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을 잘못봤다]
유시민이 문재인을 잘못봤다고 썰전에서 고백하던데, 나도 그랬다고 고백해야겠다.
내가 본 문재인은 소극적이고 낯 가리고 권력의지 없고 법을 넘어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거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그는 훌륭한 인격자였고 교양과 지성을 갖춘 신사였지만, 정무적 감각 제로인 정치인 아닌 사람.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나무 위에서 흔들리다 떨어질 것 같은 사람.
불안했다. 유능한 정치인이라도 부족한데 그는 아마추어고 뭐고 정치적 의지가 없었다. 2012년 미친듯이 선거운동한 다음, 환멸이 밀려왔을 때는 심지어 그를 미워한 적도 있다.
4년 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나타났다. 절치부심이란 게 뭔지를 보여준다. 자기 성격답게 보여준다. 과거에 사로잡힌 건 바로 나였음을 반성시켜준다. 후보일 땐 그는 자신을 내세워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자 그는 자신을 내려놓는다. 비로소 진짜의 그가 보인다.
딱 한 가지 내가 바로본 건 있다. 그는 비서실장이다.
다만 지금 그가 모시는 상사는 노무현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그 자체다. 그는 영원한 비서실장이다. 토론하고 지시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노무현대신에, 말하지 않지만 뜻하고 있는 국민의 마음을 그는 읽는다. 흡사 안테나처럼, 흡사 시인처럼.
천주교 수도자들이 늘 마음에 품고 사는 말 중에 순명이라는 게 있다. 문재인은 손가락에 늘 끼고 있는 묵주반지를 돌리며 '순명' 두 글자를 심장에 새겼는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겸손은 겸손하고자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서 나는 그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디모데오임이 기쁘다.
그가 김소형씨를 안아줄 때, 나는 여러겹으로 울었다. 고마워서 울고 문재인의 마음이 느껴져서 울고, 그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물에 동참해서 울고. 마지막으로 노무현이 저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질투가 나서 울었다.
노무현이 얼마나 고상하고 품위있으며 지성적인 대통령이었는지를 사람들은 모른다. 그게 속상하고 질투가 나서 울었다. 그러면서 문재인도 같은 마음이 들 거라는 확신에 위로받는다.
왠지 자유를 얻은 느낌이다. [노무현입니다]를 보면서, 시사회에서는 충분히 울지 못했던 긴장을 이젠 내려놓고 충분히 애도하고 싶다.
노혜경 페이스북 발췌.
(시인. 1958 / 부산대학교 / 노사모대표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