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많은 경험을 한다고 반드시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경험은 즐거웠다, 괴로웠다 하는 감정적 수준에 머물거나
그 의미나 교훈을 살펴보기 전에 지나가고 잊혀지기 때문에. 그런데 어떤 경험들은 사람을
성숙시켜주는데 그 성숙의 본질은 내가 볼 땐 이해를 기반으로 한 관용이다.
이게 잘못되면 ‘나도 해봐서 아는데’
엄살부리지마, 징징대지마 이런 식으로 가는 거고. 잘되면 고개 끄덕이면서 속으로 이해해주는 거고.
우리나라에서 한 해 약 2천명의 노동자가 일을 나가서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기사를 봤다.
무려 2천명. 어디 다치고 불구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사망.
그래서 우리나라 항상 뒤늦게 좀 해보는 시늉하는 것처럼 중대재해법 좀 깔짝이는 거 같던데.
그 깔짝이는 것 마저도 윤석열과 국힘이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항상 비슷하다. 이번 채상병 특검법
반대하는 이유와 같다. 필요성은 동감한다 다만 부작용을 일으킬 만한 부족한 부분이 있고
본질을 곡해하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 한동훈이나 원희룡처럼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펼치는 논리.
오늘 화성 사고 현장에 윤석열이 마스크 쓰고 왔다. 앞장서서 중대재해법 반대하는 사람.
중대재해법이 회사 운영을 위축시킬 거라고 한다. 그런데 의사들이 어디 소송 무서워서 수술할 수 있겠냐고
말하는 게 떠올랐다. 우리나라 의료사고에서 환자 승소비율은 1%를 채 넘지 못한다. 100명이 의료사고를 당하면
그 중에 1명 환자가 승소할까 말까한 비율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무서워서 수술을 못할 수준인가?
중대재해법 시행된다고 모든 사고에서 회사 책임을 물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법부가 약자의 편에 있지도 않다.
심지어 산재 조차도 인정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는 수준인데.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회사가 큰 타격을 입고 다시 비슷한 사망이 반복됐을 때 회사가 휘청이거나 망할 수준의
처벌을 한다면 과연 회사는 노동자들의 안전에 어떤 관심을 기울일까. 어느 정도의 관리인을 두고 어떤 비용을
치룰지는 그냥 예상할 수 있다. 분명 한해 2천명의 노동자가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통계는 줄어들 거다.
누군가는 말한다. 노동자들 본인이 안전을 무시하면서 일하는 걸 왜 회사탓을 하냐고.
그건 막노동이라는 걸 ‘가난체험' 수준에서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몇 달, 아니 하루 이틀이라도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은 안다. 일개 노동자는 절대로 안전 규정을 문제삼지
못한다. 그건 일개 노동자가 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걸 국가가 해주는거다. 그렇게 지금은 당연시하는
주5일제도 상식으로 받아들여진거고. 주5일제 하면 우리나라 기업 다 망한다고 반대하는 기사들 지금도 과거
신문들 찾아보면 쉽게 볼 수 있으니까.
이 나라는 망해가고 있다. 자살율 최고 출산율 최저. 이거야 말로 한 나라가 망해간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표가 아닌가. 그리고 이 망조는 아무런 경험도 해보려는 노력, 아니 필요성 조차도 느끼지 않고
탄탄대로. 부와 명예,
부동시라는 누가봐도 잘사는 집안 자식이 편법 써서 군대를 뺀 인간이 국군 통수권자가 되는 나라,
이 엘리트라고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뤄낸 성공,
그런 걸 무지성으로 지지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