으로 상호 윈윈하면
된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는 협상이 안 된다.”
- 햇볕정책을 절대시하는 ‘햇볕 지상주의자’로는 보이질 않는다. “나는
철저하게 야전에서 살아왔다. 어느 편 이런 것 없다. 무슨 주의자로 나를 규정하려 하지 말아 달라. 나는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파, 좌파
정책 다 갖다 쓸 수 있는 실용주의자다. 사실 나보고 햇볕정책 계승자라고 부르는 것도 100% 옳다고 할 수 없다. 북한의 핵 개발이 거의
성숙단계에 왔는데 새로운 강온전략을 유연하게 써야 한다.”
- ‘송민순 회고록’에서 밝힌 유엔 대북인권 결의안 기권 과정 때문에
문재인 전 대표가 종북(從北) 논란에 휩싸였다. 이 논란을 어떻게 보나.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 다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일단 문 전
대표를 종북으로 유치하게 몰아 공격하는 건 구태다. 하지만 방어하는 쪽도 문제가 있다. 사실 그때는 정상회담을 하고 남북 총리가 서울에서 회담을
하는 등 남북 교류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아닌가. 나 같으면 그런 시대인데 상대방한테 말도 안 하고 찬성해서 뒤통수를 쳐야 했느냐고 당당하게
반박했을 것 같다. 그런데 기억 안 난다, 국가 기밀 사항이다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자꾸 의심하는 것 아니냐. 종북몰이 측에 좋은 기회를 준
것이다.”
- 종북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없나. “나는 종북몰이를 허깨비라고 본다. 허깨비를 무서워하면 더 큰 허깨비가 나온다.
그냥 딱 뒤돌아보고 ‘너 뭐냐’ 웃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항상 당당하게 얘기하고 정면 돌파한다. 난 북한을 싫어하는
민주주의자라고.”
- 다른 주자들처럼 이렇다 할 싱크탱크가 없는데 이유가 있나. “아주 없는 건 아니고 소규모로 분산돼 있다.
하지만 그걸 다 모아 기자회견할 만큼 대규모는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도 기만행위라고 본다. 사실 우리 사회에 정책이 없어서 못 했나.
정책은 차고 넘친다. 미세한 조정을 하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집행할 용기와 결단이 문제다.”
- 소규모로 분산돼 있더라도
도와주는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있지 않나. “한 20여명 된다. 교류를 오래전부터 해왔다. 지금 하는 이야기도 즉흥적인 내 얘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진 것들이다. 결국 내실이 문제이고, 싱크(think)가
아니라 액트(act)가
문제이다. ‘액트탱크’가 필요한 것이다.”
-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있었나. “날짜도 기억하는데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였다. 당시 수배를 피해 숨어 있던 교회 지하방에서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선거에 15% 득표만 하면 선거비용을 돌려준다고 관련법이 바뀌어서 해볼 용기를
냈다.”
- 그때 왜 숨어다녔나. “성남시에서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을 할 때인데 시립의료원 설립 운동을 세게 했다. 당시 인구
55만명인 본시가지 쪽에 있던 대형병원 두 군데가 장사가 안 된다면서 문을 닫았다.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적자가
난다고 새 병원은 안 들어오고. 그래서 시립의료원 설립 운동을 벌여 10만명 서명을 받아 법안까지 시의회에 냈다. 그런데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47초 만에 날치기 부결처리했다. 의사당 들어가 의원들 멱살 잡고 명패 걷어차고 점거하고 울고 그랬다. 그러다 공무집행방해로 수배돼 구속될
처지에 몰렸었다. 교회 지하방에서 6개월간 숨어지내다가 시민운동만으로는 새로운 걸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깨달았다. 그때
다행히 구속은 안 되고 500만원 벌금형만 선고받았다.”
