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알아보는 백선엽장군 이력

낙동강대구 작성일 20.07.13 0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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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1920년생
1939년: 평양사범학교 졸업

        ← 식민조선의 수재들만 가는 3대 사범학교(경성,평양,대구)였음.

           뒤에 서술하는 경력을 보면 인성이 망가진 수재의 전형적인 삶을 보여줌. 

         ※ 3대 사범학교는 일단 입학하면 학비, 숙식이 모두 무료에 매월 용돈까지 받았고,

            살기 어려운 식민지시대에 안정적인 교사까지 될 수 있었기에 수재들만 입학했음.

            식민지시대 3대 사범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엄청난 존경을 받았음.

            대구사범학교를 나온 박정희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만군출신들이
            괜히 보살펴준것이 아님. 

            
1941년: 만주 봉천군관학교 진학: 본격 친일부역자의 길로 들어섬. 

      창씨개명명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側)는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죽인 

         바로 그 군인으로 우연의 일치로 지을 수 있는 이름이 아님. 

         젊은 백선엽의 친일부역결의가 옅보이는 대목.  
 

1943년: 간도특설대 전근, 해방때까지 근무 

        ← 식민조선부역자들로만 만들어진 부대로 조선독립군과 중국팔로군 및 양민을 

           상대로 한 잔혹한 토벌작전으로 악명높았음.


※ 1983년 일본에서 일본어로 간도특설대 회고자서전을 출간( 『?ゲリラ?―アメリカはなぜ負けたか (대게릴라전 ― 미국은 왜 졌는가?)』(하라쇼보(原書房) 출간) - "동포에게 총을 겨눈것은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반성없음)


1945년: 해방뒤 조만식선생의 비서생활 (비서들 중 한명)하다가, 

         김일성정권이 친일파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들이기 시작하자 12월 남쪽으로 내려옴.

※ 김일성 정권의 친일파 처단도 꽤 잔혹했음. 

   적극적인 친일파뿐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에 맞지 않는 부자들도 함께 처단함.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삼.

   이들이 원한에 사무쳐 남한으로 내려와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는 서북청년단을 조직하고, 이들역시 잔인하게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살육함. 

남한의 살아남은 친일파들이 이용하기에 딱 좋은 집단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소비됨.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거쳐 국방경비대입대. 

         제주4.3사태시 동족을 토벌할 수 없다고 국군이 반란을 일으킨 여순반란사건시 

         백인엽(백선엽의 개막장 동생), 김종원(일본헌병출신 개막장. 일본도로 양민 참수해 머리를 모아 미군사고문에게 선물로 줌)과 함께 각각 여수 순천지역 민간인 학살 주도.


1949년: 남로당 간부로 체포되어 사형구형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박정희를 

         무죄방면시켜 줌.
 

1950년: 한국전쟁시 낙동강전선 다부동 전투로 전쟁영웅이 되고, 

         이후 평양점령 및 중공군의 춘계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

         미군과의 사이가 좋았고 군사적능력도 뛰어나 미군의 찬사를 받음.
 

1952년: 휴전협상 기간 중 빨치산 토벌에 혁혁한 전공을 세움. 

         양민학살을 하지 말아달라는 김성수 부통령의 서한때문인지 공비들의 투항을 유도하고 양민학살은 최소한으로 막았음.


1953년(33세): 한국군 최초 4성장군(육군대장). 박정희의 장군진급에 큰 도움을 줌.

1957년: 윤군참모총장
1959년: 합동참모의장
1960년: 419후 예편, 중화민국대사.
1962년: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 

         그의 국내군인맥을 두려워한 박정희가 국내복귀를 막아 10년간 외국생활.
1969년~1980년: 교통부장관, 충주비료사장, 호남비료사장, 한국종합화학 사장역임
 

1969년~2020년: 동생 백인엽과 함께 선인학원 재단을 만들어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축재.
        강남의 2천억원짜리 건물을 현금으로 사들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백선엽일가의 건물로 추정되는 사진은 인터넷에 나옴)

 

※ 동생인 인간말종 백인엽은 식민지시대 일본메이지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수재로,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수재가 어느정도까지 인간말종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아마도 우병우, 김기춘의 대선배급. 궁금하면 나무위키 백인엽편을 참고할 것.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주의주장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간도특설대에서는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기분을 가지고 토벌에 임하였다"

白善燁 (1993). 『?ゲリラ?―アメリカはなぜ負けたか』. 原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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