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함께] - 9. 노란색 화살표

도리돌2 작성일 20.11.25 23:37:06 수정일 20.11.25 23: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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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걸음의 흐름이 고정되고 있다. 아침 식사 후 출발까지는 같다. 보통 해가 뜨기 전까지 함께 걷다 해가 뜬 뒤나 몸이 풀리면 각자 속도대로 걷는데 준영이 먼저 앞서 나가고 그 뒤로 루다가 멀어진다. 가장 걸음이 느린 수정이 맨 마지막이겠지만 일부러 수정과 걸음을 맞추는 탓에 별다른 일이 없으면 목적지까지 함께 했다. 

 

  지금까지 지나온 여러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이다. 언제부턴가 멀어진 루다와 준영은 잊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뭔가 잘못된 기분이 들어 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수정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길게 뻗은, 저 멀리 갈림길이 보이는데 언제나 길을 알려주던 노란색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다. 길이 앞으로 뻗었다 해도 교차로는 헷갈릴 수 있어 항상 표식이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온 거지? 고개를 돌려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 속 표식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조금 전 지나친 교차로였기에 표식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잘못 온 건 아니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몇 발자국 더 가자 전신주에 가려 보이지 않던 표식이 멀리서나마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자 지금까지 말을 참고 있던 수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기 보면 갈림길이 있잖아. 우리가 지금까지 걸으면서 봤던 것처럼 보통 저렇게 갈림길이 있으면 노란색 화살표가 있을 텐데 안 보이는 거야. 아무리 집중해서 봐도 안 보이기에 우리가 어디서부터 잘못 온 건가 싶더라고. 그래서 뒤돌아보니까 바로 전에 표식 있던 교차로를 지나왔더라고. 그렇다면 잘못 온 건 아니겠구나 했는데 역시 전신주에 가려서 안 보였더라고. 저기? 당연히 보이지. 오빠 눈 양쪽 다 1.5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수정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곤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빤 좋겠어요. 눈도 좋고 힘도 세고 요리도 잘하고 길도 잘 찾잖아요. 근데 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여기서도 매번 오빠나 루다, 준영이한테 도움만 받잖아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임용고시도 계속 떨어지고 그게 정말 내가 바라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여기 와서 걸으면서 고민하다 보면 뭔가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3분의 1이나 왔는데 아직 아무것도 찾질 못했어요. 산티아고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정말 이곳이 답이 있을지도 의문이구요. 오빠는 왠지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에 오빠가 찾고 싶어 하던 걸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만 계속 같은 자리인 기분이기도 해요. 차라리 이 길처럼 노란색 화살표가 제가 갈 길을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고민으로 시간을 허비하거나 잘 못 갈 일이 없잖아요.”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수정뿐 아니라 어쩌면 대부분 젊은이가 한 번쯤 혹은 매번 하고 있을 그런 걱정이고 생각일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라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빛이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어둠을 헤매는 공포를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 그런 확신은 없다. 빛이 없을지도 모르고 있더라도 엉뚱한 곳을 헤매다 영영 닿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어둠 속 어딘가 다신 올라오지 못할 낭떠러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주저앉는 것을 꼭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어떻게든 나아가라고 이야기하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도 당장 닥쳐올지 모를 위험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내몰기만 하는 건 폭력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쭈그려 앉아 원망만 하는 게 정당하다는 것도 아니다. 위험은 언제나 감수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빛을 찾는 게 매우 힘든 일인 건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낭떠러지가 두려우면 바닥에 엎드려 조심스럽게 어둠을 더듬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사회가, 어른이라면 적어도 그들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최소한의 안전만이라도 보장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정도가 최소한인데…….

 

  “그럼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나도 잘난 게 없어서 이런 얘기 하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 게임할 때 치트키 쓰면 편하고 쉽게 할 수 있지만 게임의 재미는 거의 느낄 수 없잖아. 긴장도 긴장감도 없어지고. 아쉽게도 현실은 중간에 저장했다가 잘못돼도 저장 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위험성이 있지만 그래서 현실이 더 재밌잖아.”

 

  “오빠라면 왠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저도 그렇게 강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현실에서 저는 너무 겁이 많아서 새로운 도전이 늘 두려워요.”

 

  “새로운 도전이야 누구나 다 두렵지. 그리고 나야 생긴 것부터 힘밖에 볼 게 없으니까 대한민국 평균보다 조금 더 세 보이는 것뿐이고. 수정이도 아직 과정이긴 하지만 800km를 걸은 여자가 될 거잖아.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800km. 몇 번이고 되뇌는 수정의 마음에 확신이 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방금보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정도로 보였다. 신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길을 알려줄 것이며 누구의 훈계가 정답일 수 있을까. 나야말로 말한 반만큼만 살지. 개뿔도 없는 놈이 입만 살아서 누구한테 훈계하는지. 아닌 게 아니라 회사까지 때려치우고 온 마당에 한국 가면 뭐 해 먹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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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항목이 ‘일기장’으로 바뀌었네요;;

제가 겪은 일이긴 하지만 일기로 쓰는 게 아니라 투고했다가 퇴짜 받은 거 냅두기 아까워서 올리고 있었는데 일기장이라고 하니 낯설고 취지랑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만 올릴까… 하다가 그래도 여행 쪽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하고 이쪽으로 넘어왔습니다ㅋㅋㅋㅋㅋㅋ

뭐~ 여기서 게시판 성격에 안 맞는다 하면 어쩔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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