이 시장은 “당시 나를 정치로 내몰았던 시립의료원은 내년에 드디어 완공이
된다”며 “그걸 짓자는 법안이 시의회에서 부결된 날, 그것 때문에 수배돼 지하방에서 정치하기로 결심한 날, 그리고 2013년 내가 시장이 돼
그걸 착공한 날 다 울었다. 세 번씩 울린 의미 있는 존재가 시립의료원”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시장이 되기 전부터 성남시에서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시민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도 했고 협박도 여러 차례 당했다. 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2년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된 분당 정자동 파크뷰 특혜분양 의혹을 파헤치다가 공무원 사칭방조죄로 구속당하기도 했다. 당시 사무실에 찾아온 KBS PD가
검사를 사칭하면서 당시 김병량 시장과 통화한 것이 빌미가 됐다. 이 시장은 “당시 통화 내용이 ‘추적 60분’에 보도되면서 이재명이 PD에게
검사 이름과 질문사항을 알려주고 검사 사칭 전화를 도왔다는 혐의를 뒤집어썼다”고 했다. 이 시장은 “내가 그 일 때문에 평생 처음 구속됐고
그동안 선거법 위반 등으로 벌금형은 4번 선고받았다”며 “다른 건 몰라도 2004년 음주운전으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것은 명백한 내
잘못”이라고 했다.
파크뷰 사건 당시 그는 가족들의 신변도 위협받았다고 한다. “문제를 일으킨 쪽에서 처음에는 지역신문을 차릴
20억원을 주겠다며 의혹 파헤치는 걸 그만두라고 회유했다. 그걸 거부하니까 ‘부모를 버린 패륜아’ ‘재판만 하면 지는 사람’ 등 나를 음해하는
‘지라시’를 20만장이나 찍어 성남시에 쫙 뿌렸다. 그래도 안 되니까 이번에는 밤마다 집에 전화해 초등학생이던 우리 아이들 학교를 안다며 협박을
해왔다. 그때 아이들 지키려고 총기면허소지증을 발급받아 6연발 가스총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는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를 계속 지원해준 시민들을 믿기 시작했고 용기를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면서 “2010년 시장 선거에 처음 도전했을 때도 경선
당시 지역 호남향우회 등 대부분의 민주당 조직이 나를 반대했지만 시민의 힘으로 뚫고 나갔다”고 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얘기지만 이 시장은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으로 입지전적 인생 스토리를 써왔다. 그의 고향은 경북 안동 봉화 영양군의 꼭짓점 경계인 청량산
아래 안동군 도촌리 지통마을이다. 지금도 버스가 하루 한 대만 다니는 두메산골이다. 그는 이곳의 삼계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과 함께 성남으로
이사왔다. 화전을 일구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자 도시로 이주한 것이다. 7남매 중 다섯째인 그는 가족이 성남시 상대원 공단의 달동네에 자리 잡은
후부터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생계 전선에 내몰렸다. 또래들이 중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을 때 작업복을 입고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 젊었을 때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들었다. 언제가 가장 힘든 때였나. “목걸이 공장에서 납땜을 하다 야구 글러브
공장으로 옮겼는데 프레스에 왼팔이 끼었다. 산재로 인해 장애가 생겼는데 보상도 받지 못했다. 그때 중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통과했지만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두 번 자살을 시도했다. 한 번은 연탄불이 문제가 생겨 실패했고 두 번째는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자형한테
발각이 됐다.”
이 시장은 이 말을 하면서 왼팔을 보여줬다. 팔꿈치 약간 아랫부분이 양복 위로 불룩하게 솟았고 팔이 확연히 뒤틀려
있었다. 그는 “성장판 손상이 와서 팔이 점점 뒤틀려 버렸다. 지금도 팔을 잘 못 굽히고 힘을 못 쓴다. 비가 오면 저리다”고
했다.
- 어떻게 대학은 가게 됐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학 본고사를 없애고 학력고사를 도입했다. 또 대학들이
성적우수자에게 학비 면제뿐 아니라 돈도 준다고 했다. 그래서 1년 정도 독학으로 학력고사 준비를 했다. 그때가 병목 통과였는지 제일 어려운
공부였다. 공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졸음을 막기 위해 책상에 압정을 놓고 공부를 했는데도 압정 위에서 잠들곤 했다. 결국 꽤 괜찮은 성적을
받았는데 장학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중앙대 법대에 들어갔다. 82학번이다.”
