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북한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북한이 최근 '대화 모드'로 돌아선 배경이 국제사회의 강력해진 대북제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면, 아직 유엔 대북제재의 효과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유엔은 그동안 어떻게 북한 문제를 다뤄왔을까?
유엔하면 떠올리는 파란 헬멧의 '평화유지군'은 분쟁 지역에서 평화유지와 회복을 지원면서 정치적, 군사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든 유엔 기구가 이처럼 중립성을 원칙으로 갖고 문제를 볼까? 유엔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들을 짚어봤다.
Image copyright AFP/Getty Images 이미지 캡션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된다. 안보리는 지난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북한의 외교적ㆍ경제적 재제를 포함한 결의안 1718(2006)호를 채택했다.
이후에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 9번의 결의안을 추가로 채택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의안은 누가 작성할까?
유엔 회원국이라면 누구나 결의안을 발의할 수 있는데, 주로 2~3개의 국가가 초안을 함께 작성한 뒤 다른 회원국이 동의해(유엔은 이를 공동 스폰서라 한다) 상정한다.
중요한 것은 초안을 누가 작성했는가에 따라 결의안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사안을 더 비중 있게 다루기 때문이다.
대북제재 결의안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지난 2017년 9월 안보리는 결의안 2375(2017)호에 북한 해외노동자 문제를 처음으로 다뤘다.
당시 초안은 유럽연합(EU)과 일본이 함께 작성했으며, 내용에는 북한 근로자들이 고용비자를 연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미지 캡션사실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과 임금 착취에 대해선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이 문제를 묵인해왔고, 유엔에서도 직접 다루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유럽연합(EU)의 달라진 태도다. 안보리 결의안에 앞서 유럽연합은 북한 근로자들의 비자 발급을 중단하도록 하는 독자 제재를 채택했다.
그보다 앞서 유럽 내 특히 폴란드에 있던 북한 근로자들의 실태가 집중 조명됐다. 특히 북한 노동자를 고용했던 폴란드의 조선소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인 네덜란드, 프랑스의 함정을 수리했고, 또 유럽연합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유럽연합의 직·간접적 책임이 확인된 이상 더는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사실이 보도된 후 해당 조선소는 북한 노동자들의 계약을 파기했다.
북한은 결의안 2375 이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시험 발사했다. 그러자 미국은 북한의 해외노동자들을 2년 이내에 추방하도록 하는 대북제재 결의안(2397호)을 작성했다.
유엔은 지난 2009년 결의안 1718호에 따라 전문가패널(Panel of Experts)을 발족했다. 8명의 경제, 군사, 외교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패널은 대북제재의 이행과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감시하는 일을 한다.
이러한 전문가패널이 작성한 보고서는 유엔총회와 안보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북한과 관련한 내용의 상당수는 언론과 학술 연구자료를 인용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중에는 이미 지난 일이나 또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도 있다.
참고로 전문가패널의 2017년 2월 보고서(S/2017/150)는 북한의 릉라도 무역총회사를 조선노동당 산하의 기구라고 밝혔다.
북한 해외근로자들의 임금이 조선노동당, 즉 북한 정권으로 직접 들어가는 정황으로 본 것이다. 또 전문가패널은 북한이 이집트에 스커드 미사일을 수출하는데 릉라도 무역총회사가 관여했다고 밝혔다.
당시 근거로 든 자료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2006년 북한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를 위해 만든 책자다.
그러나 이 자료는 이미 10년 전에 발간됐고, 또 최근까지 릉라도에서 일했던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은 대외무역을 총괄했던 장성택 사망 이후 대대적인 무역체계 재편에 들어갔다고 한다.
Image copyright Reuters 이미지 캡션문제는 유엔의 북한 인권보고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실증조사가 어렵다는 특성상 주로 탈북자의 증언에 의존한다. 이러다 보니 사실 확인이 어렵거나, 과장된 내용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유엔이란 상징성 때문에 불분명한 내용이 실려도, 언론에 아무런 여과 없이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지난 2015년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서 북한은 "5만 명 이상의 해외 근로자들을 통해 약 12억 달러에서 23억 달러 상당의 외화를 벌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특별인권보고관은 아산정책연구원과 '북한 해외 근로자의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연대(INHL)'가 각각 2014년과 2012년에 발표한 보고서를 참조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두 보고서 모두 한 언론사의 보도를 참조한 것을 알 수 있다. 해당 기사는 익명의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했다. 즉 실증적인 조사가 아닌 추측성 보도였다.
또한, 12억 달러란 수치도 애초에 1억 2천만 달러를 번역하는 과정에 잘못 표기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특별인권보고서가 마치 새로운 사실처럼 언론을 통해 재차 보도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나 폴슨 유엔 서울 인권사무소장은 BBC에 "북한 정부는 (탈북자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하지만, 증언은 일관되고 북한의 심각한 인권 실태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북한의 현실을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렵다"고 밝히며, 그 원인으로 북한에 '접근성의 제약, 정보와 이동의 자유 부재' 등을 꼽았다.
또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선 북한이 유엔 특별인권보고관의 방북과 현지 조사를 승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Image copyright AFP/Getty Images 이미지 캡션유엔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된 문제다. 유엔 스스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유엔의 북한 관련 의사결정이 얼마나 투명한 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핵 문제는 주로 안보리의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또 상임이사국 중 하나라도 반대하면 결의안은 통과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종종 결의안의 초안과 최종안이 달라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하는 결의안을 추진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최종안에서 수정됐다.
이러한 협의 과정에서 이해관계 국가 간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또한, 유엔 전문가 패널 등 유엔기구의 임명과정에서의 절차적 투명성 문제도 제기됐다.
8명의 전문가는 정무 담당 유엔 사무차장이 선발하고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하지만, 안보리의 승인이 필요해 이해 관계국의 입김이 중요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