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하라 감독] 선수 시절 영상

복수할것이다 작성일 09.06.09 23: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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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타츠노리 - 1958 후쿠오카 출생

등번호 8번, 우투우타

통산 성적 - 15년, 타율 .279 382홈런, 1093타점, 1675안타
타점왕 1회, MVP 1회, 신인왕, 최다 결승타점 2회
베스트나인 5회,골든 글러브 2회

토우카이대사가미고 -> 토우카이대학 -> 요미우리 자이언츠

고교통산 44홈런

대학통산 3관왕 2회, 타율 398 홈런 144

4개구단의 경합 끝에 1순위로 요미우리 입단

1983 입단 첫해 .268 22홈런 67타점 신인왕

1985 .302 32홈런 103타점 MVP

87년 90년 리그우승

89년 94년 저팬시리즈 우승

1989 외야수로 전향후 다시 3루 복귀

1995년 아킬레스 부상으로 은퇴

2002 나가시마 후임으로 요미우리 감독 (저팬시리즈 우승)

2003 팀 부진으로 시즌 도중 경질



- 부상 인해 투수에서 3루수로 전향 -

하라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투수였는데, 타격도 보통이상이었다.
중학 2학년 겨울,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발목을 부상당해 의사로부터
앞으로는 운동을 할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그 부상은 치료가 됐고, 그것을 계기로 다리에 부담을 주는 투수는 포기하고
동경하던 나가시마가 맡았던 3루수로 전향했다고 한다.



- 타점왕의 뒷얘기 -

1983년 9월 10일 교진 대 야쿠르트전에서 교진은 무사 1,2루 찬스를 맞이한다.
배터박스에 선 하라는 찬스를 연결시키려고 희생번트를 시도했다.
팀의 주포였기 때문에 자기 본인의 판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는 실패...
마음을 고쳐먹고 강공으로 전환한 하라는 다음 공을 보기좋게 3점 홈런을 쳤다.
그 시즌은 야마모토 코지를 타점 2점차로 제치고서 하라가 타점왕이 됐었는데...
만약에 희생번트가 성공했었다면 하라는 타점 1점차로 타점왕을 놓쳤을 것이다.


-눈물의 홈런 -

1989년 10월 26일, 교진 대 긴데츠의 저팬시리즈 5차전은 교진이 1승 3패로 뒤지고 있었다.
교진은 1,2,3차전을 모두 패했고 긴데츠 투수 카토 테츠로로부터 '롯데보다 약하다'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5차전도 사이토 마사키와 아와노 히데유키의 긴박한 투수전으로 2대1로 교진이 리드한 상황에서 7회초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하라는 이 시리즈에서 아직도 무안타의 슬럼프 상태였다.
그런데 7회말에 2사만루 상황에서 후지타감독은 '절대로 칠 수 있다.'라고 몇번이고 암시을 줘
하라는 요시이로부터 기대에 부응하는 만루홈런을 쳤다.
그 홈런에 의해 압승한 교진은 이어서 6,7차전도 승리해 기적적인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 은퇴시합에서 홈런 -

1995년 10월 8일, 하라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그해는 홈런도 그때까지 5개밖에 치지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히로시마와의 리그 최종전이 은퇴시합으로 되어 있었다.
4번타자로 선발출장한 하라는 키토우 투수로부터 유종의 미를 장식하는
개인통산 382호 홈런을 좌측 스탠드로 날려버렸다.
시합후의 은퇴 세레모니에서는 교진의 4번이라고 하는 '성역'을 오랫동안 지켜온 자랑과
감독으로써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오겠다는 꿈을 선언해, 팬들의 환성을 받았다.



- 감독 첫해 -

나가시마 감독으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아 요미우리의 감독에 취임한 하라는 개막당시에는 부진했었지만
베테랑과 중견, 젊은 선수들을 적절히 기용하는 지휘력으로 서서히 성적을 올려나갔다.
6월준순에는 선두에 올라서 단독 선두체제를 만들어냈다.
투수에서는 우에하라 코우지, 쿠와타 마스미, 쿠도우 카야스 등이 시종 안정된 투구를 보였고
타자에서는 마츠이 히데키, 시미즈 타카유키, 타카하시 요시노부 등이 맹타를 휘둘렀다.
하라의 부친은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대단한 공적을 남긴 명감독인 하라 미츠구이다.
하라 타츠노리도 부친의 피를 이어받아 뛰어난 소질을 증명했지만
다음해에 마쓰이가 미국으로 떠나고 한신이 독주를 하면서 불과 2년만에 경질되는 불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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