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적 없으신가요?

maxoop 작성일 12.08.30 1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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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1년 가을....

저는 기갑여단 여단 군수서무계였고 계급은 일병 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라 했었기 때문에 어케 운이 좋아서 포상 7일 휴가를 받고서는,

당시에 저의 군대생활을 기다려주던 여친과의 마지막 밤을 불태우기 위해서....

아쉽고 아련한 그런 분위기에서 저는 복귀 전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제가 하나만 여쭤 보겠습니다.

7일의 휴가이고 화요일날 휴가를 나왔다면... 그 다음주 어느날에 복귀를 해야 할까요??

 

 

 

종로에서 여친과 늦은 저녁을 먹으며 휴가복귀 전날의 아쉬움을 서로 달래고 있던 저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집이더군요.

그걸보니 이상하게도 뭔가 기분이 쌔해졌습니다.

'휴가복귀 마지막날에는 여친이랑 있는 걸 알면서도 집에서 왜 이시간에 전화를?  흠...'

 

요상한 마음에 급히 전화를 받아보니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얘야, 너 휴가복귀 날짜가 도대체 언제냐? 너희 부대에서 지금 집으로 전화가 왔단말이다~!!"

"????.......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이녀석아, 니 복귀날이 오늘이라고 전화가 왔단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이지?' 라는 벙찜을 느낀 저는 손가락으로 7일을 새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말이죠...

계속해서 복귀날이 오늘(월요일)로 계산이 되더군요???

'뭐지......???'

 

저는... 그런 작금의 실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10번 정도 다시 숫자를 세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얼마지나지 않아서 말도 안되는 무지막지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내가... 

너무도 병!신같은 착각을 한 나머지 졸지에 탈영병이 되버렸다는 사실을요.

"아~!!!!!!!!!!!!!!!!!!!!!!!!!!!!!!!!! ㅅㅄㅄㅄㅂ"

저의 일갈섞인 탄식에...

한참을 아무말도 안하시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저의 답변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하셨습니다.

"아이고 어떡하냐, 아이고 어떡하냐, 아이고 어떡하냐....................."

 

밥을 먹다 말고 전화를 받더니,

순간 움찔하며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초딩처럼 손가락으로 뭔가를 몇번이고 세어보더니,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시!발 시!발' 을 외치는 저를 보며.....

당시의 여친은 연신 저에게  '오빠 도대체 왜그러는데? 응? 무슨일인데?'  라며 저를 채근했지만

저는 말이죠........

'시!발'  이라는 말 이외에는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7일 휴가의 함정(?)을 깨달았던 그때는....

이미 저녁 8시 20분(!!!!!!)을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였죠.

 

 

 

그 충격이 있은 후 두어시간이 흘러 어느새 저녁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어둑어둑한 포천고개를 넘어가는데요,

그순간 거짓말 처럼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젠장할........ 나는 이제 끝났어. 내 군생활은 시!밤 완전 끝났어~! 완전 꼬였어. 완전 좃 됬어.

 임상병 그자식 안그래도 일병이 포상휴가 7일짜리 나간다고 그렇게 비아냥거렸었는데 시!바....

 영창, 갈굼, 영창, 갈굼...............  아우 이런 시!밪ㅈㅂㅈㅀㅈㅂ........... 완전 좃 됬어... 흐윽... ㅜ.ㅠ'

 

그렇게 차 뒷자석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꿈꾸는 강아지 마냥 움찔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악몽 같고 지옥같은 시간이 어느정도 흘러갔을까.......

드디어 저희 부대 위병소가 보이더군요.

그 순간......

종로 전철역에서 저를 떠나보낼 때 벌개진 눈망울로 저의 손을 놓아주지 못하던 여친의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오빠 이제 이렇게 간다. 이대로 가는거야. 시!바.....  앞으로 다시는 보기 힘들텐데 정말 미안해..... ㅠ.ㅜ'

 

못난 아들덕분에 충격을 받으시고 마음 고생을 하신 아버지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위병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고참에게 경례를 했습니다.

지통실에서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례를 받은 옆소대의 그 고참은

사형수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간수마냥 안쓰러운 눈초리를 하고는 저에게 한마디 하더군요.

"그래..... 드디어 왔냐?   바로 지통실로 가봐라."

'으....... 중대가 아니라 지통실로 가야하는건가......?'

"예 알겠습니다."

 

휴가복귀를 하면 중대의 당직사관에게 보고를 하러 중대로 가는 것이 맞는거지만

그건 정상적으로 복귀를 한 병사만 해당되는 거지요.

저는 어두운 연병장을 가로질러........

모두들 야근을 하고 있는지 너무도 환하게 빛나고 있는 언덕위의 지통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답니다.

지금도 그 광경이 뇌리에 각인된 듯 눈에 선한데요...

주위의 어둠을 뚫고 환하게 빛나던 언덕위의 그 지통실이,

꼭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소환문처럼... 절대로 다가가기 꺼려지는 그런 불길한 것으로 느껴졌답니다.

 

 

 

놀랍게도.....

저는 영창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날 바로 알게된 사실인데 그 경위는 이랬더군요.

 

야근을 하기 위해서

한명 있는 직속부하 병사의 휴가복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군수과장(소령)이...

저를 먼저 저녁 7시 30분 부터 찾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서 당시 당직사령이였던 인사과장(대위)이 저의 탈영(?) 소식을 미리 알게되었지요.

깜짝 놀란 그는 빠르게 군수과장에게 그 사실을 알린후에 비상연락망으로 저희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부대를 발칵 뒤집은 일병의 휴가 미복귀의 이유가,

숫자를 제대로 세지 못하는 초딩도 잘 안하는 그런 어이없는 실수때문임을 알게 된 인사과장이....

매일 저녁 8시에 올려야하는 사단보고에  '예하대대 포함 해당부대의 당일 휴가복귀예정자, 전원 복귀함'  이라고 하고는,

뒤로는 저에게 빠르게 복귀명령을 내리는 유두리를 발휘한 거였습니다.

 

인사과장이 그처럼 처리를 잘해줬던 건 

물론 같은 사무실(군수과)에서 근무하는 저를 위해서 이기도 했겠지만,

더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당직사령일 때 이 문제를 더 이상은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여하튼..........

대대 기동훈련이 다음주라

지통실, 군수과의 모든 간부가 부대내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다면 사고처리가 늦어져서 어쩔수 없이 저녁 8시 사단보고 때 꼼짝없이 탈영병으로 처리될 뻔 했다는 걸 알게되고,

군수과장(소령)이

'내 군생활중에 너처럼 휴가 복귀 날짜를 잘못알고 늦게 들어온 놈은... 정말 처음이다' 라며 뒤통수를 후려 갈긴후에

밀려있던 업무를 바로 던져줬고,

야근을 하던 같은 소대의 고참들도 하도 어이가 없던지

'숫자도 제대로 못세는 너 같은 병!신은 진짜 내 살다살다 처음본다'  라며 별말 없이 넘어가는 걸 본후에,

 

저는...

신께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벽 야근에 돌입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A급 휴가용 전투복과 전투화를 환복하지도 못한 상태였지만 말이죠.

 

 

 

그 후에 저는...

제대하기 전까지,

가끔씩 저의 그 멍청돋는 휴가미복귀 사태를 사람들과 나누며...

즐겁게(?) 군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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