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피처폰 고집하는 사람들

가자서 작성일 12.10.30 19:07:09
댓글 16조회 3,817추천 13
'멸종위기' 피처폰 고집하는 사람들

 

“나중에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사진 찍어서 빨리 페이스북에 올리자.”
“버스 언제쯤 오는지 어플(어플리케이션)로 확인해봐.”

 

 

요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익숙한 대화들이다. 지난 2009년 말 케이티(KT)가 애플사의 아이폰을 국내에 소개한 후 3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스마트폰 가입자 수가 3000만 명을 돌파했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과 첨단 기능으로 무장한 스마트폰은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무료메신저 서비스 카카오톡 등의 확산과 더불어 대중의 일상을 바꿔 놓았다. 

 

 

이런 기세 속에 ‘피처폰(Feature Phone)’으로 불리는 일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피처폰’을 검색하면 ‘피처폰 멸종’이 연관 검색어로 나올 정도다. 그러나 멸종 위기라는 피처폰을 고집스럽게 애용하는 사람들도 아직 적지 않다. ‘빠름, 빠름, 빠름’을 외치는 이 시대에 이들이 남들보다 ‘늦게 가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733_5141_3745.png  ▲ 스마트폰의 기세에 눌려 현재 '멸종 위기'라 불리는 피처폰들. ⓒ 박다영

 

첫 번호를 바꾸고 싶지 않아 

 

대학원생인 김태준(27ㆍ대구시 동구)씨는 지난 9월초 휴대전화를 새로 샀다. 바꾼 휴대전화도 피처폰이다. 스마트폰은 아직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새 피처폰을 구하기 위해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뒤져야 했다. 최근 제조사들이 새로운 모델의 피처폰을 내놓지 않는데다 대다수 휴대전화 대리점들도 더 이상 피처폰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피처폰을 고수하는 이유는 처음 휴대전화를 만들었던 1999년부터 지금까지 써 온 018 번호를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011ㆍ016ㆍ017ㆍ018ㆍ019 등 기존 통신사별 식별번호는 2세대 이동통신망(2Gㆍ음성 통화와 문자 메시지 기능만 제공하는 서비스)에서만 가동되기 때문에 3세대 이동통신망(3Gㆍ기존 2G 서비스에서 영상통화와 대용량 문자서비스를 추가한 것)을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쓸 수 없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을 사려면 번호부터 바꿔야 하는데, 저는 번호 바꾸기 싫거든요. 내 인생의 첫 번호이기도 하고...이 번호가 제 정체성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대학생 나유진(25ㆍ여ㆍ서울 동대문구)씨도 역시 018번호를 유지하기 위해 피처폰을 쓴다. “처음 만든 번호를 될 수 있는 한 오래 사용하고 싶다”는 나씨는 “정부가 기존 통신사별 식별 번호를 폐지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피처폰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피처폰을 1년 반 째 사용 중이라는 대학생 이소은(25ㆍ여ㆍ경기도 분당)씨는 “멀쩡한 물건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씨는 이전 휴대전화도 7년 넘게 사용하는 등 전화ㆍ지갑 같은 소품들을 오래 사용하는 편이다. 그는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는 사람들은 쓰던 걸 쉽게 못 바꾼다”며 “피처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크게 불편하진 않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피처폰을 쓰는 이들이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삶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고 말한다.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메신저로 여러 사람들과 즉각 연락하기 힘들다는 점은 있지만, 피처폰 역시 통화와 문자 기능이 작동하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소은씨는 “(스마트폰을 쓰는) 주변 친구들이 다소 불편해 하긴 하지만 내 입장에선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학생이니 주중에는 주로 공부하고, 필요한 연락은 그때그때 자신이 먼저 하면 되니 상관없다는 얘기다. 이씨는 “솔직히 스마트폰으로 하는 대화 대부분이 가벼운 농담일 것”이라며 “피처폰이 생활의 중심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2733_5140_3736.png  ▲ 불편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피처폰에는 피처폰만의 매력이 있다. ⓒ 김혜인

 

피처폰 이용자들은 스마트폰에 없는 ‘피처폰 만의 매력’을 꼽기도 했다. 몇 달 전까지 피처폰을 사용했다는 대학원생 임종헌(29ㆍ충북 제천시)씨는 피처폰의 가장 큰 장점으로 효율적인 배터리 기능과 가벼운 무게를 꼽았다. 피처폰은 기능과 용도가 단순한 만큼 배터리가 상대적으로 오래가는 편이다.

 

 

임씨는 “처음 스마트폰으로 바꿨을 때 하루 만에 배터리가 다 소진돼 당황했다”며 “피처폰의 경우 최소 이틀은 충전 없이 사용 가능하고, 무엇보다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기 편했다”고 말했다. 

 


나유진씨는 피처폰이 오히려 통화 품질도 좋고 속도도 빠르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늘어나다보니 3G 데이터와 통화 전송량이 많아졌고, 상대적으로 속도도 느려졌다.

 

 

이에 반해 피처폰이 이용하는 2G망은 이용자가 줄어드는 추세라 어디에서나 통화가 잘 되고 문자도 빨리 도착한다는 것이다. 나씨는 “지하철에서 간혹 친구들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는데, 내 휴대전화는 어디에서나 잘 된다”며 뿌듯해 했다.

 

 

저렴한 통화료, 그리고 휴대전화 중독의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피처폰의 장점으로 꼽힌다. 스마트폰의 경우 비싼 기기값과 데이터 이용료 때문에 긴 약정기간동안 평균 오만 원 정도의 높은 요금제를 써야한다.

 

 

그러나 피처폰은 데이터 이용료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학생층의 경우 약 삼만 원 정도면 된다. 또 피처폰은 인터넷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아 휴대전화 중독 가능성이 낮다. 고등학생인 허희원(17ㆍ여ㆍ부산 연제구)양은 “친구들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거나 서로 자주 연락하면서 공부에 방해를 받곤 하는데 나는 그런 걱정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감성적인 장점을 꼽는 사람도 있다. 나유진씨는 “남들은 다 스마트폰을 쓰는데 나 혼자만 피처폰을 사용하니 사람들이 신기해한다”며 “휴대전화가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라면 피처폰도 얼마든지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이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하는 풍토 필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올해 연말쯤 80%, 즉 5300만 휴대전화 가입자 중 4000만 명 이상이 스마트폰을 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아직 1000만  명 가량은 피처폰을 쓴다는 얘기다. 지난 9월 21일 KT가 일부 소비자들의 반발 속에 2세대(2G) 이동통신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엘지(LG)유플러스는 피처폰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종료할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히고 있다. 두 회사의 경우 전체 가입자 대비 각각 25.1%, 37.8%가 피처폰 사용자다.

 

 

이소은 씨는 “스마트폰의 효용성과 편리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지금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가 고장 나면 그 때 스마트폰으로 바꿀 생각”이라면서도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꼭 그 흐름대로 움직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인마다 다른 삶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존중하고, 앞으로도 원하는 사람은 피처폰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얘기다. ‘멸종 위기’의 피처폰이 앞으로 얼마나 수명을 이어갈 수 있을지, 다양성과 개성을 고집하는 소비자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가자서의 최근 게시물

자유·수다 인기 게시글