- 386이긴 한데 운동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시위에 나가 돌은 던졌지만 행동대장 정도였지 언더서클 활동은 안 했다. 같이 하자고 1년 동안 설득한 친구가 있었는데 깊이 안 들어갔다. 가는
길이 제적, 구속, 위장취업 등으로 빤히 보이는데 그렇게 소진되기가 아까웠다. 어느 정도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한 후 좀 더 크게 기여하자고
생각했다. 대신 나중에 같이 하자고 친구들한테 말했다. 나를 설득했던 그 친구는 내가 변호사 사무실을 열 때부터 합류해 지금도 같이
일한다.”
그는 2학년 때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해 3학년 때 1차 합격했지만 4학년 때 최종 떨어지고 졸업하던 해 1·2차 동시에
합격했다. 그는 대학 시절 학교에서 매달 받는 20만원은 집에 생활비로 부치고 교련복 한 벌, 고무신 한 켤레, 코트 하나로 1년을 버텼다면서
“내성적 성격을 고치고 얼굴을 두껍게 하려고 그러고 다녔다”며 웃었다.
- 왜 판검사가 안 되고 변호사가 됐나. “사법시험
합격하고 보니 나만 탈출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 형제 자매들, 성남의 이웃들은 내가 겪었던 그 부당한 곳에 그대로 있는데. 공장 다닐 때만
해도 광주항쟁을 폭도라고 욕했는데 대학 다니면서 뒤늦게 그게 민주화운동인 줄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내 자신을 욕하게 됐고 빚진 감정이 생겨
공익적 삶을 살기로 맘을 먹었다.”
그는 “사법연수원과 사시 성적을 합하면 동기 300명 중 110등 정도로 충분히 판검사를 지원할
수 있었다. 연수원 시절 안동지청에서 시보를 하는데 이동근 당시 지청장도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검사직을 권유했었다. 하지만 1986년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임관받고 싶지 않았고 내 삶의 방향은 정해졌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 변호사는 성남에서만 했나. “인권변호사를
성남에서 죽 했는데 돈벌이도 못했다. 생맥주집 외상값 20만원이 없어 도망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술집 주인들이 지금도 가끔 연락한다.
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도 모임을 만들어 계속 만나고 있다.”
- 반대자들과 멱살잡이랑 소송전도 벌이는 등 별명이
‘싸움닭’이다. 또 인터넷에 이른바 ‘형수 쌍욕’이라며 형, 형수와 싸우는 통화 녹음 파일도 돌아다닌다. 그걸 들어 보면 이 시장이 감정조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내가 7남매인데 다들 소시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유독 세 번째 형이 나랑 갈등을 빚고 있다.
그 형도 나처럼 뒤늦게 공부해 공인회계사까지 된 분인데 욕심이 지나쳐서인지 시장이 된 후 나를 이용해 이권개입이나 청탁을 하려 했다. 내가 그건
절대로 용인하지 못해서 공무원들에게 형 전화도 받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렸다. 그랬더니 어머니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법원이
어머니 집 100m 안에는 접근하지 말라는 금지명령까지 내렸겠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통화 녹음은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전화로 싸우던 내용 중
일부다. 아마 형수가 녹음한 것 같다. 형도 문제지만, 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도 문제다. 형은 박사모, 일베 활동을 하고 지금도 나를
종북이라며 비판하고 다닌다.”
그는 ‘싸움닭’이라는 이미지와 관련해서는 “정치의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회악들이 분명 있다고
본다. 사익을 목표로 나라를 망치는 사람들은 타협이 아니라 제거 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정치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변화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시민운동을 하고, 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시장이 된 것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대권 도전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바꿀 수 있는, 더 나은 수단이라는 판단 때문에 도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